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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38팀으로 구성된 아르헨티나 1부 리그 창설 계획 중단

by wannabe풍류객 2011.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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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트위터를 통해 희한한 소식을 접했다. 아르헨티나 리그가 1, 2부를 통합해 38팀으로 이루어진 리그를 만들 계획이며, 이는 얼마 전 강등당한 리버 플레이트[각주:1]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라는 내용이었다. 즉각적으로 드는 생각은 38팀이 어떻게 리그 경기를 치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양대 산맥의 하나인 리버의 강등은 적잖은 충격이었지만, 아르헨티나가 리버 플레이트를 구제하기 위해 리그 구조까지 바꿀 정도로 비상식적일줄은 몰랐다. 그래서 뉴스들을 보며 이 사건에 대한 글을 준비하던 사이 며칠 전 계획이 중단되었음이 공식 발표되었다. 그래도 이번 사건의 전말을 간략히 정리하는 게 의미가 있을 듯 하다. 

river plate
river plate by timsnel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우선 나 자신이 아르헨티나 리그에 대해 거의 지식이 없는데, 이번에 글들을 검색하다가 의외로 한국에도 남아메리카 축구 팬사이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 축구, 리버 플레이트의 강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곳의 글들로 대체하려고 한다. 더불어 6월 28일자 서호정의 칼럼도 도움이 된다(아래 링크 참조). 
http://safutbol.com/xe/index.php?mid=colomn&page=2&document_srl=15316
http://pann.nate.com/talk/311917785
http://safutbol.com/xe/index.php?document_srl=25505&mid=futbol01

110년 역사상 처음으로 리버 플레이트가 강등을 당한 것은 지난 6월 27일의 일이다. 강등을 결정할 홈 앤 어웨이 경기 중 어웨이에서 벨그라노에 2:0으로 패했던 리버는 운명을 결정할 홈 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거두며 결국 1부에 남지 못하게 되었다. 리버 플레이트의 팬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경찰은 물대포를 동원해 진압했다. 팬과 경찰이 모두 수십 명씩 다쳤고, 선수들은 경호를 받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이후 한 달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코파 아메리카가 진행되었고, 아르헨티나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8강에서 대회 우승팀 우루과이에 패했다. 아르헨티나의 감독은 자리를 떠나야했고, 같은 날 악명 높은 리그 개혁안이 발표되었던 것이다. 

영어 뉴스로 접할 수 있는 리그 변경안은 꽤 간단하지만 현지에서 발표된 내용은 훨씬 복잡하다. 기왕에 중단된 계획을 상세히 검토할 필요는 별로 없을 듯 한데, 자세한 내용은 아까 언급한 남아메리카 축구 팬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http://safutbol.com/xe/index.php?mid=futbol01&document_srl=31647). 

정리하자면 2012-13 시즌부터 현재 20개 팀인 1부 리그에 2부 리그의 16팀, 3부 리그 격인 프리메라 B 메트로폴리타나, 토르네오 아르헨티노 A의 우승팀 하나씩이 추가되어 38개가 1부 리그를 구성한다. 그러나 38팀 전체가 홈 앤 어웨이 경기를 치르는 것이 아니다. 38개 팀은 두 개의 리그로 분리되고 각각 19개 팀으로 구성된다. 각 리그는 홈 앤 어웨이가 아니라 단 한 경기씩 18 경기를 치르고, 전통의 라이벌 끼리의 인터존 홈 앤 어웨이 경기까지 합쳐 총 20경기를 치르게 된다.

이후의 진행 과정에 대해선 설명이 엇갈리는데 어떤 곳에서는 양 리그 상위 5개 팀씩 10팀이 챔피언십 스테이지를 치르고, 나머지 28팀이 강등을 다툰다고 한다. 그러나 챔피언십 스테이지에 10팀 이외에 양 리그 통털어 그 다음으로 높은 순위의 9팀이 포함된다는 설명이 더 그럴 듯 하다. 즉 38팀이 리그 후반기에는 성적 순으로 상위, 하위 각 19팀씩 두 개의 리그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하위 네 팀이 자동으로 강등되는 것 같다. 

