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내 이름은 빨강 - 오르한 파묵

by wannabe풍류객 2011. 10. 28.
반응형

드디어 '내 이름은 빨강'을 다 봤다. 작가의 명성과 출판사의 마케팅에 이끌려 출간 초기에 책을 샀지만(그 책은 고향집에 있다) 오늘에서야 도서관에서 대출한 놈으로 다 읽었다. 원래 지난 주에 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자리가 있었지만 그 때까지는 1권밖에 읽지 못했다. 추리소설의 형식이라 재밌게 빨리 읽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음에도 두 권의 소설책을 읽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초판을 갖고 있고, 도서관 책도 위 표지를 가진 구판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민음사의 모던 클랙식이라는 시리즈의 하나로 새로운 판본이 나왔다. 난 이미 샀으니 상관없으나 알라딘에서 현재 절반으로 할인된 가격에 팔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사실 처음으로 책을 다 읽은 지금 이 책의 인기의 본질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난해한 책을 읽은 사람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플롯이나 역사적 배경 자체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책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16세기까지의 오스만 제국의 역사는 거의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다. 이 책을 사고 몇 번이나 읽으려고 시도하다가 포기한 것은 전혀 모르는 문화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다. 익숙치 않은 이름들, 그것도 한국인으로서 거의 접하기 힘든 과거의 지명, 인명들. 맥락을 모른 채 책을 읽는다는 것은 큰 고통이다. 물론 이런 책을 통해 그 맥락을 공부하게 되는 측면이 있으나 한국의 수많은 독자들이 그 난관을 어떻게 뛰어넘었는지는 의문이다. 

책의 형식인 추리 소설적 방식은 흥미를 키우기도 했지만 나같은 경우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했다. 적어도 이번의 독서 이전의 실패했던 독서 시도들에서는. 나는~으로 시작되는 각 장은 계속해서 다른 화자가 나와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보통 개가 화자로 나오는 장면에서 독서가 멈추곤 했다. 소설에서 개가 말하는 것이 별날 것도 없고, 특이 이 소설에서는 그림 속의 개가 말하는 것이지만 도대체 왜 이 부분이 소설에 들어가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나무나 악마, 말 심지어 그냥 빨간 색마저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장들의 역할은 나중에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이 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재독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그렇게 하기는 힘들 듯 하고 책을 읽은 기억이 쉬 사라지기 전에 몇 가지 포인트로 나눠서 정리해두기로 한다. 


1. 이름들

이난아씨가 고생해서 터키어에서 직역한 이 소설의 번역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카라'가 아닐까 싶다. 카라는 검은 색을 뜻하는데 이난아씨는 '검정'이라는 의미를 번역하지 않고 소설 속에서 전부 '카라'라고 표기해버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검정'이라고 하는 게 맞다. 내가 터키어를 알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책의 영문판을 보면 카라가 아닌 블랙이라고 표기된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화원들 엘레강스, 나비, 황새, 올리브는 번역을 했는데 카라는 원어를 쓸 이유가 있을까? 물론 검정이라고 하면 사람 이름같지 않아 몰입이 잘 안 되는 측면이 있겠지만 작가가 굳이 그렇게 쓴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책의 제목에 빨강이 들어갈 정도로 색이 중요한 소설에서 검정이라고 번역했을 경우 더 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다음으로 이 책에서 중요한 인물들인 셰큐레, 셰브켓, 오르한이라는 이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르한이라는 이름을 볼 때 이것이 작가 자신의 이름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놀랍게도 책의 마지막을 보면 어머니 셰큐레가 오르한이 이 소설의 작가임을 밝히며 내 상상이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셰큐레는 실제 오르한 파묵의 어머니 이름이며, 세브켓은 형의 이름이다

엘레강스, 나비, 황새, 올리브라는 예명들이 각 화가의 화풍이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의미가 있을 터이다. 나중에 알게 되면 내용을 추가해보기로 한다. 


2. 터키적 정체성

지난 주 독서 모임에서 나의 선생님께서는 이 소설의 가치를 변신을 거듭하며 생존한 터키적 정체성에 두셨다. 돌궐족 시기부터 유럽에 이르기까지 긴 거리를 장시간에 걸쳐 이주하며 변해갔던 그들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맞는 해석이라고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파묵의 다른 소설 '하얀 성'에서는 베네치아 사람이 터키 땅으로 와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마주하며 정체성이 헛갈리고 교환되는 묘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전히 유럽이면서 아니기도 한 터키의 애매한 현실은 파묵의 소설에서 반복되는 주제이자 가장 중요한 대목인지도 모른다. 



