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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①: 충돌의 시작, 1997년 9월 27일

by wannabe풍류객 201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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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잉게 홀란드에 대한 로이 킨의 복수극은 매우 잘 알려져있다. 전에도 이와 관련된 글을 두 번 쓴 적이 있다. 이 사건에 대해서 그 정도로 썼으면 충분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도 이 일을 두고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예전에 잘못 알려진 이야기가 그대로 재생되는 걸 목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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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외면적으로 아주 단순해 보인다. 1997년 리그 경기에서 홀란드에게 태클을 하려던 로이 킨이 심각한 부상을 당했다. 홀란드는 로이 킨이 부상당한 척 한다고 소리를 질렀고, 킨은 그 일에 앙심을 품고 2001년 리그 경기 중 홀란드의 다리를 세게 찼다. 홀란드는 이후 다시는 한 경기를 다 뛰지 못했다. 로이 킨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그 사건을 선정적으로 묘사했고, FA의 징계를 받았다. 홀란드와 맨시티는 법적 절차를 준비했지만 킨의 태클이 치명적 무릎 부상의 결정적 이유라는 '의학적' 증거를 댈 수는 없었다. 홀란드는 수술과 재활을 거듭하다 은퇴했다.  

기존에 잘못 알려진 사실, 즉 1997년에 홀란드가 킨의 다리를 아작냈다거나, 침을 뱉었다거나, 까분다고 말했다거나 혹은 홀란드가 2001년 부상 후 재활을 게을리했다거나 하는 것은 순전히 누군가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로이 킨은 맨유의 전성기를 이끈 주장이자 역대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하나이므로 몇몇 맨유팬이 그렇게 믿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이 사건을 돌아보며 또 예전 기사들을 읽어보며 로이 킨은 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가 원래 돌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의학적으로 미쳤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기이한 행동을 비웃고 비난할 수도 있지만 이상행동의 뒤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또 이 사건에서 로이 킨에 비해 조연 역할 정도로 등장하는 알피 홀란드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사건을 조금 길게 되돌아보려고 한다. 

글 작성을 위해 예전의 신문 기사들을 자료로 활용했다. 전에 글을 쓸 때는 구글 검색으로 힘겹게 자료를 모았지만, 최근 대학교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ProQuest)를 이용하여 아주 풍부한 양의 기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저작권이 있어 원문을 다 공개할 수는 없겠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 번역하고 해당 기사의 언론사, 날짜를 기재하는 선에서 자료 설명을 대체할 것이다.


1997년 9월 26일 ~ 29일


먼저 애초 로이 킨이 부상을 당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자.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모두 노팅엄 포리스트 출신이다. 킨이 93년에 포리스트를 떠나 맨유로 이적하자 대체자 격으로 홀란드가 영입되었다. 그리고1997년 알피 홀란드는 노팅엄에서 리즈로 이적했다. 

1997년의 9월 말, 1997-98 프리미어 리그 시즌이 시작한지 한 달 정도 지났을 시점이다. 그때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992년 출범한 프리미어 리그 다섯 시즌 중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우승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이전 시즌(1996-97) 리즈는 홈구장 엘런드 로드에서 맨유에 4:0으로 대패했고 그 결과 하워드 윌킨슨 감독이 해임되고 전 아스날 감독이었던 조지 그램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97-98 시즌이 시작된 이후 맨유는 아직 지지 않고 있었고, 리즈는 홈 경기를 하나도 못 이기며 원정에서는 세 경기 연속 승리를 챙기는 기이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었다. 9월 28일의 이 경기는 이런 배경하에 치러졌다.

킨의 경우 그 한 주는 힘겨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수요일에 있었던 첼시와의 경기에서 로이 킨은 전반전이 끝난 이후 터널을 통과하다가 첼시의 데니스 와이즈, 구스타보 포옛과 다툼을 벌였다. 경찰이 개입하여 다툼을 말렸고, 이후 로이 킨은 왼쪽 귀쪽을 네 바늘 꿰매야 했다. 와이즈도 큰 흉터를 얻었는데 경기 중 입은 상처라고 한다. 맨유-첼시 경기는 매우 격렬해서 여덟 명이 경고를 받았다. 킨도 빠지지 않았다. 