이 리그 구조조정안은 처음부터 리버 플레이트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 때문에 큰 반대에 직면했다. 리버 플레이트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워낙에 유명하고 인기있는 클럽이기 때문이다. 클럽의 인기는 돈의 문제이기도 한데, 리버가 없는 리그의 인기는 줄어들 것이고, 리버의 입장에선 클럽의 수입이 급감하며 기왕의 위기가 악화될 것이다. 

그러나 회장 훌리오 그론도나로 대표되는 아르헨티나 축구협회(AFA) 측은 리버 플레이트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예전부터 계획한 일이라고 반박했다(그러나 나중에 협회 대변인은 리버 플레이트 때문임을 시인한다). 또 발표 하루만에 발표 내용을 번복 혹은 사실관계 확인을 거부하며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론도나 회장은 유일하게 결정된 것은 2부 리그도 무료로 TV중계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1부 리그는 '모두를 위한 축구'라는 정부 프로그램에 의해 이미 무료로 방송되고 있다). 그리고 1, 2부 통합 계획이 있으나 강제로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10월에 위원회에서 결정될 안에 불과하다고 의미를 축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축구에 정통한 이들은 이번 계획이 매우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이 계획을 최종 승인 혹은 거부할 10월은 아르헨티나 대선이 치러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현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의 재임이 유력한 가운데 리그 개혁안은 그론도나와 페르난데스 모두에게 윈윈 게임이라는 것이다. TV 중계료는 정부가 지불하므로 1부 리그의 클럽이 거의 두 배로 증가하면 리그가 받을 돈도 그만큼 증가한다. 더 많은 축구 경기를 볼 수 있게 될 결정은 현 대통령에게 정치적 인기를 선사할 것이다. 축구 협회장 선거에서 그론도나는 원래 2부 리그였던 클럽의 회장들로부터 많은 표를 얻어 재임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 계획은 지난 8월 1일 잠정적으로 중단되었음이 발표된다. 팬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반대 의견이 강하게 표출되었고 대규모 시위도 계획되었다. 그론도나는 자신의 진의가 오해되고 왜곡되었다며 억울하지만 혼란을 초래했던 리그 개혁안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다. 대신 협회가 아니라 클럽들이 알아서 개혁을 추진할 수도 있다면 여운을 남겼다

축구 전술의 대가 조내선 윌슨은 SI의 칼럼에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의 결정 과정을 축구 경기력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잉글랜드 크리켓이 경쟁이 별로 없는 국내 대회 탓에 국제 대회에서 힘을 못 쓰다가 승강제를 도입한 이후 서서히 성적이 좋아졌던 사례에 비추어 아르헨티나의 계획은 대표팀은 물론 리그 전반의 경기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파퓰리스트적 냄새가 짙었던 아르헨티나 축구의 리그 개혁 계획을 대강 훑어보며 이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르헨티나 정치도 어느 정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사하게 한국에서는 주요 스포츠 대회의 중계권을 SBS가 독점하며 '보편적 시청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던 바 있다. 따지고 보면 그런 게 있을리 없다. 중계권이 팔릴 수 있는 대상이라면 누군가가 독점해서 특정 대상에게만 공개할 수도 있다. 보편적 시청권도 매우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투쟁의 언어일 뿐이다. 요즘 누가 파퓰리스트가 아닌가?
  1. 리버 플레이트가 정말 강 이름이라는 걸 처음 확실하게 알았다. 그러므로 영어 이름, 리버 플레이트라고 쓰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영어 위키피디아나 포르보닷컴 등을 보면 '리베르 플레이트'라고 읽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여기서는 리버 플레이트로 적는다. 참고삼아 BBC TV 프로그램을 보면 BBC 리포터와 현지인 모두 '리버'라고 말하는 걸 들을 수 있다. http://www.bbc.co.uk/news/world-latin-america-1073923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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