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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독립신문 미스테리

by wannabe풍류객 2009.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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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하여 독립신문. 사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창간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독립신문하면 1896년 창간된 것을 생각하게 된다. 

논문 때문에 독립신문을 뒤적이던 지난 달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신문 이름 아래 괄호 속의 문구를 보자. '명치29년9월14일체신성인가'라고 적혀 있다. 명치? 체신성? 명치는 당연히 일본의 메이지 천황을 말하는 것이다. 1896년 10월 17일 독립신문 영문판인 The Independent에 처음 이 문구가 등장한다. 혹시 잘못 봤나 해서 찾아봤는데 명치29년은 1896년이다. 

왜 이런 문구가 하필 '독립'신문에 삽입되어야 했을까? 1896년에 이미 일본의 입김이 조선에 강하게 미치고 있었음은 분명하겠지만 출판물에 이런 문구를 강요할 정도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더 중요한 한글판에는 이런 문구가 없다. 오직 영문판에만 이 문구를 넣은 이유는 뭘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어디 속 시원히 물어볼 데가 없었다. 독립신문에 대한 책을 몇 개 뒤적여보지만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 것 같았다. 

오늘 문득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니 그 이유에 대한 한 가지 가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론중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는 '계간언론중재'의 94년 봄호 글이다. 한국외국어대 신방과 정진석 교수의 글. 안타깝게 긴 설명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발견한 유일한 해석이다.

2개월 남짓 지난 뒤인 4월 7일에는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는데 처음에는 농상공부의 인가여부를 밝히지 않았다가 11월 19일자 제98호부터 제호아래에「건양 원년 사월 칠일 농상공부 인가」임을 기재하여 독립신문은 창간하면서부터 농상공부의 인가를 받았음을 명기하였다. 그런데 독립신문의 영문판인 The Independent는 이 보다 앞서 10월 17일자 제84호부터「명치 29년 9월 14일 체신성 인가」라고 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일본 체신성의 인가일자일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에 우송하는 경우의 우편료 감면을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에 우송하는 경우의 우편료 감면. 하지만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다. 국내 독자도 많지 않았던 독립신문을 일본에 많이 보냈을까? 하필 영문판에만 문구를 넣은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에 있는 영문을 해독할 수 있는 독자층을 겨냥했던 것이 아닐까. 어차피 이 때 독립신문은 한글판3면+영문판1면이 일체로 간행되었으니 영문판만 보는 독자에게라도 한글판이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유학 중인 조선인들을 위해?

영문판 독립신문을 보면 많은 기사는 한글판의 영어 번역이지만 의외로 상당량의 기사는 한글판에 없는 내용들이다. 이건 분명 두 판본의 독자층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글판의 공손한 말투는 영문판에서 사라진다. 영문판엔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등에서 활약하는 공사, 선교사들의 근황에 대한 기사가 많다. 그들은 종종 모여서 파티를 벌이는데 그런 시시콜콜해 보이는 내용까지 영문판 독립신문엔 자주 등장했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독립신문이 어떻게 넘어갔는지 모르겠으나 '명치29년9월14일체신성인가'는 어떤 식으로건 일본에서도 독립신문 영문판이 읽혀졌다는 정보를 알리고 있다. 이것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일까?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의 흥분은 답을 알 수 없음, 학계의 무관심에 꽤나 사그라들었다. 다른 해석들, 이 문구의 진정한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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