그리고 첼시 경기가 있고 몇 시간 후인 목요일 새벽 네다섯 시경, 로이 킨은 맨체스터의 체스터 코트 호텔의 바에서 싸움을 하며 구설수에 올랐다. 킨과 싸운 당사자인 데이브[그는 킨과 같은 아일랜드 사람으로 맨유 경기를 보기 위해 잉글랜드에 왔다]에 따르면 킨은 샴페인과 라거 맥주에 잔뜩 취해 주변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었고, 자신이 아니었어도 누군가와 싸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체 접촉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먹 한대씩 날린 것에 불과했고, 가벼운 싸움이라 법정으로 가지는 않았다(미러, 97. 9. 27). 

킨으로서는 악재가 겹쳤는데 재미있게도 맨유 감독 퍼거슨은 그 주 화요일에 "킨이 완전히 변했으며, 진짜 성가대 소년이 되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 즈음 킨의 불같은 성질은 새삼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더 타임스, 97. 9. 27). 우리가 잘 알듯이 당연히 로이 킨은 성가대 소년일리 없고, 앞서 본 것처럼 주중에 크게 불타올랐다. 그런 상황에서 퍼거슨 자신이 예전에 가장 위협적인 경기장으로 불렀던 엘런드 로드 원정 경기가 치러졌다.

경기 결과는 의외로 리즈의 1:0 승리였다. 그램 감독의 전술적 승리로 평가받는데, 리즈의 웨더롤이 위치 선정을 잘못한 맨유 골키퍼 피터 슈마이클의 실수를 이용해 득점한 것이다. 맨유는 시즌 첫 패배를 당했고 반면 리즈는 홈에서 시즌 첫 승을 거뒀고 작년의 치욕을 만회했다. 리즈로서는 홈에서 시즌 두번째 골을 성공한 것이기도 했다. 참고삼아 더 선의 선수 평점을 소개한다.

LEEDS: Martyn 8, Kelly 7, Robertson 6, Haaland 7, Radebe 7, Wetherall 7, Wallace 7, Ribeiro 7, Hopkin 7 (Molenaar 6), Halle 7, Kewell 6. Subs not used: Hasselbaink, Bowyer, Beeney, Lilley. Booked: Haaland, Wetherall.


MANCHESTER UNITED: Schmeichel 6, G Neville 6 (P Neville 6), Irwin 7, Pallister 7, Beckham 6, Sheringham 6, Poborsky 5 (Thornley 6), Keane 6, Scholes 6 (Johnsen 6), Solskjaer 6, Berg 7. Subs not used: McClair, van der Gouw. Booked: Keane, Scholes, P Neville.


웨더롤의 득점 장면(이미지 출처는 링크)

홀란드와 킨 모두 경고를 받았다. 홀란드의 경우 전반 36분에 옐로우 카드를 받았는데 킨에게 파울을 해서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사들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다. 사실 경기 전날 더 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중원에서 다툼은 홀란드-킨이 아니라 홉킨-킨 사이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로이 킨이 결과적으로 치명적 부상을 당한, 홀란드를 향한 그 태클은 옐로우 카드 대상이었다. 그 상황을 기사들을 통해 확인해보자.

킨은 자기파괴적으로 질주하다 갑작기 전혀 불필요하고 완전히 무모한 태클을 알프-잉게 홀란드에게 가했다. 적절하게도 이 아일랜드인은 다리를 뻗는 과정에서 부상을 자초했고 몇 분간 치료를 위해 나간 이후 결국 절뚝거리며 경기장을 떠나야했다. [선데이 타임스, 9. 28]

유나이티드가 좌절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킨이 홀란드와의 충돌에 말려들었다. 킨은 에어리어에서 공을 다투는 과정에서 홀란드를 차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리쉬맨은 넘어져 고통 속에서 굴렀고, 홀란드는 그에게 항의하며 소리를 질렀다. 킨은 스트레처에 실려나가기 전에 주심 마틴 보더넘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뉴스 오브 더 월드, 9. 28]

킨은 홀란드를 향한 악의적인 태클을 하다가 부상을 자초했다. [더 타임스, 97. 9. 29] 

