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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요바노비치를 보내며

by wannabe풍류객 2011.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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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부터 이어진 밀란 요바노비치와 리버풀의 인연은 어제 끝났다. 케니의 전임의 전임 감독이 여러 유명 클럽들과의 경쟁을 물리치고 이적료도 필요없는 영입을 확정지으며 큰 기대를 갖게 했으나 그는 공식적으로 1년 1개월 정도였던 리버풀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벨기에로 돌아갔다.

이미지 출처: http://www.rsca.be/go/nl/article/29988/milan_jovanovic_-_ontvangst_spelersgroep_was_hartelijk

비록 리버풀에서 실패한 선수 생활을 했지만 최근 벨기에의 뉴스들을 보면 요바는 여전히 그곳의 스타다. 심지어 이번 시즌 안더레흐트 최대 영입이라고까지 묘사되고 있다. 이런 선수가 어째서 리버풀에서 처참하게 후보로 밀려야만 했을까. 단순히 잉글랜드와 벨기에 리그의 현격한 수준 차를 언급할 수만은 없다. 요바노비치가 작년에 리버풀에 오기 전에 AC 밀란,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 등도 그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요바노비치의 불행은 처음부터 예견되었다. 2010년 1월 요바노비치는 자신이 리버풀의 관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요바노비치는 라파 베니테스가 다음 시즌에도 리버풀 감독이어야 이적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크리스천 퍼슬로우가 리버풀의 매니징 디렉터로 부임한 이후 기왕에 금이 갔던 구단 경영진과 라파의 관계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라파 베니테스가 요바노비치를 원했던 2010년 1월은 바로 라파 자신의 유벤투스 감독 부임 루머가 무성하게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이다. 그 루머는 시즌 막판까지 지속되었고 요바노비치의 리버풀 이적이 확정된 것은 6월의 일로 보인다.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한때 나는 라파가 작년 초부터 리버풀을 떠날 생각 혹은 각오를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런 혐의를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있다. 물론 혐의라고 할 것도 없이 당시 라파의 입장이라면 누구라도 더 버티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여하간 그렇게 리버풀을 떠날 가능성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던 와중에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다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라파의 감독 재임 기간이 다음(2010-11) 시즌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그러나 라파는 결국 버틸 수 없었고, 요바노비치의 이적은 미궁 속에 빠지는 듯 했으나 선수는 리버풀이면 감독이 누구라도 가겠다며 환호 속에 안필드에 입성했다(요바는 에버튼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에버튼은 빅 클럽이 아니라고 말해 리버풀 팬들을 더욱 기쁘게 했다). 

자신을 영입하는 감독이 사라진 클럽에 오겠다는 선수가 두려움이 없었을리 없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입지를 확신할만한 몇 가지 요소들이 있었다. 아마 선수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본인의 기량이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벨기에에서 수년 간 활약했고, 월드컵에서 독일을 상대로 득점했고, 리버풀이 아니라도 유럽의 탑 클럽들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버풀은 처음에 요바노비치에게 매우 상징적인 등번호인 10번을 선사했다(이전 10번이 보로닌이었다는 것은 잠시 잊자-_-). 또 주급으로 보자면 그는 누구보다 팀에서 높은 위상을 차지해야 마땅할 선수였다.

요바노비치가 처음에 리버풀과 가계약을 맺었을 때 연봉 3m 유로 혹은 계약 기간 3년 간 11m 유로를 받는다는 뉴스들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1년 간 요바노비치는 주급 12만 파운드를 받았다. 연봉이 6m 파운드(유로로 환산하면 더 큰 숫자가 된다는 의미다) 가량이라는 이야기다. 계약금을 1년 동안 나눠 받는 특수한 사례이긴 했으나 그 약속 때문에 리버풀은 일견 공짜 영입인 선수에게 1년 동안 어마어마한 돈을 낭비한 셈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1년전 요바노비치는 자신에 대한 클럽의 그런 좋은 대우 때문에 자신이 주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파의 후임인 로이 호지슨은 클럽의 열악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이런 클럽에 와준 요바노비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재앙으로 생각하는 로이 호지슨의 리버풀 감독 재임 시절은 요바노비치의 정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밀란은 열심히 뛰었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요바가 리버풀 선수로 뛰었던 프리미어 리그 열 경기에서 승리는 단 한 차례 밖에 없었다. 로이에게도, 요바에게도, 리버풀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도 기억하기 싫은 몇 달이 흘러갔다. 

그리고 2011년 1월, 킹 케니가 리버풀에 돌아왔다. 극적으로 좋아지는 경기력 덕분에 리버풀과 관련된 대부분이 환호했지만 요바에게는 출장 기회가 사라진 더 깊은 암흑의 시간이 찾아왔다. 밀란은 안더레흐트로 이적하며 리버풀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진 않았다. 다만 지난 반 년, 바로 케니 감독 하에서의 육개월 동안 부상도 아닌데 경기를 뛰지 못한 아쉬움은 드러냈다.

분명 케니의 플랜에 있지 않음을 알게 된 1월에도 요바노비치가 이적할 기회는 있었다. 현재 소속팀인 안더레흐트도 1월에 영입 가능성을 문의했다. 그러나 요바노비치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리버풀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겠다는 전의를 불태웠다. 그럼에도 기회가 없었다는 건 케니 달글리쉬가 보기에 요바가 충분치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 년 전에 블로그에 글을 적었지만 요바노비치가 호지슨 밑에서 고전한 것은 포지션에 대한 견해 차이 때문인지 모른다(2010/07/28 - 요바노비치의 베스트 포지션, 등번호 변경의 진실은?). 요바노비치 자신은 공격수로서 뛰기를 바라는데 호지슨은 요바를 윙어 자원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애초의 영입 감독이었던 라파는 요바를 윙보다는 윙 포워드로 활용하길 바랐던 것 같다. 베나윤, 리에라가 모두 라파와 사이가 틀어진 가운데 이적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바가 라파 밑에 있었어도 토레스를 스트라이커로 세우는 4-2-3-1 시스템에서 토레스의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영웅을 떠나보내는 리에쥬 팬들의 눈물을 뒤로 하고 당당하게 프리미어 리그에 입성한 요바노비치는 일 년 만에 리에쥬 팬들로부터 '유다노비치'라는 야유를 받으며 라이벌 클럽 안더레흐트로 이적했다. 그가 보낸 리버풀에서의 일 년은 리버풀 역사상 그 어떤 한 시즌보다 다사다난했던 시기였다. 아마 라파 베니테스가 있었다면 요바노비치의 리버풀 생활이 여러가지 면에서 조금은 더 나았을 것이다.

요바노비치를 보내며 딱 일 년 전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이었던 리버풀의 수준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원래부터 요바노비치가 리버풀 레벨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바노비치가 리버풀의 추락을 멈출 정도의 선수는 아니었다고만 해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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