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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잉글랜드 축구의 긴급 임대(Emergency loan) 규정이란?

by wannabe풍류객 2011.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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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팬들이라면 최근 폴 콘체스키, 다니 파체코, 브래드 존스가 연이어 다른 팀에 임대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임대 계약이 '긴급 임대(Emergency loan)'라는 형태인 것까지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 긴급 임대라는 규정을 인지하게 된 것은 폴 콘체스키 때문이었다. 로이 호지슨은 리버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이전 클럽인 풀럼의 선수는 데려가지 않겠다던 풀럼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콘체스키를 리버풀 선수로 만들었다. 그러나 콘체스키는 로이 호지슨과 함께 엮여서 온갖 비난을 받아야했고, 아들을 과도하게 변호하려던 어머니의 페이스북 상의 욕설로 구설수에 올랐다. 로이가 결국 팀을 떠나고 케니 달글리쉬가 부임하며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한 콘체스키는 친정팀 풀럼으로 복귀하려고 했으나, 풀럼이 살시도를 팔지 못해 임대의 형태로 노팅엄 포리스트로 이적했다. 

그런데 콘체스키가 노팅엄으로 갈 때 한 가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의문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였다. 피파의 '선수의 지위와 이적에 관한 규정' 5조 3항은 한 선수가 한 시즌에 최대 세 클럽에 등록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물론 중복은 안 되고 한 시점에 한 클럽 소속이어야 한다. 그런데 세 클럽에 등록될 수는 있지만 오직 두 클럽의 공식 경기에서만 뛸 수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시즌에 이미 풀럼, 리버풀에서 공식 경기에 참여한 콘체스키는 다른 클럽에서 또 등록 선수로서 경기에 나올 수 없어야 한다(피파의 선수 등록 규정은 예외를 허용하지만 콘체스키의 경우와는 무관하다). 

당시의 뉴스는 콘체스키가 풀럼으로 갈 수 있고, 혹은 이적 시장이 끝나고 7일 이후 챔피언십의 팀으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풀럼으로 갈 수 있는 것은 풀럼이 전 소속팀이라 결국 콘체스키가 한 시즌에 두 클럽에서 소속되어 경기하는 셈이라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관건은 왜 다른 프리미어 리그 클럽으로는 갈 수 없느냐였다. 세 클럽에서 뛸 수 없다는 피파의 규정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데, 그렇다면 왜 하위 리그로 가는 것은 허용되는지, 왜 피파 규정의 위반이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콘체스키의 이름이 리버풀 팬들에게 각인된 경기

이유나 근거가 무엇이건 콘체스키를 리버풀에서 내보낸 건 대부분 팬들의 지지를 받는 일이었기 때문에나 역시도 더 이상 깊게 규정에 대해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 the Doctor 혹은 이전의 헤페시토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분이 네이버 리버풀 카페TP에 긴급 임대에 대해 잘 설명한 글을 보며 다시 의문이 솟아났다. 실상 긴급 임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이분의 글을 통해 설명되었기 때문에 나는 약간의 설명만 보태어도 될 터이다. 그렇지만 저간의 사정을 명확히 하자면 중복된 설명이 불가피하다.

우선 콘체스키가 노팅엄으로 갈 때의 뉴스에 나온 설명을 소개한다. 어떤 기사는 피파의 규정 때문에 콘체스키가 오직 '긴급 임대'로만 노팅엄으로 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또 다른 기사는 '긴급 임대'는 피파의 등록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결국 '긴급 임대'는 매우 예외적인 상황에 대한 규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콘체스키를 보낸 감독 케니 달글리쉬는 이 규정을 잘 모른다고 실토하며, 왜 93일까지만 보낼 수 있냐며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긴급 임대가 진정으로 예외적이기 위해서는 단기간이어야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긴급 임대 규정은 피파잉글랜드 축구협회의 허가를 받고 만들어진 제도다. 이 제도를 만든 것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현재는 npower 챔피언십, 리그1, 리그2)의 클럽들로, 2005년 총회에서 이 규정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자금이 풍족한 프리미어 리그와 달리 자금과 선수 모두 부족한 이들 클럽은 일 년에 두 번 있는 이적 시장(transfer window)마다 팀의 우수한 선수들을 부유한 상위 클럽에게 빼앗기기 일쑤다. 특히 이적 시장이 일년에 두 차례에만 열리도록 하는 강제 규정이 도입된 이후 8월말이나 1월말에 갑자기 주전 선수들이 팀을 떠나는 일이 상존했다. 대체 선수를 구할 틈도 없이 이적 시장이 닫힐 때마다 이런 하위 리그의 클럽들은 리그 성적에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적 시장이 끝나더라도 단기적으로 다른 클럽의 선수를 데려올 수 있기 위한 방편을 마련하고자 했고 긴급 임대는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제도의 탄생 과정에서 알 수 있듯 이 규정은 프리미어 리그 클럽 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프리미어 리그 규정 안에는 긴급 임대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콘체스키가 긴급 임대로 프리미어 리그의 클럽으로 갈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는 오직 챔피언십이나 리그1, 리그2의 클럽으로만 긴급 임대를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1군 골키퍼가 전원 부상당하는 경우처럼 위기의 상황에는 이적 시장이 끝나도 선수를 영입할 수 있지만 해당 클럽이 소속된 사무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참고로 한 프리미어 리그 클럽이 한 시즌에 다른 프리미어 리그 클럽들로부터 임대로 데려올 수 있는 선수는 네 명인데, 특정 시점에 그러한 임대 선수는 두 명까지만 있어야 한다

