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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 이후 며칠 동안 '수아레스의 악수 거부'를 두고 꽤 시끄러웠다. 모든 비난은 수아레스 그리고 그를 통제하지 못하고 부적절한 인터뷰를 했던 케니 달글리쉬에게 쏟아졌다. 비록 리버풀의 매니징 디렉터 이안 에어가 주도가 되었다고 최종적으로 발표가 되었지만 미국에 있는 리버풀의 구단주와 리버풀의 메인 스폰서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이 사태 진정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영국 언론은 이구동성으로 악수 거부를 대단한 의미로 해석하고 수아레스가 그것만 했으면 이 긴 논란이 끝을 맸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움과 한숨을 연발했다. 그 기회를 날린 수아레스와 케니 그리고 리버풀의 운영진은 어떤 비판을 받아도 싸다는 것이다. 결국 리버풀에서 일요일에 일련의 사과 성명이 나왔지만 며칠이 지난 이제서야 영국 언론도 잠잠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둥, 수아레스가 에브라에게 직접 대면해서 해야한다는 둥 요구 사항은 늘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리버풀의 레전드이자 클럽에 영입된 최초의 흑인 선수인 존 반스는 악수 거부 사태 자체에 대해서는 수아레스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언론의 호들갑에 비해 과연 그렇게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있다. 그가 보기엔 여전히 인종차별은 만연한 현상이다. 지금도 축구장 어디에선가 흑인 선수에 대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고,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인종차별적 언어를 사용한다.
잉글랜드는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싸우는 것 같지만 축구장은 물론 사회 일반의 차별은 현존한다. 잉글랜드 축구 프로 리그의 92개의 클럽 중 흑인이 감독인 팀은 단 두 곳이다. EPL을 보며 흑인 주심 혹은 부심을 본 기억은 있는가? 유일한 여성 부심조차 스카이 스포츠의 유명 해설가와 아나운서의 조롱, 즉 성적차별을 받는 것이 잉글랜드의 실상이다. 물론 그 두 명, 그레이와 키스는 스카이 스포츠를 떠나야했다.
80년대에 반스가 왓포드의 선수일 때 리버풀 팬들은 원숭이 흉내를 내며 그를 조롱했다. 그가 리버풀에 오자 리버풀팬들은 그를 조롱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역 라이벌인 에버튼 팬들은 더비 경기 중에 그에게 바나나를 던졌다. 그는 그런 시절을 견뎌야했던 많은 흑인 선수 중 하나다. 이제 그는 잉글랜드에 있는 온갖 차별의 근원인 '차별적 사고'를 제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그가 단지 리버풀 선수였다는 전력 때문에 그동안 인종차별 발언과 관련하여 루이스 수아레스를 지지했을까?
수아레스와 에브라의 논란에 대한 잉글랜드의 반응은 신경질적이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의 기사에서는 여전히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 등지의 축구계에서 인종차별 언어에 대한 처벌이 약함을 지적한다. 잉글랜드는 1991년 Football Offences Act를 통해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적 노래를 금지시켰다. 잉글랜드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축구장에서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것은 치하할 일이다. 하지만 그 노력에 조금이라도 흠이 생길까봐 너무 경직된 자세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아레스가 인종주의자가 아님을 안다. 그에게 왜 8경기의 출장 정지와 벌금 처분을 내려야했는지를 설명한 공식보고서에서도 명확히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잉글랜드의 차별 철폐 노력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어떤 경우에도 철저히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FA는 중징계를 내렸다. 20여년 동안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한 FA로서는 '네그로'라는 말이 사용된 것이 확인된 이상 징계를 하는 데 있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8경기 출장 정지는 지나쳤다. 또 수아레스에 대한 에브라의 위협적 언어는 '인종차별적'이지는 않았으나 수아레스를 벌한 바로 그 처벌 규정의 위반에 해당함에도 징계가 내려지지 않았다. 이는 잉글랜드 FA가 '인종'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고 다른 차별이나 욕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신경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기에 족하다.
수아레스를 이해불가한 문제아로 보는 잉글랜드 언론의 시각을 떠나 다른 곳의 반응을 보자. 프랑스의 르몽드, 레뀌프를 검색해보았는데 기사가 많지는 않다. 특히 르몽드는 최근 악수 사건이 나온 이후에야 두 건의 기사가 나왔고, 사실 전달보다 의견이 주가 된 한 기사의 초점은 인종차별이나 악수 자체가 아니라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개입하는 영국 총리 데이빗 캐머런의 행태에 대한 것이었다. 레뀌프의 기사들은 간단한 사실 전달 위주였고 자국 선수인 에브라에 특별히 우호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언론들은 상대적으로 에브라에 우호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수아레스의 국가인 우루과이는 어떤가. 지금까지 본 것들을 보면 예상보다는 차분한 어조였다. 하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징계가 나왔을 때보다 지금 악수 거부를 두고 잉글랜드 언론 그리고 맨유의 퍼거슨 감독이 목소리를 높이는 데 더욱 비판적이다. 현지 시각으로 어제 우루과이 대표팀의 주장인 루가노는 다시 한 번 수아레스를 지지했다.
수아레스는 지난 몇 달 간 부당한 대접을 받았어요. 축구계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게 큰 서커스라는 걸 알죠.