3. 서구적 근대 미술

소설을 놓고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독서 모임에서 할 이야기가 많지는 않았으나, 논의의 초점은 소설이 근대화론의 자장 속에 포함된 것이냐 아니냐로 몰렸다. 일견 소설은 이슬람교의 교리에 따라 그림을 그려야만 했던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화풍이 원근법 등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사실적 초상화, 풍경화 방식 때문에 무너지는 내용처럼 보인다. 몇몇 인물들의 대사는 파묵이 서구적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냐는 혐의를 두게 했다. 결국 기존의 신의 눈을 대변하는 그림이 망하고 예술가의 자의식이 강조되는 화풍, 즉 유럽의 화풍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혐의였다.

1권밖에 못 읽은 나는 아무 말도 못했지만 이제와 평가하건대 파묵이 서구적 근대화론자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내용을 어디까지 서술해야 할지 망설여지지만 소설은 결론적으로 유럽 화풍이 지배하는 오스만 제국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자체가 사소한 일이 되어버린 시대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세밀화 자체가 사라지는 마당에 유럽 화풍이 대세가 될까봐 걱정하던 몇몇 화원의 생각 때문에 소설이 근대화론적 주제를 갖고 있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소설에서 강조되지만 이슬람에서 그림은 권장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밀화는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오직 책 속에서만 살아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나마도 긴 시간 존속한 전통도 아니었다. 짧았던 이 회화의 역사는 터키사의 한 대목에 불과하다. 

유럽을 동경하고, 자신의 스타일과 개성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던 예술가들이 있었을 수 있다. 어떤 분은 소설 각 장의 이름이 나는 누구누구라고 말하는 식으로 된 것을 보아 소설이 개성을 강조한 것이 아니냐고(이것도 서구적 근대의 중요한 잣대다) 보았지만 내 생각엔 여러 명이 함께 제작하는 세밀화의 제작 방식을 본 따 소설의 구성을 그림의 여러 파트를 나누어서 설명하듯이 쓴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서구 근대화 이전의 시기라고 해도 사람들이 천편일률적 사고를 한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핵심적 사회의 구성 원리인 교리에 대해서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음은 어떤 역사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시대의 패러다임 속에서 대부분은 비슷한 이야기를 조금씩 다르게 했던 것에 불과하다. 16세기에 유럽을 깔보던 오스만 제국이 유럽 화풍에 지배될까바 벌벌 떨었다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술탄 자체가 서양 화풍을 도입한 세밀화책을 제작하라고 명령하지 않았나. 

그림 곳곳에서 완벽하게 무시된 원근법을 볼 수 있다. 


4. 작가 오르한 파묵

소설은 간단하게 적기 힘들 정도로 꽤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각 장을 다른 나레이터들이 설명을 하는 형식이고, 궁극적으로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오르한(파묵)이다. 오르한 파묵이 작가인데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결말을 보면 마치 소설 속 셰큐레의 작은 아들 오르한이 성장한 이후 이 소설을 다시 쓴 것처럼 보이게 구성되어 있다. 물론 16세기에 오르한 파묵이 살았을리가 만무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터키라는 오스만 제국과 일치하지 않는 근대적 국가의 일인인 오르한 파묵이 훨씬 넓은 땅을 지배하며 극도로 다양한 인간 집단들이 공존했던 제국의 시대의 인물의 시점에서 생각해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혹은 제국과 축소된 근대 국가라는 큰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16세기의 인물이 바로 현재의 터키인과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난아씨가 작품 해설에서 말하듯이 파묵이 터키의 회화가 페르시아 회화에 비해 혁신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애국적 내용이라고 봐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5. 기타

마지막으로 인상 깊은 부분들을 짤게 언급하고 마치려고 한다. 
- 뺨 때리는 셰큐레. 어머니가 아이의 뺨을 때리면서 훈육하는 것은 이슬람의 전통인가 아니면 오르한 파묵 개인의 체험인가?
- 꽤나 상세하고 체험적인 것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성적 묘사들이 많이 나온다. 남색을 미화한 대목도 인상적.
- 눈을 바늘로 찔러 실명하는 이야기와 더불어 소설 속에는 잔혹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세밀화 내용 중에도 섬뜩한 장면들이 있는 모양인데 한 번 보고 싶다. 아래 그림처럼 도축하는 장면 말고는 아직 인터넷에서 발견하지 못했다. 
- 하지만 무엇보다 사랑 이야기를 그린 세밀화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직은 못 찾았다. 
- 도대체 빨강의 의미는 무엇일까? 소설의 배경이 된 역사적 상황을 알아야 이해가 되는 것? 그렇다면 검정은? 암흑? 눈멈? 장님? 신의 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