눈여겨 볼 점은 긴급 임대가 보통 이적 시장이 끝난 이후, 그러니까 원래는 선수가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수 없는 시기에 이용되는 제도이긴 하지만 콘체스키의 경우(1월 31일에 임대)처럼 통상적인 이적 시장 기간에도 가능하다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적 시장이 끝난 시점부터 일주일 동안에는 이용할 수 없고, 일주일이 지난 후 시즌 전반기에는 11월의 네번째 목요일까지, 후반기에는 3월의 네번째 목요일까지만 가능하다. 즉, 긴급 임대라고해서 시즌 막바지에도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생각할 부분은 아무리 긴급 임대가 예외 조항이라고 해도, 또 풋볼 리그의 클럽들이 위기를 느끼고 만든 제도라고 해도 어떻게 한 시즌에 세 클럽에서 뛸 수 없다는 피파의 규정을 피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위에서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가 상위 조직인 FA와 FIFA의 허가를 받았다고 적었는데, 참고가 될만한 사례를 소개해본다. 

2007-08 시즌 카디프 소속이었던 데이빗 포드라는 골키퍼가 루튼 타운으로 긴급 임대를 갔다 왔고 같은 시즌에 스코틀랜드의 던디 유나이티드로 다시 임대를 갈 참이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축구협회가 피파 규정을 들어 반대했고, 던디는 FIFA의 답을 요구했다. 당시 던디의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데이빗은 카디프에서 루튼으로 긴급 임대를 갔었죠. 그러나 그 팀들이 잉글랜드 클럽들과 같은 리그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긴급 임대]은 이적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아요(역자 강조).


던디 감독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 클럽들의 합의를 근거로 긴급 임대는 이적한 것으로 치지 않는다고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FIFA는 결국 이 이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드가 그 시즌에 본머스로 또 긴급 임대를 떠날 수는 있었다.

여기서 문제가 복잡해지는데 분명 프리미어 리그나 풋볼 리그의 한 선수가 한 시즌에 풋볼 리그의 클럽들로 여러 번 긴급 임대를 갈 수 있다. 다만 통산 93일을 넘길 수 없을 뿐이다. 그나마도 풋볼 리그의 허가 여부에 따라 연장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웨일즈를 포함한 잉글랜드 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이 제도가 다른 축구협회 소속 클럽으로의 이적에서는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빗 포드 사례에서 스코틀랜드 축구협회는 선수가 웨일즈(카디프의 웨일즈 컵 대회), 잉글랜드(루튼)에서 뛴 만큼 세번째 국가에서 뛸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파의 선수 등록 규정은 세 클럽에서 뛸 수 없다고 했지 세 국가에서 뛸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물론 두 클럽에서만 뛸 수 있는 한 세 국가에서 경기하는 건 불가능한데 피파 규정은 클럽 수에 대한 문제지 국가 수에 대한 제약이 아니었다. 결국 스코틀랜드 축구협회는 포드의 루튼에서의 경력을 없었던 일로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인데, 피파가 기왕에 잉글랜드의 긴급 이적을 예외로 인정해놓고 왜 포드의 던디행을 막았는지는 의문이다. 나중에 포드의 던디 임대가 무산된 이후의 뉴스를 보면 피파도 스코틀랜드 축구협회처럼 선수가 한 시즌에 세 국가에서 뛰는 건 불가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종합해보면 긴급 임대 규정은 챔피언십, 리그1, 리그2를 포괄하는 잉글랜드 풋볼 리그 내의 특수 규칙이고 이 공간을 넘어설 때는 제약이 따를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 클럽 사이에서의 긴급 임대는 원칙적으로 없다. 다만 골키퍼라는 특수 포지션의 위기 상황일 때에만 가능할 수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그리고 풋볼 리그 내에서는 한 선수가 한 시즌에 여러 차례 긴급 임대를 다른 클럽으로 갈 수도 있지만 스코틀랜드처럼 다른 리그로 가고자 할 때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긴급 임대 규정은 프리미어 리그의 화려한 생활과는 전혀 다른 처지인 하위 리그 클럽들의 자구책의 결과다. 그러나 말 그대로 '긴급'한 상황에 쓸 수 있는 조치라도 악용될 여지가 있다. 93일이라는 임대 가능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3월에 영입된 우수한 긴급 임대 선수는 시즌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쓸 수 있어 해당 클럽의 승격이나 강등과 같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또 이 제도로 인해 풋볼 리그 팀들에게 사실상 이적 시장의 존재가 무색해지기도 했다. 긴급 임대로 데려온 선수 그리고 원 소속 클럽과 합의만 된다면 시즌이 끝나자마자 완전 영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긴급 임대 선수는 한 경기에 5명까지만 내보낼 수 있는 제약이 있지만 무제한으로 영입할 수 있다.    

일 년에 두 번만 허용되는 이적 시장의 등장은 하위 리그 클럽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어떤 클럽들은 재정적 위기를 오직 소속 선수의 이적을 통한 이적료 수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일년에 넉달 동안만 선수를 팔 수 있다면 어려움을 타개하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리버풀과 같은 프리미어 리그 클럽에게 선수 임대는 비주전 선수의 경기 경험을 위한 조치지만 그런 선수들을 데려가는 하위 팀들에게는 거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절박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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