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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 문학 읽기

맹아원에서, 학(황순원)

by wannabe풍류객 201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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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상반기(맹아원 5월, 학 1월)에 발표된 황순원의 두 작품에서도 전쟁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맹아원에서

화자는 맹아원(아마도 부산에 위치) 사감. 후천적 맹아, 그것도 전쟁통에 포탄의 파편에 맞아 시력을 잃은 영이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룬다. 영이는 타고난 맹아가 아니기 때문에 시력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고("그러나 철이 들어 장님이 된 애는 좀처럼 자기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자신의 현실에 대해 반발했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부모가 실제로 살아있었지만 죽었다고 생각했고, 나이도 실제보다 3살 정도 적은 것처럼 행세했다. 또 남을 믿지도 않았다("소경애들은 벙어리애들과는 또 달라, 먼저 남을 의심하고드는 버릇이 있었다. 자기 피부로 직접 만져지는 것이 아니면 믿지 않으려는 것이다").

죽고 싶은 영이는 자살 계획에 나름의 기준을 세운다. 

사람이 어떻게 죽는 게 제일 편하고 남에게 숭한 꼴 보이지 않을까. 자동차같은 데 치어죽는 건 서울 있을 때 자기 눈으로 보았는데 그 끔찍스러운 꼴은 차마 볼 수 없드라구요. 그리고 목을 매 죽는 게 제일 편하다고 하지만 나중에 목이 늘어지고 혀를 빼물고 하는 게 숭하고....... 결국 물에 빠져죽는 게 제일일 거라고 한 일이 있어요.
영이가 죽을 생각을 하는 데는 봉이와의 사이에 생긴 아이도 한 몫했다. 영이와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봉이를 내쫓은 이후 영이는 봉이를 돌려달라며 사감을 위협했다. 둘의 관계가 소원해진 이후 영이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는데, 영이는 아기가 장님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에 처음에 안도했지만 이후 오히려 불안해했다. 오히려 아이도 장님이길 바랐다. 

이런 영이의 사고 방식은 어머니에 대한 배반감에서 비롯되었다. 박격포 파편으로 실명한 이후 죽고만 싶었지만 어머니가 같이 죽자는 말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동생들에게 자신이 죽은 이후 누나를 보살피라는 말을 듣고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성한 사람과 병신은 부모자식 사이라도 종내는 새가 벌어지고 만다는 걸" 무서워했다. 목에 돌을 매단 채 바다에서 자살을 기도했으나 뱃속의 아기가 꿈틀거리자 이미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고 자살을 포기한다.

소설 속에서 맹아원의 소경, 벙어리들 중 후천적(특히 전쟁으로 인한)인 장애의 비율이 얼마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소설은 전쟁의 상처를 가장 중심에 놓음으로써 부모자식 관계마저 틀어지게 만든 전쟁의 비정함을 폭로한다. 하지만 영이의 대응이 과도했음은 지적해야겠다. 작가의 견해대로 후천적 장애가 선천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가족이 멀쩡히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죽고 싶은 캐릭터가 나와야할 필연성은 없다. 어머니가 자식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많은 상황에서 동생들에게 누나를 부탁하는 게 그토록 배신감을 느낄 일일까. 

여하간 황순원은 어머니로부터 배신감을 느낀 영이가 자신의 자식마저 죽이기로 결심하게 만들며 다같이 죽자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영이를 뱃속의 아이와 함께 살려내며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영이는 전쟁 중에 서울, 수원(실명의 장소), 대구, 부산으로 이어지는 피난의 여정을 겪는다.



교과서에 실린 소설인가, 아니면 시험 지문이나 문제집에서 봤을까. 이번에 읽어보니 확실히 전에 읽었던 소설이다. 황순원의 원래 소설집의 제목으로도 쓰인 짧지만 강한 작품이다. 어릴 적에 누구보다 친했던 사이였지만 전쟁, 이념은 두 친구를 살인자로 만들었고 결국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어릴 적에 둘이 키우다시피하다가 사냥꾼의 총에 죽도록 하지 않기 위해 놔준 학을 회상하며 성삼이는 덕재를 예전의 학처럼 놓아준다.

장소는 "삼팔 접경"의 북쪽 마을. 성삼이는 전쟁의 외형적 상처는 별로 없지만 어딘가 어색한 자신의 고향을 발견한다. 성삼이는 치안대원, 덕재는 농민동맹 부위원장. 덕재를 자기가 청단으로 호송하겠다고 자청한 성삼은 담배만 피우다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러나 대화는 서로 몇 명을 죽여봤냐로 시작된다. 그러나 성삼이는 이 대화로 "가슴 한복판이 환해짐"을 느낀다. 덕재는 공산주의에 물든 사람이라기보단 "제일 빈농의 자식인데다 근농꾼이라" 부위원장이 되었다. 자청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남한이 마을을 점령하면 죽을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땅 파먹는 재주밖에 없고, 아버지가 농사꾼이 농사를 두고 떠날 수 없다고 반대를 했다. 6월에 홀로 피난했던 성삼이도 아버지에게 같은 말을 들었다. 이념보다는 내가 기른 내 땅의 농산물이 소중했다. 

그러다가 성삼이는 마치 "흰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보이는 학을 발견하고 둘의 추억을 떠올린다(학은 삼팔선 완충지대에서 살고 있었다). 어릴 적 서울에서 누가 학을 죽여 표본을 만들기 위해 총독부의 허락을 받아와서 자신들이 잡은 학이 위험해졌던 기억이다. 오랫동안 올가미에 묶였던 학은 처음에 잘 날지 못하고 총에 맞을 뻔 했으나 결국 도망갈 수 있었다. 

이범선의 '학마을 사람들'에서 학이 민족의 운명의 핵심적 상징이었는데, 여기서는 흰 옷을 입은 조선인과 동격처럼 나온다. 과한 해석인지 모르나 올가민에 묶였던 학이 도망을 가는 것은 조선, 한국의 독립에 해당될 수 있겠다. 그냥 단순히 자유의 소중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가 서로의 본질을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한국전쟁은 단기간에 전선이 전국을 오르내리는 통에 한 마을에 엄청난 적대적 감정과 원한을 생산해냈다. 성삼이가 덕재를 놔준다고 둘의 미래가 밝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성삼이는 그 때 덕재를 놔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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