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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26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④ : 부상 1년 후의 재회, 1998년 11월. 2011/08/10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①: 충돌의 시작, 1997년 9월 27일 2011/08/12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② : 프랑스 월드컵 결장의 가능성, 1997년 10월 2011/08/17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③ : 복수심의 시작 1998-99 시즌이 시작되었고, 로이 킨도 기나긴 장기 부상을 극복하고 돌아왔다. 1998년 여름, 로이 킨은 맨유의 스칸디나비아 투어에 참가했고 아스날과의 채러티 실드 경기를 통해 공식적으로 복귀했다. 경기는 맨유의 0:3 패배로 끝났으나 킨이 경기에 뛸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킨 자신은 10월이 되면 경기 감각을 완전히 되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미러, 98. 8. 12). 이어진 공식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예선으로 폴란드의 로즈(Lodz)가.. 2011. 9. 15.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② : 프랑스 월드컵 결장의 가능성, 1997년 10월 2011/08/10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①: 충돌의 시작, 1997년 9월 27일 지난번 글에 이어 로이 킨이 부상을 당한 직후 며칠 동안 그의 부상에 대한 우려가 어떻게 깊어지는지 그 과정을 보기로 한다. 1997년 9월 30일 ~ 10월 3일 리즈-맨유의 경기 후 알피 홀란드가 지적했듯이, 로이 킨은 맨유의 주장이었다. 킨은 전 시즌에 은퇴한 에릭 칸토나의 뒤를 이어 주장이 된 것이다(참고로 칸토나는 스티브 브루스의 후임 주장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로이 킨에게 주장 완장을 채우면 성질이 죽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지 두 달도 되지 않아 로이 킨은 충분히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고, 자초한 무릎 부상은 최악의 결과였다. 27일의 리그 경기 이후 이틀.. 2011. 8. 12.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①: 충돌의 시작, 1997년 9월 27일 알프-잉게 홀란드에 대한 로이 킨의 복수극은 매우 잘 알려져있다. 전에도 이와 관련된 글을 두 번 쓴 적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서 그 정도로 썼으면 충분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도 이 일을 두고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예전에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그대로 재생되는 걸 목격하기도 한다. 2011/01/11 - 스포츠원 채널을 보며 느낀 이중의 충격 2011/03/11 - 로이 킨-알피 홀란드 사건에 대한 거대한 거짓말 사건은 외면적으로 아주 단순해 보인다. 1997년 리그 경기에서 홀란드에게 태클을 하려던 로이 킨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홀란드는 로이 킨이 부상당한 척 한다고 소리를 질렀고, 킨은 그 일에 앙심을 품고 2001년 리그 경기 중 홀란드의 다리를 세게 찼다. 홀란드는 이후 .. 2011. 8. 10.
텔레그라프에서 알아낸 맨유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전술 2010-11 시즌의 대미를 장식할 챔피언스 리그 결승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바르셀로나가 어떤 선수와 어떤 전술을 사용할지는 거의 정해진 가운데 맨유의 대응 전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는 바르셀로나가 더 우수한 팀이라는 일반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최근엔 사상 최고의 축구팀이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맨유가 잉글랜드의 심장 웸블리에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어떻게 수비하느냐의 문제, 맨유가 열세라는 인식은 맨유 자체로부터도 나오고 있다. 오늘 공개된지 오래되지 않은 텔레그라프 마크 오그던 기자의 특종 기사는 그러한 맨유의 고충이 지난 2주 동안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요약해서 말하면 맨유는 4-4-2의 플랜 A가 있고, 만약 바르셀로나에 끌려다.. 201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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