우리는 잉글랜드가 역사적으로 식민지를 갖고 있었고 인종주의가 매우 민감한 문제인 건 감안해야해요. 그러나 수아레스와 에브라사이에 일어난 일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그것은 축구에 대한 논쟁이었고, 많은 잘못된 위선적 도덕주의자들이 이익을 봤어요. 그리고 그 상황에서 수아레스만이 유일하게 무죄였어요.
[악수 거부에 대해] 토요일에 루이스처럼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해요.그는 자신의 원칙을 따랐어요. 우리는 민주주의 속에 살고 있고, 우리는 반기기 싫으면 안 반겨도 돼요. 자신을 그렇게 불행한 시기를 보내게 만든 사람에겐 말할 것도 없고요.
이외에도 우루과이 언론들은 잉글랜드 축구의 문제아들을 지적하며 수아레스가 그보다 더 나쁜 인간인지 반문하는 혹은 퍼거슨 자신의 위선에 대해 비판 기사들을 내보냈다. 하이버리 터널에서 로이 킨과 파트릭 비에이라가 말다툼을 했던 그 경기에서 맨유 선수 여러 명이 비에이라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던 일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당시 퍼거슨은 악수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런 그가 남의 팀 선수의 악수 거부에 대해 온갖 저주를 퍼부은 것은 위선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런 기사들에 대한 우루과이 사람들의 댓글은 기사의 논조에 비해 훨씬 원색적으로 수아레스 비판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스페인 언론 몇 군데에서도 이 논란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봤는데 마르카에 실린 것들이 재미있다. 12일자의 한 기사를 보면 수아레스가 오히려 '신사'라고 표현되어 있다. 에브라 같이 월드컵 때 감독에게 저항하고 팀을 분열시키며 대표팀 주장으로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한 사람이 이번엔 클럽인 맨유의 주장이라는 것도 문제고, 경기장에서 끝날 문제를 끄집어내어 수아레스의 출장 정지에 벌금까지 내게 만들었는데 수아레스가 악수를 해야했겠냐는 것이다. 또 수아레스가 에브라와 퍼디난드를 제외하면 다른 선수들하고는 다 악수하지 않았냐고 지적한다. 물론 이 견해에 100% 동조하는 건 아니다. 잉글랜드 측에서 의혹을 가지듯 스페인에서 인종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다는 혐의도 생긴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위선' 혹은 에브라의 위선을 지적한 점은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마르카는 14일에도 이 사건에 대한 기사를 냈다. 여기엔 새로운 내용도 보이는데 수아레스가 경기 전에 '더 많은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악수를 하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서도 12일 것처럼 에브라가 경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경기장에서 끝내지 않은 점을 비판한다(얼마 전 수아레스가 우루과이 라디오와 했던 인터뷰에서도 정확히 그 말이 있었다). 더구나 에브라가 말한 내용은 카메라 즉 영상을 통해 전혀 증명이 되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를 비꼬며 '나[필자]는 바다 속의 머리카락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하려고 했어'라고 말한다. 실질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의미일 터이다.
이 기사는 이어서 리버풀 팬들이 음모론을 제기했던 그 해석을 수용한다. 즉 수아레스가 다른 리버풀 선수들과 잘 악수를 하다가 수아레스가 앞에 오자 팔을 내려버렸다는 것이다. 수아레스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자기 딸에게 맹세코 악수를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안 했을까? 그리고 마르카는 이 경기에서의 한 증인의 말을 토대로 터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한다. 더 썬은 데 헤아가 누군가가 뱉은 침에 맞아 충격을 받았고 양 팀의 선수들이 얽혔다고 자신들의 소스의 주장을 전했지만, 마르카의 증인에 따르면 에브라가 수아레스를 뒤에서 공격하려고 했고, 다행히 스크르텔, 아거, 카이트가 막아서 진정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언론이 단지 수아레스가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이라 옹호하는 것일까. 스페인과 그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적인 정서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축구장에서 있었던 일이 거기에서 끝나야한다고 해도 인종차별적 언어는 예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잉글랜드 내에서의 이 논쟁은 반스가 말하듯이 누구 한 명 예외일 수 없이 가진 차별적 사고와 편견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으로 옮겨가지 않는 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에 불과하다.
사건의 본질은 라이벌 팀 선수 간의 말다툼이었다. 양쪽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지만 한 쪽이 불행히도 영국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일 '네그로'라는 단어를 썼다. 수아레스의 유명한 몇 가지 악행과 기행의 기억 때문에 이번 일은 더욱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에브라가 그다지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은 그다지 언급이 되지 않은 듯 하다. 바카리 사냐는 에브라가 부추기고 약올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다. 일부 리버풀 팬들이 의심하듯 쉽게 도발되는 수아레스가 에브라의 계획에 넘어간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어도 흔히 발생하는 선수들의 말다툼에서 수아레스가 일방적인 희생양이 된 건 유감스럽다.
이 논란에서 한국인인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할지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다만 맨유가 국민 영웅 박지성이 있는 팀이라고, 에브라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아레스를 매도하지는 말자. 수아레스가 말했듯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수아레스가 이면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다 말하지는 않는 것은 그가 악동 자체라서가 아니라 아직 영어에 익숙치 않은 그의 말이 새로운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이제는 진정 축구에만 전념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지난 경기의 패배는 리버풀에게 악수 문제는 단기적인 것이며 4위 안에 들어갈 실력을 구축하는 것이 최대의 그러나 지난한 과제임을 드러냈다. 경기장에서 수아레스가 분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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