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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 문학 읽기

일요일(이범선), 소나기(황순원)

by wannabe풍류객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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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서 이범선 단편선(문지)과 황순원 전집 중 3, 4, 7권을 빌렸다. 세밀한 고려가 있었다기보다는 1950년대 작품에 해당하는 것들만 골랐다고 볼 수 있다. 어제 이범선의 '일요일'을, 오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었다. 

일요일

이범선이야 '오발탄'으로 워낙 유명하고, 얼마 후 그 작품도 다시 읽을 예정이긴 하다. '일요일'의 첫 부분은 손창섭의 '공휴일'을 연상시킨다. 발표 시기는 '공휴일'이 52년으로 '일요일'보다 3년 앞선다. 별볼 일 없는 손창섭 소설의 주인공들과 달리 '일요일'의 주인공은 직업이 있어 출근을 하는 사람이다. 일요일에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워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아 아침부터 목욕탕을 찾는다. 그러나 여유를 찾기 위한 목욕탕 행이었지만 그 안에서 어느 뚱뚱보와 그의 아들의 몰지각한 행동들 때문에 기분만 상한 채 귀가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다가(휴일에 걸맞게! 저녁 때 의자를 들고 대문 밖에 나가 언덕을 관조한다. 그곳엔 아이들 여러 명이 메뚜기를 잡다가 메뚜기가 날 수 있는가에 대해 그리고 이후에는 누가 주인인가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메뚜기를 먼저 잡은 웃통 벗은 놈은 메뚜기가 날 수 있다고 하는 쪽이고, 캡을 쓴 놈(목욕탕에서 마주쳤던 아이)은 못 난다고 주장했고 주변의 아이들은 이 아이의 말에 동조했다. 

결국 메뚜기는 다리 한 쪽을 잃은 채 도망갔고, 이번엔 캡을 쓴 놈이 잡았다. 메뚜기가 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수의 의견으로 자신을 잃고 있었던 웃통 벗은 놈은 자신의 소유였던 메뚜기를 빼앗겼지만 울먹이며 달라고 요청만 할 뿐이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왜 늘 걔보고 못갈게 구니 응?"이라며 아이들을 야단친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화자는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웃통 벗은 놈이 "미웠다." 

"나는 아침 목욕탕 안에서부터 참아오던 울분을 터뜨리기라도하는 듯  연방 '못난 자식' '못난 자식'을 맘 속으로 되풀이하며 걸상을 들고 일어섰다."

못난 한국인에 대한 연민과 한탄이다. 우연히 바라본 곳에서조차 못난 한국인이 즉각 보일 정도로 못난 사람들 투성이다. 옷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웃통 벗은' 혹은 옷이 없는 사람과 뚱뚱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둔 그리고 웃통은 물론 '캡'까지 가진 사람이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이 소설은 '권리'에 대한 이야기다. 권리를 가졌음에도 말하지 못하는 소심함이 만연했다. 아이들의 다툼에서 보듯 소심함 속에는 캡을 가진 놈에 동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도사리고 있었다.

캡을 쓴 놈을 미국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무엇인가 가진 자, 약한 자를 무시하는 자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식민지에 이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인들은 무엇인가를 주장하는 것이 이토록 힘겨웠던 것이련가. 

소나기

'소나기'는 너무 유명해서 그야말로 두말할 필요가 없는 소설이다.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의 짧은 만남. 그러나 나름 강렬했던 사랑 비슷한 감정, 순간들. 언젠가 '소나기'의 이야기 구조를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한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선생님은 그런 거 다 필요없다며 사회적 맥락에서 볼 것을 주문하신 바 있다. 

오래간만에 다시 읽으며 선생님처럼 한국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가능성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그것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해야 할지는 망설여진다.

윤초시 댁 증손녀인 소녀의 상황을 보면 5학년이고,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업에 실패해서 고향에 돌아왔고, 고향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가서 양평읍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소녀네집은 즉 부모는 작은 가겟방을 볼 예정이다. 그러나 소녀는 이사가기 전에 죽었고, 윤초시댁은 대가 끊어진다. 

소년은 개울가에서의 만남 이전에 이미 소녀를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온 소녀. 더구나 같은 학교에 다니는데 어찌 모르겠는가. 윤초시라는 지역 유지 집안 사람이므로 더욱 모를리가 없다. 말을 붙여볼 기회가 없었을 뿐. 

소년은 소녀에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었다. 목덜미가 마냥 흰 소녀와 다른 "검게 탄 얼굴이 그대로" 물속에 비치는 것이 "싫었다." 소설 속 많은 행동들이 여자를 모르는 소년의 수줍음으로 인한 당황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대목은 그렇지 않다. 농촌과 도시는 대비가 되고, 도시는 어떤 동경의 대상이다. 소녀는 분홍 스웨터와 남색 스카트를 입지만 소년은 무명 겹저고리를 입는다(그런데 소녀는 맨날 같은 스웨터만 입는다. 스웨터는 입어도 몰락한 가정이라 옷이 여러 벌 있지는 않은 듯 하다. 혹은 소년을 만나는 날만 입었던 것일까?). 

소설 속의 제사가 누구의 제사인지 의문이다. 소녀의 제사일 가능성은 없을까. 제사는 이미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것이므로 일단 소녀의 제사는 아니고 집안 어른의 제사일 터이다. 그러나 분명 소녀는 누군가의 제삿날 죽었다. 소년의 부모도 이미 대충은 그렇게 될 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초시는 분명 과거 한국의 지식인 계급. 그의 아들은 상업 부르주아의 길을 걷다가 몰락했으나 여전히 상업을 추구. 소나기 한 번으로 대가 끊어진 이 가문의 상황은 부르주아의 몰락 혹은 허약성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측면 때문에 이 소설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소설 해석이 어려워진다. 

기타: 소녀는 일부러 참외를 '차미'라고 발음했던 것일까? 

마타리꽃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2478

비단조개. 그런데 모래갯벌에 많이 산단다. 소설 속 마을은 바다 근처였을까. 
http://www.etaean.net/Life/Life0101_02.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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