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버풀 & 축구

'콥(kop)'에 대해 바로 알기

by wannabe풍류객 2011. 4. 11.
반응형

리버풀이 7월에 한국에 올 예정이라 국내 리버풀 팬들이 환영과 응원할 준비를 잘 하자고 다짐을 하고 있다. 전에 맨유가 왔을 때 상암 경기장을 올드 트래포드로 둔갑시킨 몰상식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맨유팬들이 써먹었으니 'This is Anfield'라는 문구가 경기장에 등장하지는 않으리라 기대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콥이다. 

'콥'이라는 표현은 최근 국내 리버풀 팬사이트들에서 꽤나 잘못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실수는 리버풀 팬이 스스로를 콥이라고 부르는 용어 사용법이다. 즉 한국의 리버풀팬이 스스로를 '콥', 혹은 the를 붙여 '더 콥'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틀린 표현이고, 7월에 상암 경기장에 그렇게 표기된 깃발이 걸릴까봐 우려된다.

'콥'은 리버풀 홈구장 안필드의 한쪽 스탠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보통 그 구역에서는 리버풀의 대단한 열성 팬들이 모여서 깃발을 흔들고 응원가를 소리높여 부른다. 그 콥 스탠드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코파이트(kopite)라고 지칭한다. 사람을 지칭할 때는 콥이 아니라 '코파이트'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안필드에서 응원하는 대다수의 사람은 리버풀 팬이므로 굳이 코파이트를 리버풀 팬 전반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 그냥 콥 스탠드에 있는 사람만 코파이트라고 하면 된다. 게다가 콥은 리버풀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코파이트가 콥 스탠드에 있는 팬의 범위를 넘어 리버풀 팬 일반을 지칭하는 식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긴 하다. 국내 리버풀 팬들의 경우 굳이 원한다면 "나는 코파이트다"라고 해야지 "나는 콥이다"라고 하면 이상한 표현이 되어 버린다.

콥의 유래에 대해서는 대강의 사정이 알려져있는데 다시 정리해보기로 한다. 콥의 기원은 1900년의 보어 전쟁 중 스피온 콥 전투다. 스피온 콥은 '스파이 언덕'이라는 의미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위치한 이 언덕에서 리버풀과 그 주변 지역출신의 많은 영국군이 보어인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그러므로 "나는 콥이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언덕이다"라고 말하는 꼴이 됨을 상기하길 바란다. 


스피온 콥은 당시 젊은 처칠이 기자로 남아공 지역에서 이 전투를 취재했고, 마찬가지로 젊었던 변호사 간디가 구급대를 조직해서 스트레쳐를 들고 다니기도 하는 등 묘한 역사가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이 전투에서 영국은 15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패했는데, 다시 조사하니 전투의 성격이 전에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영국군의 상대인 보어인은 네덜란드계의 백인이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땅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백인끼리의 전쟁이었고, 제국의 군대와 농부 등이 모인 민병대가 대결한 전쟁이었다.

이 독특한 전쟁의 전장(戰場)이 잉글랜드 축구장에 이식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콥 스탠드가 안필드, 리버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상당히 여러 경기장에 콥이 존재한다. 그 중에는 리버풀 팬들 96명이 사망했던 힐스보로 경기장도 포함되어 있다. 자카리아라는 유명 경제전문가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일개 농민군에게 대패했던 충격적인 사건 보어 전쟁이 대영제국 몰락의 서막이라고 파악하기도 한다.

지금도 남아공에는 스피온 콥이 존재한다

영국인들, 특히 리버풀 사람들은 1906년 경기장 한 켠의 거대한 언덕을 스피온 콥이라 부르며 아프리카의 전쟁을 제국의 항구도시에 이식했다. 스피온 콥 전투에서 특히 많은 리버풀 사람이 사망했기에 그들에게 그 이름이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식민지화 되었던 한국의 운명을 생각할 때 한국인들이 제국의 산물인 스피온 콥 전투를 단지 리버풀 팬이라는 이유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그네들이 자국인이나 조상을 추모하는 건 추모하는 것이고, 전쟁의 원인이나 책임에 대한 잘잘못은 따로 가릴 일이다. 

대강 생각하면 비행기표나 영국 체류비 걱정할 필요 없이 좋아하는 축구팀이 한국에 오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영국 제국주의의 대표 주자였던 축구와 자본주의의 첨병(헤지펀드로 부를 축적한 존 헨리 리버풀 구단주와 글로벌 은행 스탠다드 차타드)이 합작하여 기획한 리버풀의 아시아 투어에 약간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케다 같은 놈이 한국인을 상대로 원숭이 세러모니를 하는데도 좋다고 환호할 정도로 소통이 안 되어서는 험한 꼴을 다시 당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 글의 일부를 TP에 올린 후 다른 분(Red Submarine)의 지적 및 나름의 검색을 통해 the Kop이라는 표현이 Kop 스탠드에 있는 리버풀팬들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함을 확인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버풀 팬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확장해서 사용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오래간만에 유익한 토론을 했다. 
http://premiermania.net/bbs/view.php?id=imsi&no=2064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