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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코트디부아르 대통령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첼시 스트라이커 디디에 드록바

by wannabe풍류객 201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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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드부아르에서 드록바의 명성, 선행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많이 들어봤는데 최근에 텔레그라프에서 기사가 나와서 번역해보았다. 기대만큼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의 고국에서 드록바의 국가적 위상을 재확인할 수 있다.

 

Didier Drogba is the Chelsea striker who possesses more power than Ivory Coast's president

아비장(Abidjan)의 중간을 가로질러 달리는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시체들과 고물차들로 더렵혀진 먼지 많은 길을 내려가고, 여러 맨발의 아이들이 염소 옆에서 물장난을 하는 웅덩이를 지나면, 디디에 드록바가 그의 고국에서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가 있다. 

By Jim White, Abidjan 16 Feb 2012

Didier Drogba
Didier Drogba by manbeastextraordinaire 저작자 표시

왜냐하면 여기는 드록바크로 마을로, 코트디부아르의 가장 큰 도시의 교외에 있다. 그리고 그들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수출물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주민들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마을 입구에 광고 포스터에서 내려다보는 그 사람 자신의 주의깊은 눈 아래 마을 우두머리임을 자임하는, 쿠아시 오귀스탱이라 불리는 37살의 운전사가 서 있다. 

드록바가 그의 국가나 첼시를 위해 뛸 때마다 오귀스탱이 자신의 집에서 TV 세트를 끄집어내어 골목길에 설치하면 수백만의 관중이 모여들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의 모든 움직임을 환호한다. 

그 때문에 그 주변의 모두가 첼시 팬이고 북쪽으로 4,900 마일이나 떨어진 클럽에서 드록바의 승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시끄러운 환호와 함께 마을을 채우고 밖으로까지 넘치는 축하의 축제를 유발한다. 

드록바가 국가의 대통령이 될 만큼 충분히 인기가 많냐고 질문하자 오귀스탱은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선거를 치를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대통령보다 더 큰 사람이에요. 그가 코트디부아르죠."

드록바는 이번 주 적도 기니와 가봉에서 열린 아프리카 컵을 치르고 고국에 돌아왔다. 일곱 명의 프리미어 리그 선수들이 있음에도 코트디부아르는 결승에서 예상외로 잠비아에 졌고, 이 패배는 부분적으로 주장인 드록바가 페널티킥을 놓친 것에서 촉발되었다. 

이 스트라이커의 방향을 비난하거나 이제 그가 잘 하는 건 피자 광고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수만 명의 코트디부아르 사람들이 월요일에 그와 그의 동료들을 환영하기 위해 공항에 나타났다.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어요,"라고 드록바가 마침내 혼란통을 뚫고 에어컨이 나오는 아비장의 호화 호텔로 들어간 이후 말했다. "이 나라에서는 달라요. 비록 우리가 지더라도 우릴 보기 위해 여전히 모여들어요.

"어릴 적에 프랑스 대표팀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만약 제가 프랑스를 위해 뛰었다면 이런 대접은 받지 못 했을 거에요. 저는 이런 종류의 경험들을 통해 풍요로움을 느낍니다."

드록바가 호텔 로비를 걸어지나가면 그 공간의 차분한 정중함이 사라지고, 이 나라의 수가 적은 부유한 지역민들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응시하며 즉시 박수갈채를 날린다.

모두가 우상과 사진, 악수 , 잠깐 동안의 접촉을 위해 몰려드며, 두 명의 유니폼을 입은 경비 요원들은 보호할만한 공간을 확보하는데 실패한다. 그는 무례하고 거만한 인물일 거라고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달리 그들 모두에게 겸손하게 호의를 표현한다. 

불과 일 년 전에 선출된 대통령 알라산 와타라(Alassane Ouattara)가 지금 드록바가 말하고 있는 곳으로부터 길 위로 조금만 더 있는 호텔에 숨어 있고, 전임자 로랑 그라그보(Laurent Gbagbo)는 민주적인 면직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길 거부하며 이 나라는 무능해보였다. 

이어진 부족간의 싸움에서 삼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드록바가 자란 아비장의 지구는 새 대통령에게 마지막으로 항복한 곳이었다.  

이제 그라그보는 헤이그 재판소에서 전범 재판을 받을 예정이고 와타라는 공항에서 가장 먼저 드록바의 손을 잡는 사람이 되어 그들의 축구 팀을 환영하는 단결된 국민적 환호를 이끌었다.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드록바는 회피하기를 거부하며 그의 국민들의 충성으로 돌아갔다. 몬테 카를로에서의 영원한 망명의 삶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에 집이 있고 자주 돌아온다. 보통 많은 현금과 함께.

그는 나이키, 삼성 그리고 펩시 같은 스폰서의 광고를 통해 얻는 모든 돈을 평균 기대 수명이 고작 47세인 나라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선기구인 디디에 드록바 재단에 기부한다. 드록바의 최근 목표는 네 곳 중 가장 먼저 아비장에 어린이를 치료하는 병원을 짓는 것으로  재단은 지금까지 3백만 파운드를 투자했다. 

