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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리버풀의 한국 방문 결정, 혹은 내가 그 경기를 보는 것이 망설여지는 이유

by wannabe풍류객 201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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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한국 방문이 포함된 2011년 아시아 투어 계획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온다고만 할 뿐 상세한 일정과 상대팀은 나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어제 리버풀 측이 밝힌 내용은 리버풀이 7월 중 열흘 일정으로 광저우, 쿠알라 룸푸르, 서울을 방문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뉴스들에 따르면 리버풀이 프로모터를 통해 7월 19일에 FC 서울과 경기를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잘 알려져있는 것처럼 FC 서울은 19일 전후로 빽빽한 공식 일정을 치를 가능성이 있어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리버풀과 경기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리버풀이 한국에 올 의향이 있다는 뉴스가 처음 나온 이후 또 맨유, 바르셀로나처럼 K-리그를 무시하는 조치가 취해질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미리 리버풀을 비난하는 것은 무모하다. 하지만 리버풀의 그동안의 아시아 투어 역사를 통해 이번 서울 방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리버풀이 프리 시즌에 유럽 이외 지역으로 투어를 간 기록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2000년 이전에도 간 적이 있을지 모르나 찾아보진 않았다). 리버풀은 주로 아시아를 방문 지역으로 삼아왔다. 기본적으로 월드컵이나 유로 대회가 없는 홀수 해마다 투어를 갔다. 그런만큼 대표팀 경기에 참여하는 수준의 핵심 선수들이 보통 포함되었다. 

첫번째 방문은 2001년이었다. 7월 16일에 싱가포르 리그 선발팀과, 19일에 태국팀과 경기를 가졌다. 2003년에는 며칠 더 늦춰 7월 24일에 태국, 27일에 홍콩과 경기했다(투어에 대한 오피셜 사이트의 뉴스가 존재하는 것은 2003년부터다). 

2005년의 경우 리버풀은 7월 13일부터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했기 때문에 투어를 갈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당시 리버풀은 전 시즌 리그 5위팀이지만 우승팀 자격으로 챔피언스 리그에 참여한 바 있다. 대신 대회 예선에 참여하기 위해 시즌을 아주 일찍 시작해야했다. 

2007년에는 바클레이스 아시아 컵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홍콩을 방문했다. 일주일간 머물면서 7월 24일에 사우스 차이나와, 27일에 포츠머스와 경기했다.   

2009년에는 7월 22일에 태국, 26일에 싱가포르와 경기를 가졌다. 당시 기록을 보면 리버풀은 태국 총리, 태국 FA 회장과의 만남은 물론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고 적혀 있다. 심지어 해당 뉴스의 첫부분은 태국 사람들이 리버풀과의 이별에 눈물을 흘린다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현 리버풀 매니징 디렉터인 이안 에어는 당시 "리버풀이 싱가포르에서 가장 인기있는 클럽인 것을 안다"고 말했다.  

이런 역사를 보면 리버풀은 그동안 주로 홀수 해의 7월에 아시아로, 그 중 태국, 싱가포르, 홍콩으로만 투어를 갔음을 알 수 있다. 리버풀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리버풀의 인기가 상당함을 인식했고, 현지에서 투어를 통해 인기를 실감했기 때문에 그들 지역으로 계속 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리버풀이 7월에 아시아를 방문하는 건 그들 입장에서는 아주 오래된 관행이었음을 올해 한국 방문을 평가할 때 참고해야 함을 지적하고 싶다.

