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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새 리버풀 감독 케니 달글리쉬 -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작

by wannabe풍류객 2011.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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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ssroots Football with Kenny Dalglish
Grassroots Football with Kenny Dalglish by DUP Photos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로이 호지슨이 리버풀을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팬들 사이에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케니 달글리쉬가 호지슨에 이어 여름까지 리버풀의 임시 감독이 되었다는 소식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이제 하루만에 맨유와의 경기를 맞이해야할 케니. 그런데 케니는 공교롭게도 아니 아마도 의도적으로 리버풀과 멀리 떨어져 중동에서 크루즈 여행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맨유 경기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지 모른다. 

사실 로이 호지슨이 내일 있을 맨유와의 FA컵 원정 경기 때까지는 팀에 남을 것 같다는 것이 대다수의 관측이었다. 그러나 그는 오늘 상호합의하에 리버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먼 옛날 샹클리에서 케니까지 이어진 부트룸의 전설 시기에 리버풀 감독의 해고란 있을 수 없었다. 리버풀을 위한 자진 사퇴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수네스, 에반스, 울리에, 베니테스 그리고 호지슨까지 모두 상호합의를 빙자하여 해고되었다. 

명예의 외피로 가장한 리버풀의 평화로운 그러나 저조한 성적의 나날은 최근 최저점을 향하던 차였다. 호지슨은 이미 오래전부터-예상보다 빨리 클럽 인수가 완료된 순간부터- 불안한 위치였다. 물론 만약 호지슨의 리버풀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면 새 구단주들이 감독을 굳이 교체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월드컵 참여 선수들의 피로와 부상, 마스케라노의 이적, 영입한 선수들의 전반적인 부진, 호지슨의 소극적 전술 등 악재가 겹치며 리버풀은 10위 안에서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팀이 되어버렸다. 홈경기에서 하위권, 승격팀과의 경기 결과조차 안심할 수 없었다. 호지슨의 잦은 말실수가 버무려져 그는 사상 최악의 리버풀 감독으로 이미 낙인찍혔다.

호지슨이 비판자들의 견지에서 보자면 호지슨은 지나치게 운이 좋았고, 기자나 다른 감독들과의 원만한 대인관계를 통해 부진한 성적에도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로 접점이 없을 것 같은 키건, 반스, 맥마나만 등의 전 리버풀 스타들이 바로 어제 호지슨 감독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들은 단순히 호지슨을 좋아해서 그렇게 말했을까? 그들은 리버풀 팬들 다수가 공유한 상식이 부족한 것일까? 

여름부터 지금까지 리버풀 팬사이트에서는 '어젠다'라는 말이 많이 등장했다. 언론이 잉글리쉬를 선호하는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친 호지슨, 반 베니테스의 어젠다로 일관했다는 게 다수가 말하는 단어의 용법이었고, 일부는 호지슨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리버풀 관련 소위 '전문가', 팬사이트들의 어젠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어느 쪽이건 정말 그런 현상이 있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양쪽 모두 그런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의 추악한 작태야 보편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호지슨 퇴출을 주도한 리버풀 팬 집단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했을까. 누군가의 말처럼 리버풀 팬들은 외계인 구단주 힉스와 질렛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착각하게 되면서 자신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있다고 너무나 지나치게 믿게 되었는지 모른다. '힉질'을 몰아낸 것은 분명 RBS였다. 하지만 일단 악의 근원이 사라지자 그들이 남긴 마지막 유산 호지슨이 모든 비난의 화살을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옛 구단주들에 대한 반대가 정당했다면 호지슨이 받은 비판은 과도했다. 여기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리버풀은 프리미어 리그의 축구 클럽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성적이다. 2~3년 동안 리버풀의 성적 부진의 이유는 '망할' 구단주들이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은 탓이었다. 몇 달 전 그들은 사라졌다. 이후 개념있는 구단주 밑에서 모든 게 다 잘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모두 호지슨의 탓이 되었다. 그런데 그도 떠났다. 만약 리버풀의 문제가 구조적인 것이라 장기적인 해결책 밖에 없다면 케니 달글리쉬가 아무리 뛰어나도 반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치유할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의 부진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 팬들은 어디에 대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호지슨 해고를 늦춘 구단주? 게으르고 성의없이 뛴 스타 선수들? 설마 달글리쉬에게?

처음부터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호지슨은 단기적인 땜질용 감독이었다. 임시 감독 케니의 성격도 현재로서는 마찬가지다. 그가 리버풀의 분위기와 경기력을 180도 바꿀 수 있다면 찬양해 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땜질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품을 수 없다. 현재 리버풀에 필요한 건 전면적인 개혁이고, 케니는 구단주들이 원하는 변화가 이루어질 시간을 버는 조치일 뿐이다. 우리가 그에게 기대할 것은 호지슨이 이루지 못한 선수단의 안정, 조금은 나아진 성적 정도가 될 것이다. 

호지슨이 이미 열흘 정도 전부터 사실상 감독 자리를 유지할 수 없었음에도 해고되지 않은 것은 구단주들이 케니 달글리쉬 감독에 대해 고민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팬들은 거의 대부분 그를 원했다. 하지만 케니가 남은 시즌 동안 너무 잘 한다면 그가 더 오래 하고 싶어할 것이라는 점이 걸림돌이었다. 존 헨리는 40대 정도의 젊은 감독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니가 아닌 누가 임시 감독이 되었건 팀을 잘 이끈다면 더 오래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20년만에 리버풀에 돌아온 케니가, 10년 넘게 현직을 떠난 케니가 얼마나 잘 해줄지 궁금하고 불안하다. 

케니가 자초한 일이니 일이 잘 안 풀렸을 때의 책임은 생각하지 않겠다. 며칠 전 호지슨의 경질설과 자신이 차기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말이 나돌 때 그는 호지슨을 지지하자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작년 여름 호지슨보다는 자기가 낫다는 생각을 했던 케니. 작년 여름보다 우호적인 환경의 이번 겨울부터 그는 자신의 생각과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리버풀에 대한 그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는다. 과거 그의 감독 능력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리버풀 최고의 레전드라는 자신의 영원한 명예의 일정 부분의 손상을 무릅쓴 결과를 그 스스로 느껴야만 한다. 

한 사람이 같은 클럽의 감독을 여러 번 맡는 일이 흔치는 않으나 좋게 끝나는 경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킹' 케니가 모든 불안 요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에 평화를 가져올(번영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바로 그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떠난 호지슨에겐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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