이제 챔피언[맨유]의 가장 큰 걱정은 로이 킨의 쓸데없는 무릎 부상일 것이다. 경기 막판 킨은 흔치 않게 리즈 페널티 에어리어에 갔으나 오직 홀란드에게 성급한 태클을 하다 고통과 경고를 초래했고 교체 선수를 이미 다 써버려 열 명 밖에 없는 그의 팀을 떠났다. [가디언, 97. 9. 29] 

이후의 기사들에서도 모두 킨이 나쁜 태클을 했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음은 사실로 인정되고 있으며 전혀 논쟁거리도 아니다. 이 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들에서 이어질 것이나 경기 당일과 다음 날의 기사들에서 홀란드가 침을 뱉었다거나 누워있는 킨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홀란드는 킨의 위험한 태클에 대해 긴 평가를 내렸다. 

로이는 뛰어난 선수지만 그런 방식을 계속할 수는 없어요.

그를 상대로 미드필드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그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에요. 

저는 여전히 경기 막판에 우리가 공을 두고 다툴 때 무엇이 문제였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아는 전부는 그가 저를 다치게 하려고 시도한 것처럼 보였고 결국 자신이 다쳤다는 것입니다. 

제가 공을 차지했고, 그는 제 다리를 거는 것으로 반응했어요. 왜인지 모르지만 그는 상태가 나빠져서 경기장을 나갔어요. 그가 괜찮기를 바라지만 그건 정말 그 자신의 잘못이에요. 

저는 그를 몇 번 상대해보았는데 그는 정말 너무 불타오르는 성질을 가졌어요. 

그처럼 집중하고 모두를 달리게 하는 누군가를 보유한 건 팀에게 좋은 일이고, 그 때문에 그 팀을 상대하기가 아주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그리고 그것이 로이의 문제점입니다. 그는 너무 흥분하게 되어 자제력을 잃어요. 전에도 그런 걸 본적이 있죠.  

그는 유나이티드의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가 오늘 한 것처럼 상대방과 얽혀서 뛰어돌아나니지 않을 때에만. 그는 약간 지나치게 궁시렁거리는데 솔직하게 말해 그건 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아요.

그가 팀의 주장인 걸 감안하면 그런 종류의 행동은 절대 변호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의 그런 측면에 대해 정말 조치를 취해야 해요. 

그는 전반적으로 최고의 경기를 보내진 못했고, 그것이 경기 결과에 중요한 기여를 했어요. 저는 데이빗 홉킨과 제가 그의 경기를 힘들게 하고 그를 저지한 것에 기뻐요. 그것이 저희의 승리에 큰 부분이었어요. [미러, 97. 9. 29]

맨유는 이어지는 수요일에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이미 긱스가 부상으로 출장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로이 킨마저 빠지며 맨유는 전력에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9월 29일만 해도 퍼거슨이 킨의 부상이 심각해 보임을 인지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유벤투스 경기에 나올 수 없다는 정도였다.  

29일까지 기사 중 더 선은 유일하게 경기 당시 상황을 분석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을 다투던 상황에서 킨이 발을 뻗었고 홀란드와 함께 쓰러졌다. 킨은 주심이 페널티킥을 주길 바라며 누워있었을 것이다. 이미 경고를 받은 홀란드는 킨이 자신을 퇴장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일지 모르는 상황에 격분해서 하마터면 킨의 머리 위로 뛰어오를뻔 했다. 주심 보더넘은 킨의 의도를 알아채고 비신사적 행위로 경고를 주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홀란드는 로이 킨에게 부상을 입히지도, 침을 뱉지도 않았다. 로이 킨이 부상을 자초한 것이다. 홀란드의 잘못은 정말 다쳤던 로이 킨에게 안 다쳤으면서 속이고 있다는 혐의를 둔 것이다. 하지만 홀란드가 그런 오해를 한 것은 신문 기사에서도 나오듯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단지 결과적으로 소리지를 상대를 잘못 골랐을 뿐이다. 

부상 이후 로이 킨의 반응, 실제 부상 정도, 킨이 홀란드에게 느낀 분노 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번 글에서 다루기로 한다. 

2011/08/12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② : 프랑스 월드컵 결장의 가능성,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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