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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자발적이었던 박지성의 QPR 이적

by wannabe풍류객 2012.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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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이 공식적으로 QPR의 선수가 되었다. 이적료에 대해서는 골닷컴이 2.5+2.5m 파운드 설을 제기했고, 여러 매체의 보도가 2~5m 으로 엇갈리는 걸 봐선 지금 2m 파운드 언저리를 지급하고 QPR이 다음 시즌에 강등되지 않을 경우 추가로 지급하는 형식이 맞는 것 같다. 적은 액수를 보고 실망할 사람도 있겠지만 선수를 파는 맨유 입장에서도 받아들일만한 액수이니 거래가 성사되었을 것이다.


'맨유의 박지성'에 대해선 가능한 관심을 끄고 살았지만 그가 맨유를 떠나게 되자 편안한 마음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뻔히 어떤 자리일지, 어떤 말들이 나올지 알면서도 어젯밤 11시에 있었던 QPR의 기자회견 생중계 화면까지 보고 말았다. 왠지 그냥 기대가 된달까 흥분이 된달까.


그런데 예정된 시간이 되었지만 검은 화면의 가운데 조그만 원이 돌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옆에 채팅창에서는 한국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보고 있다는 말들이 보였다. 그 말대로 익스플로러로 열어보니 영상이 나왔다. 박지성은 양옆에 감독인 휴즈와 구단주 페르난데스를 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박지성은 종종 구단주와 무슨 말인가를 나눠며 웃고 있었고, 영문 기사들에는 그 장면에서 '구단주와 농담하는 박지성' 같은 식의 해설을 달았다. 박지성은 편안해 보였다.


추측컨대 QPR은 거의 일주일 전에 영입을 사실상 결정지었을 터인데 월요일에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화려하게 터뜨리기 위해 박지성, QPR, 맨유는 모두 비밀을 지켰다. QPR의 말레이시아인 부자 구단주는 월요일 기자회견이 주목을 끌기를 원했고 적절히 언론에 흘릴 건 흘리면서 아닌 척하는 연기를 했다. 애초에 QPR 측에서 박지성 영입 사실을 흘리지 않았다면 언론에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영입이 확정지는 않았다거나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태도를 통해 언론(특히 한국 언론)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축구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계약 기간이 3년이 아니라 2년인 점은 예전 보도가 다 맞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주급 부분도 해명되지 않았다. 한국 언론에서 보기론 맨유 시절보다 적지만 경기출전 수당 등 보너스의 액수가 많다고 하는데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2년간 맨유 시절보다 팀에서 더 중요한 위치에서 뛰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점이다.


박지성은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구단주의 파트너로 보이기까지 한다. 비단 기자 회견 중에 구단주와 농담 따먹기하는 장면 때문만이 아니다. QPR은 곧 태국과 말레이시아로 투어를 간다는데 태국은 박지성이 자신의 재단을 통해 자선축구경기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박지성 재단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하는지는 조사를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말레이시아인 QPR 구단주의 이해관계와 상당히 부합할 것은 자명하다. 박지성이 앞으로도 동남아를 재단의 활동무대로 생각한다면 QPR 이적은 단순히 선수 경력만을 염두에 둔 건 아닐 것이다.


아침 기사들을 보면 마크 휴즈가 망나니 조이 바튼 대신 박지성을 주장으로 쓸 생각도 하고 있다는 뉴스가 눈에 띈다. 이미 한국 네티즌 사이에선 그래야한다는 말이 나왔던 터인데 실제로 휴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놀라웠다. 아무래도 QPR이 지난 시즌에 프리미어 리그에 오래간만에 승격한 팀이라 계속 선수들을 업그레이드하는 상황이고, 자연스럽게 팀에서 오래 뛰며 중심을 잡아줄 선수가 부족한 상황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국가대표팀의 주장을 했던 박지성이 QPR에서 주장 역할을 맡아도 잘 할 것 같다.


또 하나 보이는 건 이번 이적이 구단간 합의에 의해 박지성이 떠밀리듯 팀을 옮긴 게 아니라 오히려 퍼거슨과 길 단장의 뜻과 달리(그들은 박지성을 잡길 원했다고 한다) 박지성이 QPR 이적을 강하게 추진했다는 대목이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맨유에서의 한정된 기회가 박지성의 이적을 부추겼을 것이다. 맨유에서 박지성을 잡고 싶어했다고 해도 주전 역할을 부여하지는 않았을 테니.


박지성은 돈 때문에 QPR로 간 것도 아니라고 했다. 중국, 일본 혹은 잉글랜드 혹은 다른 유럽 팀에서도 제안이 있었고, 어떤 클럽의 제안은 금전적으로 QPR보다 훨씬 조건이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QPR의 "계획과 야망"이 자신의 흥미를 끌었다며 이적 이유를 밝혔다.


드록바, 아넬카를 비롯해 많은 축구스타들이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거액의 돈을 제안하는 중동과 중국의 팀들로 이적해왔는데 박지성은 그런 기회보다는 프리미어 리그의 덜 유명한 팀을 선택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모험이지만 비교적 명예로운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QPR 구단주가 박지성을 '글로벌 스타'로 말했듯이 박지성은 맨유 7년 경력의 베테랑 선수로서 QPR에 입성했다. 맨유에서 당시 중위권인 첼시로 이적했던 경험이 있는 마크 휴즈 감독은 박지성의 이적을 자신의 과거와 비교했다. 휴즈는 자신이 비알리, 굴리트와 함께 첼시에 24년만에 우승컵을 안겼다는 이야기를 하며 같은 맨유 출신 박지성이 QPR에 그런 영광을 안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확실히 박지성은 아시아의 축구 선수로서 너무나 많은 것을 이뤘다. QPR 이적을 폄하할 필요는 전혀 없다.




글을 쓰고 나니 박지성 아버지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다. 대체로 내 글의 입장과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QPR 구단주와 박지성 재단과의 관계가 분명히 논의되지는 않은 모양인데 시너지가 생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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