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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서울대공원 유람기

by wannabe풍류객 2008.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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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이 금요일인 관계로 사흘짜리 연휴가 만들어졌다. 방바닥이나 긁고 있을 수도 있지만 간만에 용기를 내어 가을 경치 구경에 나섰다.

생각해보니 서울대공원에서 동물을 본 기억이 없다. 서울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간 적은 있건만.

여차여차 연휴 마지막날 오후에 서울대공원에 갔는데 구경온 인파가 굉장했다. 창경원에 동물원이 처음 생긴 것도 백년은 될 터이고, 동물의 왕국에서 진기한 동물 구경은 충분히 했을 터인데 여전히 동물원은 번창하는 모양이다. 몇 년 전 어린이대공원에 가을 때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아마 동물보다는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가을 날씨와 동물원이라는 공간이 제공하는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 모여들었을 것이다.

8300원에서 500원 정도 할인해주는 패키지 상품으로 동물원에 들어갔다. 자신의 나이를 민망하게 만드는 이름의 코끼리 열차를 타고, 스카이 리프트를 통해 맹수들이 갖혀있는 동물원 깊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제가 동물원에서 본 것도 호랑이! 호랑이를 놓칠 수 없다. 시베리아 호랑이이고 두 개의 무리가 있는데 왼편은 어린 호랑이, 오른편은 나이 많은 호랑이다. 마침 오후 네시는 호랑이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인데 그래서인지 호랑이들의 행동이 거칠었다. 호랑이들은 의외로 사육사가 던져주는 고깃덩어리를 덥석덥석 잘도 받아먹었다.


리프트를 탈 때 사자들이 발밑에서 활발히 뛰어다니는 것을 보았건만 나중에 구경을 가니 귀찮은 듯 자고 있다. 특히 아예 드러누운 암사자의 자태란. 많은 사람들이 사자 구경은 잠깐씩 하고 지나갔다. 

동물들 구경도 좋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장 의문이 들었던 것은 수많은 관람객 중에 유모차를 모는 부부가 많이 보인 점이다. 어린이들이 동물원을 좋아하는 거야 이해한다지만 유모차에 타야 하는 어린 친구들이 동물을 얼마나 알아볼까. 유모차가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는 익히 목격한터라 그 젊은 부부들이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넓고 넓은 동물원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온 여성분들에게도 경의를 표해야 할 터이다.


많은 동물들이 오후의 나른함에 푹 빠져있는 사이 열심히 식량을 챙기는 녀석들이 있으니 불곰 가족이다. 오른쪽의 가장 큰 곰이 엄마이고 나머지 둘은 작년에 태어난 새끼곰이란다. 새끼곰이 두 발로 서 있는 것이 명장면인데 찍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곰 가족은 익숙하게 사진 속의 자세대로 앉아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챙겨 먹었다. 호랑이처럼 바로 입으로 받아먹지는 못하지만 주워먹느라고 귀엽게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다.

세계적 경제 위기 때문인지 동물원에서 가을을 만끽해도 흥이 나지는 않았다. 동물원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도 엄청나게 재미있어 그곳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일제가 창경원이라는 구경거리를 만들었을 때부터 사람들은 누군가 정해준대로 놀아야 했다. 조금 비극적이지만 동물 때문이 아닌 옆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소중하기에 사람들은 그 어리석은 동물원행을 백년째 계속 하고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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