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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어른이 되어야 하는 피노키오의 노동윤리

by wannabe풍류객 2011.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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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전철에서 책을 읽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맥베스를 보다가 말고, 드라큘라를 보다가 말았지만 하나 끝까지 본 책이 있으니 바로 피노키오다. 

OSAKA, JAPAN - JULY 15: Actress Cameron Diaz attends the Japan Premiere of Shrek 2 at Universal Studios Japan on July 15, 2004 in Osaka, Japan. The film opens on July 24 in Japan. (Photo by Junko Kimura/Getty Images)

고전을 '실제로' 읽어보면 만화, (위의 슈렉같은) 영화, 광고 등을 통해 각색된 몇 개의 장면들로만 기억하던 내용과 실제의 내용이 상당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피노키오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이야기,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가 생환한 이야기가 사실상 기억하는 전부였지만 이 소설은 훨씬 긴 스토리로 짜여져 있다. 그리고 충격적인 장면을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내가 읽은 책은 아니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피노키오'로 검색하면 흥미로운 제목의 책이 나온다.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국내도서>인문
저자 : 양운덕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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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쓴 철학서로 보이는데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외형적으로 피노키오는 '인형', 말 그대로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다. 그러나 오직 나무로만 만들어졌기에 무생물이어야 할 터이다. 피노키오는 마리오네트이기 때문에 조종자의 손놀림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여야 한다. 그런데 만들어 놓으니 이 인형이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스스로 움직인다. 가장 골치아픈 부분은 피노키오가 귀가 얇아 나쁜 길로만 빠진다는 것이다. 

흔히 알려진 거짓말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장면은 소설에서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정에게 거짓말할 틈도 없이 함정에 빠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노키오는 다리가 타고, 교수형을 당하고, 살인의 누명을 쓰고, 상어 뱃속에 들어가고, 당나귀가 되는 등 온갖 고초를 겪는다. 이런 고난은 피노키오 스스로 자초한 점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이 드러난다. 피노키오의 아버지, 제페토는 가난하지만 모든 것을 바쳐 피노키오를 제대로 교육시키려고 했다. 또 후반부에서 어머니 역할을 하는 요정도 피노키오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도록 지도했다. 그러나 피노키오는 부모의 뜻을 이해하지만 자꾸만 노력없이 놀고 먹을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목숨을 잃는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위에서는 '악동' 피노키오에 대해 말했지만 피노키오가 일관되게 나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자주 반성을 하기에 인간답다. 반성은 하지만 곧 잊어버리는 보편적인 인간성이랄까? 피노키오는 효자가 되고 싶은 열망도 강했다. 그러나 불행히 부모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는 흔한 자식들의 전형이었다. 피노키오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연약한 소년, 소녀들의 상징이다. 누가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보지 않고 자랐는가?

부모 말을 그대로 따르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논리, 윤리는 이 소설에서 끝없이 반복된다.이렇게 볼 때 피노키오 이야기는 부르주아 노동윤리의 복음서 비슷하게도 보이는데, 제페토가 빈곤층에 가깝다는 것을 감안하면 쁘띠 부르주아 층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피노키오가 사람인지 인형인지로 돌아가보자. 소설의 결론 부분은 다소 신비롭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사람인(혹은 사람이 된) 피노키오가 있고, 못된 짓을 하던 피노키오는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인형의 형태로 방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이 문제를 이렇게 보고 싶다. 부모는 생식을 통해 자식을 생물학적으로 만들어내고, 가정 교육을 통해 자식을 그들이 원하는 사람으로 육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식은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이자 인격체라 부모의 말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자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있지만, 자식은 부모의 고언보다 당장의 재미를 찾아 소위 나쁜 길로 빠지기 쉽다. 그러나 노동 없이 대가가 없다고, 구걸은 죄악이라고 소설이 말하듯 머지 않아 성인이 됨에도 스스로 삶을 영위할 능력을 갖출 생각이 없는 소년, 소녀에게는 굶주림 혹은 범죄로 인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말의 피노키오는 소년에서 어른이 된 피노키오인지 모른다. 더 이상 부모의 꼭두각시가 아니고, 이제는 스스로 생활할 능력이 있는 경제인이자 늙어가는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 어른. 그래서 나무 인형인 피노키오의 탈은 벗겨졌고 방 한 켠에 과거의 모습으로 박제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밥 벌어 먹어야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생명 유지를 위해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윤리이겠으나, 이렇게 처절하게 소년을 학대하며 교훈을 가르치는 소설이 널리 권장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어떻게 잔인한 장면이 자주 나오는 이 소설은 가볍게 언급되고 읽히는 동화가 될 수 있었을까? 이 소설은 구걸하는 빈곤층에 대한 경고인가, 아니면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말라는 부르주아에 대한 경고인가? 

소설 속에서 사기꾼이자 복면강도, 살인자로 나오는 여우와 고양이는 금화를 땅에 묻으면 돈나무가 열린다는 감언이설로 피노키오를 유혹한다. 이는 얼마 전 세계를 불황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파생 금융 상품들에 대해서도 들어맞는 이야기인데 옛날의 경고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피노키오처럼 끝없이 고난을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각색되지 않은( 완역된 것이면 어떤 판본이라도 상관없을 것 같다) 피노키오를 읽어보는 것이 유익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소설의 노동윤리에 대해서는 알아서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되리라.  

피노키오 - 8점
카를로 콜로디 지음, 야센 유셀레프 그림, 김홍래 옮김/시공주니어

피노키오 (양장)
국내도서>소설
저자 :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 김양미역
출판 : 글담.인디고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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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icchio (Hardcover)
외국도서
저자 : Collodi, Carlo/ Zamorsky, Tania/ Pober, Arthur/ Corvino, Lucy
출판 : Sterling 200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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