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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잉글랜드 축구의 추락 혹은 한국의 경우

by wannabe풍류객 2010.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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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1, 2010 - Zurich, California, USA - Soccer player David Beckham arrives with the English delegation at the FIFA headquarters in Zurich, Switzerland, on 02 December 2010. 2010.K66334AM. © Red Carpet Pictures

어떤 식으로 제목을 달아야 좋을지 모르겠다. 여하튼 요즘 잉글랜드 축구계는 이래저래 풀이 죽어 있다. 이제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은 타이틀일 뿐이다. 영국 총리까지 나서서 노력했어도 2018년 월드컵 유치 국가 결정 투표에서 잉글랜드는 제일 먼저 탈락했다. 잘 나가던 프리미어 리그의 스타들은 프리메라 리가로 떠나버렸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국제 대회 성적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하는 것이 세계 최고라도 착각하기는 쉽다. 특히 자신이 세계를 호령한 제국이라면. 물론 영국은 현재 제국이 아니지만 10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최강국이었고, 축구의 글로벌화는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종종 제국에 비유되는 미국의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대회인 NFL. 몇 년 전의 한 논문은 우리는 세계 모두가 NFL에 주목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네?라는 주제를 다룬 바 있다. 강자들은 남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시하고 경배할 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운가 보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유치 실패는 2006년 대회에 이어 두번째이기에 더 뼈아팠을 것이다. 한때 잉글랜드는 FIFA와 대립각을 세우고 가입과 탈퇴를 반복했다. 하지만 FIFA의 위상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잉글랜드 축구의 우월성이 떨어지며 잉글랜드는 국제 대회의 성적에 목을 매게 되었다. 자국에서 치러진 1966년 대회에서 우여곡절 끝에 우승한 것이 유일한 위안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훌리거니즘은 2000년에 있었던 2006 월드컵 개최지 선정에 영향을 끼쳤고, 이번에는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피파 고위층의 뇌물 혐의를 또 다시 추궁한 BBC의 파노라마 방영에 이어 버밍엄 더비의 폭력 사태가 터져나와 투표에 악영향을 끼쳤다.

Birmingham City/Aston Villa Carling Cup Quarter Final 01.12.10 Photo: Tim Parker Fotosports International Birmingham City fans during the game Photo via Newscom

러시아와 카타르가 더러운 수를 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치 경쟁 국가들 중 깨끗한 행동만 한 국가는 얼마나 될까. 잉글랜드인의 축구 사랑 그리고 그들의 풀뿌리 축구는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FIFA의 기술평가에서도 잉글랜드는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FIFA가 러시아와 카타르로 눈을 돌린 것은 축구의 저변 확대라는 FIFA의 목적에는 잘 부합하는 결정이다. 아마 우리는 최고의 글로벌 게임인 월드컵을 상당히 추운 나라와 더운 나라에서도 치러봐야 진정한 글로벌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FIFA의 결정 이후 잉글랜드 언론은 부패한 FIFA를 성토하는 글들을 쏟아냈지만 일부는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우리가 대회 유치에 혈안이 되어야 하나? 사실 중요한 것은 그런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 아닐까? 황금 세대의 국제 대회 성적은 왜 그 모양이지? 잉글랜드의 전술은 왜 그토록 변하지 않아? 유소년 육성을 대륙 방식으로 해야하는 거 아닐까?

특히 유소년 부분에 있어서는 이코노미스트에서 흥미로은 기사를 낸 바 있다. 잉글랜드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17세에 프로 계약을 맺을 때 쯤이면 다 '망가진 상품'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 대륙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기술을 가르칠 때 잉글랜드 소년들은 성인과 같은 사이즈의 경기장에서 무시무시한 태클을 하며 경기를 한다고 한다. 잉글랜드는 1998년에 월드컵을 우승한 프랑스 같은 경우를 보며 자국의 유소년 육성 체계를 개혁해야 함을 인식했지만 여전히 미적지근한 대응만 반복하고 있다. 

Oct 08, 2008 - Clairefontaine, France - The French National Soccer team held a practice session in Clairefontaine, France. PICTURED: PATRICK VIEIRA and THIERRY HENRY Photo via Newscom

국제 대회 유치에만 힘쓰지 말고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고민을 해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은 우리나라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지자체들의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 노력은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심지어 같은 대회를 두고 갈등을 빚기도 하고, 다른 대회라도 시기적으로 너무 가까운 대회들을 공략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회 유치가 지자체장들의 위신 세우기에 좋을지 몰라도 부풀려진 '예상' 고용 효과, '예상' 수입이 얼마나 실현될지는 언제나 미지수다.

국제 대회 '우승'에만 신경쓰라는 것도 문제가 있긴 하다. 스포츠의 목적은 자기 극복, 최선을 다하는데 의의가 있다 등 좋은 말들이 많으니까. 잉글랜드의 경우를 보자면 모든 것의 최강국이었을 때 축구도 당연히 원조이고 최강이었던 시절의 기억, 그 기억이 여전히 기대로 남아 선수들을 옥죄고 있는 것이 문제다. 잉글랜드인들은 자신들의 축구 수준에 대한 기대를 낮추거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을 하거나의 선택의 기로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는 유난히 국제 스포츠 대회의 우승과 금메달 수, 금메달에 기반한 종합 순위에 신경쓰는데 축구에 있어서는 꿈이 너무 작았던 것 같다. 제일 세계화된 스포츠인 축구를 제패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적인 대사가 아닐까. 아시아의 맹주 자리는 다른 국가에 줘버리고, 체계적인 개혁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당장의 조그만 대회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것보다 202X년 월드컵 우승을 향한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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