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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축구 대표팀 선수 병역 면제 논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가

by wannabe풍류객 201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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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국민이 밤을 새게 만든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2010 월드컵 B조 경기가 끝났다. 아슬아슬한 위기가 많았지만 어쨌거나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누가 1등 공신이냐는 질문이 많이 제기되는데 나이지리아 그리스 경기에서 퇴장을 당해 나이지리아의 패배에 혁혁한 공을 세운 카이타야말로 한국팀의 16강 진출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공헌을 한 선수일 것이다. 

그런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국가적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태극전사'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기 위해 군대에 가야 할 대표팀 선수들의 병역을 면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부상했다. 

새벽의 경기가 끝난 이후 SBS와 인터뷰하는 도중 박지성은 군 면제가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혔고, 이청용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른 종목의 선수들에게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논리는 월드컵이라는 대회의 아주 특수한 위치, 올림픽에 비견될만한 거대한 대회라는 그 상징적 의미, 위치를 부각하는 수밖에 없다. 반대 의견도 있겠지만 월드컵의 특별함은 세계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는 바이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대한민국의 국민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보통 20대의 젊은 남성들만 지고 있는 의무지만, 헌법이 명기하는 이 의무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피할 수 없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 군대는 악몽이다. 가장 신체적 능력이 뛰어날 때 활약을 하며 몸값을 올려야하는데 2년 정도의 '공백'이 발생한다. 프로 팀의 입장에서도 핵심 선수가 군대에 끌려갈 때의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애초에 국가 대표팀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 활약을 해야 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이유를 따져본다면 병역 면제는 넌센스일 수 있다. 순수한 스포츠 도전 정신에 의해 국가 대표팀이라는 형식의 팀이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시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 대표팀 경기는 일종의 민족주의의 일환으로 국민의 자부심을 위해 싸운다. 그들은 누구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전사(戰士)다. 우리는 아주 당연히 그들을 태극전사라 부르지 않는가. 그 뛰어난 전사들이 왜 병역을 피해야 하는가. 오히려 그들의 군 입대야말로 병역 기피를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전환할 기회가 아닐까? 

우리는 연예계의 몸짱 남자 연예인 다수가 현역 입대를 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한다. 왜? 그들은 누구보다 자기 몸이 건강하고 튼튼하다고 수시로 전 국민에게 인증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운동 선수들은 연예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전사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들이다. 나라를 지키겠다면 그런 사람들이 군대에 더 필요하다. 

물론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뛰어난 선수들이 병역을 하는 동안 그들의 운동 능력이 저하될 위험에 대한 것이다. 이는 그 선수들이 제대한 후 국가 대표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 인해 또 다른 원정 월드컵 16강이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 남자들은 다 군대에 다녀오고도 잘 살지 않았나. 군대 다녀와서도 잘 하는 혹은 오히려 입대 전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있다. 군대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졌다면 그것은 그 선수의 한계로 인정하면 될 것이다. 더구나 병역 기간이 짧아지고 있는 마당에 2년도 안 되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다면 최고의 선수로서 자격이 없는지 모른다. 

약간 다른 경우지만 뉴질랜드 대표팀의 주장 라이언 넬슨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미국에서 축구를 하다가 20대 후반에 프리미어 리그에 와서 꾸준히 활약을 했고, 이번 월드컵에서 최약체로 꼽힌 뉴질랜드 팀의 2연속 무승부에 큰 기여를 했다. 한국 나이로 34세의 노장이지만 그는 며칠 전 경기에서 지난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의 공격을 한 점(그나마 PK)으로 막을 수 있었다. 고등교육까지 학업을 병행하고 축구계의 최고 무대인 유럽에 뒤늦게 합류하고도 한동안 최고의 경기력을 보이는 선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이 의무 입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민족이었던 국가와 대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장의 현실은 위쪽 나라에서 서울 불바다론을 말하는 상황이다. 왜 스포츠 스타, 국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선수들에게 병역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오히려 그들이 병역 의무 이행에 모범을 보였으면 한다. 그들이 반드시 총을 메고 경계 근무를 서야하는 건 아니다. 병역은 다양한 형태가 가능하고, 그들의 경기력이 유지될 수 있는 형태의 대안 복무 형태가 개발된다면 환영할 일이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가장 불편한 장면은 등장 인물 한 명이 병역 면제를 위해 스키 점프 대표 선수가 되겠다고한 대목이다. 가정의 딱한 사정이 있으니 그 심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국민의 의무를 면제 받기 위한 선택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는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병역 의무를 마쳤는지 아니면 미필인지 신경쓰지 않는가. 내각의 상당수가 병역 미필임을 개탄하지 않는가. 국회의원, 대기업 총수의 아들들이 미국인임을 비난하지 않는가. 왜 우리의 영웅들을 군대도 나오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실질적 의미에서 국제 대회의 좋은 성적을 통한 병역 혜택이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가, 군대, 병역 의무의 존재 이유와 대립한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기 위해 국가를 위해 싸운다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만약 언젠가 '골든 제너레이션'이 우리나라에 생겨나서 그들이 거의 십 년간 꾸준하게 최고의 국제대회 성적을 거둔다고 해보자. 어렸을 때 병역 혜택을 받아버린 그 선수들은 나중 대회에서 어떤 동기를 위해 싸울 것인가. 유일한 방법은 엄청난 보너스로 위로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프로 구단의 논리다. 국가 대표팀이 그런 식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대안적 형태의 병역을 생각해볼 수 있을지 몰라도 분위기에 편승한 병역 면제는 있을 수 없다. 이미 올림픽, 아시안 게임을 통한 운동 선수 일반에 대한 병역 혜택 규정은 있다. 아무리 월드컵 16강, 8강에 오른 선수라도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다. 정말 월드컵 16강 이상의 성적이 병역 혜택의 사유라고 판단된다면 제대로 된 국민 여론 조사를 하고 시행령 개정을 하길 바란다. 얼렁뚱땅 처리하지 말자. 월드컵 영웅들이 특별하다고 하더라도, 대회에서의 활약이 어느 군인보다 더한 국위 선양이더라도 의무는 의무임을 잊지 말자. 전쟁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만약 일어난다면 병역을 치르지 않은 축구 선수들에게 공을 차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은 해외파니까 나라 밖에서 불구경만 하라고 할 것인가? (과한 혹은 극단적인 표현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다만 원칙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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