"정말 기대돼요. 이 병원이 빨리 완공되길 바랍니다,"라고 그가 그 날 오후에 아비장의 가장 보기 좋지 않은 지역 중 하나의 쓰레기장을 정리한 곳인 병원 부지를 순찰하며 말한다. "하지만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완성되었을 거에요. 우리는 해낼 겁니다. 우리는 아주 열심히 작업해야 해요"

건축에 대한 생각은 일련의 비극에 대한 드록바의 경험에서 나왔다. 2009년에 그가 말라위를 상대로 월드컵 예선을 치르는 도중 대표팀 경기장의 벽이 붕괴되어 19명이 사망했다. 

나중에 아비장 병원에서 다친 이들을 방문했을 때, 환자들 몇 명이 침대를 같이 쓰고, 몇 명은 복도 바닥에서 자는 등 모두가 적절한 의료 설비의 부족으로 고통받을 때 그는 노벨이라 불리는 어린 소년과 친구가 되었다. 소년은 백혈병 말기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노벨을 처음 봤을 때, 백혈병에 걸린 아이를 구하기에 최선의 조건이 아닌 걸 발견했어요,"라고 그가 말한다. "우리는 병을 고치기 위해 그를 유럽으로 데려갔고 그는 일 년 넘게 더 싸웠지만 이길 수 없었어요.

"제 사촌 스테판도 백혈병을 앓았고, 같은 날 저는 그가 프랑스에 갈 수 있도록 비자를 마련해줬는데 그는 죽었어요."

드록바는 유럽에서 그 소년의 치료를 위해 15만 유로 이상을 지불하는 것이 그의 자선 본능을 이용하는 가장 비용효율적인 방법이 아님을 알아챘다. 

"우리는 아비장에 사는 사람들이 도움을 얻을 수 있길 원하기 때문에 이 병원을 원해요."라고 그가 말한다. "아플 때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아주 힘들어요. 여기에 좋은 의사들이 있고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도움이 필요해요. 병원은 저의 큰 계획인데 전쟁 때문에 늦어졌어요.

"우리는 상황이 나아지고 또 사람들이 작업하러 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시작할 거에요. 3백만 파운드 이상 들어가지만 운영할 자금도 필요해요. 정부가 우리를 도울 거에요. 처음 몇 해가 가장 중요해요.

"이 지역 사람들이 병원을 유지하고 깨끗하고 훌륭하게 지키는 책임을 질 거에요. 문제는 병원을 짓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그걸 잘 운영하는 거에요. 그게 정말 어려운 부분입니다. 

"저는 축복받았고 운이 좋아요. 왜냐하면 제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조금 더 호소력이 있으니까요,"라고 그가 말한다. "저는 필요하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안 하려고 합니다. 저는 스스로 싸우고 일을 처리하는 걸 선호해요. 제가 정말 할 수 없을 때 도움을 요청할 겁니다."

정말로 그날 저녁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드록바의 지역적 중요성을 직접 체험했다. 그는 도시의 가장 좋은 식당에서 짧은 전화만으로 자리를 얻었고, 그와 그의 아내와 영국에서 온 그의 손님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디디에와 만나는 것이 그의 주간 업무 중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하는 코트디부아르 내무부 장관과 합석했다. 

"제 의무는 아니죠. 이걸 해야 한다고 어디에 적혀있는 것도 아니고요,"라고 그가 자신의 자선 본능에 대해 말한다. "제가 하는 이유는 제가 이런 감정을 프랑스나 잉글랜드나 혹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이는 불가피한 질문을 유발한다: 만약 그가 그렇게 자선을 좋아하고, 그의 축구 경력이 어쩔 수 없이 곧 끝나게 되면 그는 이런 종류의 일을 풀타임으로 하려는 것일까? 조지 웨아가 라이베리아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축구로 얻은 자신의 보편적인 인기를 선출직 권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드록바크로의 우두머리의 확신을 정말 그도 공유할까?

"솔직하게 말해 저는 제가 지금 있는 곳이 좋아요. 저는 어떤 정치적 견해도 갖고 있지 않아요.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자유롭습니다,"라고 그가 말한다. "지금 제 상황은 좋아요. 제가 말할 때 모두가 들어줄 거니까요. 제가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다면 이 나라의 절반만 들어줄 거에요. 저의 현재 방식이 더 강하냐고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러면 그게 디디에 드록바다. 대통령보다 더 힘이 있는 센터포워드.  

디디에 드록바의 재단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런던에서 3월 10일에 있는 그의 자선 이벤트를 지지하고 싶으면 www.thedidierdrogbafoundation.com를 방문하거나 트위터에서 @Fondationdrogba를 팔로우하세요.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teams/chelsea/9085118/Didier-Drogba-is-the-Chelsea-striker-who-possesses-more-power-than-Ivory-Coasts-president.html    

조금 더 풍성한 내용의 더 썬 기사도 있다.
http://www.thesun.co.uk/sol/homepage/features/article4132856.ece 



아이러브싸커 카페에도 올렸다. http://cafe.daum.net/WorldcupLove/IS9/19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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