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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신소설의 개

by wannabe풍류객 2008.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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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거의 15년만에 이인직의 "혈의 누"를 보면서 개가 제일 눈에 들어왔다. 청일전쟁의 난리통에 남편과 옥련이의 행방을 놓쳐버린 옥련모. 참 희한하게 평양은 텅텅 비었고 봉변을 당할 뻔한 옥련모는 연이어 일본 헌병에게 이끌려간다. 정신없는 와중에 문득 개소리가 들리니 우연히도 자기집의 개였다. 모든 가족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옥련모는 개에게 하소연을 하기에 이른다. 개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는 기특함, 옥련이가 사랑했다는 회상, 개처럼 튼튼한 다리가 없어서 가족을 찾으러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없는 안타까움이 드러나고 있다. 

개는 피난갈 때 부엌에 가두었는데 옥련모가 지나가는 것을 알고 용케 탈출해서 반갑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바로 뒤에 남편 김관일이 옥련모가 끌려갈 때 집에 있었다고 하니 김관일이 개를 풀어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개는 옥련모가 헌병부에 끌려갈 때 따라갔다가 다시 옥련모를 따라 집에 돌아왔다. 남편과 옥련을 기다리는 옥련모는 개가 짖으면 누가 왔나 싶어 내다볼 뿐이다. 결국 옥련모가 자살을 기도할 때 이후로 개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어찌 되었나 모르겠다. 전쟁통에 나가봐야 별 수 없고, 집에 있어도 밥 주는 사람 없고. 옥련모가 금세 돌아왔으니 함께 잘 살았기를 바랄뿐.

이광수의 "무정"에도 개가 한 번 등장한다. 비극의 히로인 영채가 친척집에서 설움받고 살다가 도망나올 때 그 집의 개 한마리를 꼬드겨서 함께 했던 것이다. 풍비박산이 난 친척의 애를 누가 반기랴만 그나마 개만이 영채의 친구였다. 개가 영악한 동물인데 영채가 자기 먹을 것도 별로 없을텐데 어느 틈에 먹을 것도 주고 놀아 주면서 친분을 쌓았는지 모를 일이다.

"혈의 누"의 개는 주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정도인데, "무정"의 개는 그야말로 충견이다. 구박받는 영채에게서 좋은 대접을 받지도 못했을 터인데 결정적으로 영채가 어린 나이에 순결을 잃을 뻔한 위기에서 온몸으로 영채를 지켜냈던 것이다. 그리고 영채의 품에 안겨 장렬하게 전사한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처럼 국토에서 외적과 싸우는 것도 아니고 외국 군대들이 한국에서 싸운 비극적 상황 그리고 결국 식민지로 전락한 최하의 상황에서 인심은 각박해져만 갔을 터이다. 그런 인심이라면 차라리 개가 사람보다 나은 상황도 충분히 연출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사람보다 개가 나을 때가 종종 있지만. 소설이 어쩔 수 없이, 당연히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살짝 들어가있는 개 이야기들은 사람의 인간다움 회복을 촉구하는 메시지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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