그렇다면 리버풀의 올해 아시아 투어는 왜 전혀 다른 국가들을 선택한 것일까?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그리고 아마도 결정적인 이유은 리버풀의 메인 스폰서 스탠다드 차타드의 입김이다. 이번 리버풀의 공식 발표에도 명백하게 나와있듯이 올해의 투어는 스탠다드 차타드의 후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스탠다드 차타드는 글로벌 기업이라서 태국, 싱가포르 등에도 지점을 두고 있지만 더 큰 시장이라는 측면에서 중국, 한국을 공격적인 마케팅의 목표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가 포함된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이 은행의 전략적 이익이 결부되었기 때문에 선택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올 여름 리버풀의 한국 방문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언제 오는 것일까. 이번 투어는 예전 투어의 통상적인 기간인 일주일보다 긴 열흘 일정이다. 기본적인 사실은 6월 혹은 8월과 겹치지 않게 7월 중에만 치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만약 소문대로 서울에서 19일에 경기를 한다면 대략 10일에서 20일 사이가 아시아 투어의 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투어에서는 7월 중순과 하순의 두 가지 패턴을 보였는데 어떤 점이 일정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특히 이번 투어는 3개국을 거치는 일정이기 때문에 개별 국가에서의 조율은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투어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축구협회, 리그 연맹, 상대할 팀들과의 조율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FC 서울과 확실하게 합의된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FC 서울은 기본적으로 19일에 경기를 할 의향은 있으나 자신들이 FA컵 8강에 오를 경우 20일에 컵 대회 경기를 가져야한다. 그럴 경우 FC 서울은 컵 대회 일정이 조정될 경우에만 경기를 할 수 있다. 만약 FC 서울이 리버풀과의 친선 경기 때문에 공식 경기 일정을 조정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비난 여론이 쇄도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맨유나 바르셀로나에 비해 인지도, 인기가 떨어지는 리버풀 때문이라면 한국 축구가 그렇게 만만하냐, 연맹이나 협회는 호구냐는 비난의 목소리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기존 리버풀의 아시아 투어의 경우에도 방문국가들은 국내 리그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도 리그의 대표 선수들로 꾸려진 팀 혹은 심지어 국가대표팀이 리버풀과 경기를 가졌다. 만약 태국 등지에서 리버풀이 한국의 맨유를 능가하는 국민 클럽이라면 그런 대응이 자연스러운지도 모르겠다. 2009년 싱가포르 축구협회장은 아주 열렬하게 리버풀의 방문을 환영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리버풀을 모셔온 것이다. 이는 최근의 한국 축구계의 분위기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만큼 한국 축구가 성장했고, 국내 리그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국 리그는 2월에 시작해 1월 말에 끝나는 아주 긴 레이스다. 그런 만큼 중간에 장기간 휴식기도 있는데 이렇게 빡빡하지 않은 일정 때문에 리버풀의 투어 때 배려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홍콩의 축구 리그 일정은 유럽과 같은 패턴이므로 여름의 친선 경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싱가포르의 경우 리그가 2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나는데 2009년 리버풀이 방문했던 7월 26일에는 경기가 없었다. 원래 그 날 일정이 없었는지 투어로 인한 조정의 결과인지는 불확실하다. 

리버풀이 여름에 중국에서 어떤 팀과 경기를 할 지는 미지수인데 광저우로 가는 이상 광저우와 경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광저우는 7월에 6일, 10일, 14일, 30일에 리그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일정을 볼 때 서울에서 19일에 경기가 있다면 광저우는 10일과 14일 사이에 리버풀과 경기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광저우 측이 이를 수용했는지 의문이다. 중국 리그 일정을 감안하면 리버풀은 14일에서 30일 사이에 중국을 방문해야 한다. 말레이시아 리그는 1월에 시작해 7월 9일에 끝나므로 리버풀 투어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리버풀이 2009년에 처음에는 9일 일정으로 홍콩, 태국, 싱가포르를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두 국가만 방문하는 것으로 변경된 사례가 있어 확정된 일정이 나오기 전까지는 섣부른 판단을 금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는 대대적인 발표가 있었으므로 가능한 세 국가를 모두 방문하여 경기를 치르려고 하겠지만 중국이나 한국의 리그 일정과 맞지 않으면 어느 한 국가에서의 일정이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전통적으로 리버풀에 열광하는 국가들이 아닌 다른 국가들을 선택한 리버풀 혹은 스탠다드 차타드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국내 팬들 사이의 반응은 뜨겁다(실제로 몇 명이 경기장에 갈지는 별개로 하자). 기업으로서의 리버풀과 스탠다드 차타드는 우리 한국인들, 한국의 리버풀팬들의 광적인 환호와 환영을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먼 땅 아시아의 팬들이 눈물을 흘리고 쉴새 없이 자신들을 스토킹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들의 돈자루에 많은 돈을 바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팬이면서도 이번 투어 경기 관람에 망설여지는 이유다.

예전 국내에서 열리던 피스컵 초창기에 토트넘의 경기를 보러 수원에 간 적이 있다. 경기를 봤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단지 내가 그 팀의 팬이 아니라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벤트성 경기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팀이라도 리그 우승처럼 그 팀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위해 투쟁할 때가 아름답지 상업적인 목적의 불성실한 경기는 보고 싶지 않다. 

물론 프리 시즌의 경기들은 새로운 시즌을 대비하여 팀을 정비하고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기간이긴 하다. 새롭게 영입한 선수들이 첫 선을 보이는 자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리버풀 팬의 입장에서 (그럴리는 없겠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너무 열심히 뛰다 다치면 마음이 더 상할 것 같다. 단순히 그들의 얼굴을 보러 가는 건 지나친 돈 낭비다. 최근 몇 년 풀죽어 있는 리버풀의 기를 북돋아 주는 게 가능하다면 그 목적 정도는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엉터리 혹은 비상식적인 영어가 적힌 배너를 들고 국제적 망신을 당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7월의 어느 날 상암 경기장에 앉아있을지 여부는 상황을 더 지켜보고 결정하려고 한다. 

* 속보로 짧게 언급하면 제라드의 시즌 아웃이 확정되었다.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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