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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발표를 보며

by wannabe풍류객 2008.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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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선정되었다. 우선 그들의 이름 정도는 적어둬야겠다. "미국 페르미연구소의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 박사와 일본 고에너지연구소(KEK)의 고바야시 마코토(小林誠) 박사, 교토대 마스카와 도시히데(益川敏英) 박사." 노벨 물리학상을 세 명이 공동 수상하는데 전부 일본 출신이다. 

먼저 한국에서 나온 보도를 보니 세 명 모두가 일본인이라고 일본 열도가 들썩인다는 투의 기사다. 댓글에는 한국은 이래서 안된다는 의견들이 넘쳐난다. 게다가 일본은 10년전부터 이들의 수상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백억을 투자해왔다고 한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면 문제와 해결책은 분명해진다. 하지만 기초학문에 대한 장기적 투자에 대한 목소리는 금세 수그러들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의 기사 제목은 한 명의 미국인과 두 명의 일본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80세가 넘은 남부 박사는 일본에서 출생했으나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현재의 그는 미국인이지만 일본과 미국은 그들 나름대로 그가 수상하게 된 사실을 기뻐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일본의 노벨 수상자 수에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한국은 몸으로 하는 올림픽에서 세계 10위 권 진입에 일찌감치 성공했지만 머리로 하는 노벨상 성적은 지지부진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수상 후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1987년에 화학상을 받은 찰스 페더슨은 한국인 어머니를 두었고 부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초라한 성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노벨상이 1896년 노벨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포인트다. 바로 그 해 올림픽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시대이면서 1차 대전 이전인 그 시절 세계적 위기를 직감한 사람이 많아서였는지 인류 평화를 위한 국제행사들이 만들어졌다. 노벨상은 거대한 상금으로 창설되면서부터 주목을 끌었을테지만 올림픽은 만국박람회 행사의 일부였을 정도로 출발은 미약했다. 지금은 민족주의와 상업주의가 결합한 올림픽이 훨씬 큰 행사로 보이지만 인류 평화라는 궁극의 목적으로 치면 노벨상의 공헌이 오히려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올해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어김없이 민족주의 감정이 폭발했다. 세세한 사례는 들지 않아도 익히 알 것이다. 요는 올림픽이 정말 평화로운 행사인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라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수상하겠다는 노벨상. 하지만 분야는 한정되어 있다. 나처럼 사회과학을 하겠다는 사람은 경제학을 하지 않는 한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다. 올림픽처럼 비디오 판독을 해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도 없고 어떻게 가장 큰 업적인지 가려내는 것일까. 요즘은 20세기 초에 비해 후보자가 많아져서인지 수십 년 전의 연구에 대한 수상을 하고 있다. 영화제의 공로상을 주는 듯한 느낌이다. 확실한 검증이 되었기에 수상자에 대한 논란이 적은지는 몰라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그들에게 주는 거액의 상금과 명예는 수상자들의 향후 연구를 위한 추진력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몇 번 읽어봤지만 이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공헌이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가 가지는 않는다. 대칭성, 쿼크 같은 물질의 근원, 우주 탄생 이후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 등 꽤나 근원적인 연구들이다. 정말 그런 원리를 밝혀냈다면 대단한 일이다. 사회과학을 하는 것이 초라해질 지경이다. 하필 일본인들이 그런 위대한 연구들을 한 것일까. 민족적 자괴감에 빠지기도 쉽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에 공헌했다지 않나. 그다지 시기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학자들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너무 충실하여 대의를 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는 백년의 국가 위기 때문에 실용적인 학문에 우위를 둘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철학이 없는 실용은 사상누각이고 현재 한국처럼 위기를 가중할 것이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했다고 배아파할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학문의 기초를 다지려는 진정한 움직임이 나타나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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