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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웨스트 브롬 경기 패배의 쓴 맛

by wannabe풍류객 2011.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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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뿐이다. 그리고 작은 중얼거림만이 존재한다. 

케니 달글리쉬와 함께 리그 5위 이상의 성적을 엿보던 리버풀이 또 다시 좌절을 맛보았다. 리버풀에 패배를 안긴 상대는 다름 아닌 전 감독 로이 호지슨의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이다. 이 경기가 있기 전까지 국가 대표팀의 경기 기간이라 클럽에 대한 뉴스거리들이 뜸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리버풀 감독 교체의 역사 때문에 양쪽 감독들의 말들은 자연스러운 뉴스감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좋아할만한 적대적인 말다툼, 기싸움은 없었다. 케니는 로이를 존중했고, 로이는 케니의 존재가 자신의 해임을 서두른 측면이 있다고 말했지만(이조차 예전부터 했던 말이다) 케니에 대한 원한을 말하지는 않았다. 

경기 시작 전에 두 감독은 웃으며 악수했다. 후반 초반에 스크르텔이 헤딩으로 선제골을 넣으며 리버풀 팬들이 경기가 끝난 후 호지슨을 비웃게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웨스트 브롬은 두 번의 페널티킥을 성공하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존슨과 아거가 부상으로 조기에 교체된 리버풀은 제라드가 훈련 중 다시 부상을 당해 언제 복귀할지 알 수 없다는 설상가상의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웨스트 브롬이 얻은 페널티킥들은 논쟁적인 판정의 결과였지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키리아코스가 명백한 실수를 두 번 했고, 이 그리스인은 오뎀윈기를 상대하기엔 너무 느렸던 것 같다. 다니엘 아거가 부상으로 교체되지 않았다면 상황은 달랐겠지만, 부상이 잦은 아거를 주전 수비수로 삼은 리버풀이 겪어야할 숙명이었다.

리버풀에서 몇 번의 말실수로 리버풀 감독 감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은 로이 호지슨이지만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았다. 리버풀에 이긴 것에 기쁘지만 복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웨스트 브롬이라는 클럽이 리버풀을 이기는 게 흔치 않기 때문에 기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리버풀이 웨스트 브롬에 진 것은 30년만의 일이다. 리버풀의 온갖 나쁜 기록을 깼던 로이 호지슨 덕분에 킹 케니도 그 일을 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리버풀의 문제가 케니 달글리쉬로 만회될 일은 아님이 다시 드러난 것이다.

리버풀 에코는 웨스트 브롬 경기가 있기 전 칼럼을 통해 로이 호지슨의 죄악을 다시 조목조목 따졌다. 마치 감독 자리가 케니 달글리쉬라는 올바른 사람에게 돌아간 리버풀이 이제 호지슨을 단죄할 차례라는 듯이. 실제 경기 라인업에는 호지슨의 대표적 영입 실패작인 콘체스키와 폴슨이 빠졌다. 호지슨이 영입한 메이렐레스가 유일하게 포함되었지만 이 리버풀은  케니의 리버풀이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케니의 지휘 아래 수아레스와 캐롤이 모두 가동된 리버풀이 호지슨에게 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 이제는 침묵 뿐이다. 그리고 작은 중얼거림만이 존재한다. 

경기가 끝난 후 데일리 메일은 로이 호지슨이 해임될 때 보상금으로 7.3m 파운드라는 거액을 받았다는 기사를 공개했다. 리버풀 팬들은 이 일을 두고 다시 분노했지만 이미 1월에 거의 같은 내용의 기사가 뉴스 오브 더 월드에서 공개된 바 있다. 새로운 일도 아니고, 원래 알려진 3m 파운드이건 더 많은 돈이건 리버풀이 로이 호지슨을 영입하며 약속한 부분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호지슨이 리버풀에서 강탈한 돈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조건을 제시 혹은 수용하며 호지슨을 영입한 이전 구단주 체제(마틴 브로튼 회장과 매니징 디렉터 퍼슬로우를 포함한)의 실수를 지적해야 한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글을 쓰고, 사커노믹스 같은 책의 저자이기도 한 싸이먼 쿠퍼는 최근 한 글에서 자신이 통계를 돌려본 결과 32살이 넘은 축구 선수가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 글을 근거로 톰킨스 타임즈는 "제라드가 녹고 있다"는 글을 썼는데(유료 사이트라 전문을 읽을 수는 없었다), 이미 리버풀의 캐러거는 32살을 넘겼고 주장이자 가장 핵심 선수인 제라드도 녹아내릴 시점이 멀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리버풀이라는 클럽의 리빌딩은 시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구단주 힉스와 질렛이 투자를 멈춘 이후 리버풀은 정체 상태조차도 사치인 후퇴하는 클럽이었다. 지난 겨울 불만 가득한 토레스를 보내고 캐롤과 수아레스를 영입한 것은 작은 개선일 뿐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리버풀 팬들이 진정 씁쓸하게 생각할 일은 깔보고 저주하던 로이 호지슨에게 졌다는 결과 자체가 아니라 몇 가지 긍정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이 근본적으로 이토록 취약해졌음을 다시 인식하게 된 점일 것이다.

사커노믹스 - 10점
사이먼 쿠퍼 & 스테판 지만스키 지음, 오윤성.이채린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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