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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무한도전의 덫

by wannabe풍류객 2010.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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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시간이다. 잠이 오지 않을 이유가 몇 개 있지만 어제 방영된 무한도전도 한몫하고 있다. 너무 감동을 받아서는 아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이다. 

무한도전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된 것은 봅슬레이 때부터인 것 같다. 그 때도 블로그에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그 방송에 대한 시청다 다수의 너무나 압도적인 지지 때문인지 글을 마칠 수가 없었다. 짧은 훈련만 받은 멤버들을 무지막지한 속도로 하강하는 봅슬레이에 태우는 것이 옳은 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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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레슬링 특집의 대미를 장식한 장충 체육관에서의 경기들은 시청자들의 불편함을 더 가중시킨 것 같다. 여전히 많은 무한도전의 팬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북함을 토로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공포만 느꼈던 봅슬레이 때와 달리 멤버들은 훈련 과정에서 잔 부상에 시달렸고,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기도 했다. 심지어 경기 당일엔 정준하, 정형돈이 신체적으로 경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고통을 억지로 참고 경기에 임했다.

경기 직전 병원에 가야했던 정준하가 왜 경기장에 돌아갔나. 1년을 고생했는데 막상 보여줄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을 테고, 방송에서 본인이 말한 것처럼 더운 날씨에 한참을 기다린 관중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해설자들의 말처럼 정준하는 프로 레슬링 프로젝트에서만큼은 무한도전의 에이스였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발생하는 부상이었다면 당연히 병원에 그대로 머물렀을텐데 조금은 참을만한 상황에서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1경기에서 이겨야할 정준하가 없다면 시합 자체가 무산되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정준하는 1경기에서 한번의 순간을 빼면 완벽히 자기 역할을 소화했다.

하지만 3경기가 시작되기 전 이번에는 정형돈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프로 레슬링 프로젝트에서 정준하만큼이나 소질을 보인 정형돈의 신체 이상은 경기 무산을 유발할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러나 정형돈은 결국 정준하와 무대로 나가는 통로를 걸어갔고, 실제 경기를 어떻게 치렀는지는 다음 주에야 알 수 있다.

기억이 맞다면 이번 장기 프로젝트는 6개 후보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을텐데 하나같이 일반인이 하기에 무리인 것들이었다. 그나마 프로 레슬링이 할만한 프로젝트로 보일 정도였다. 모두 프로 레슬링이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안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고, 상당한 훈련 후에 경기 상대방과 호흡을 맞춰야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이 경기날을 위해 1년을 준비했다. 그러나 1년이라는 기간은 충분했을까? 다른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고 해도 1년만에 끝내려고 했던 것일까? 더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데드라인을 정하고 하는 도전은 무리수를 낳는다. 멤버들이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았음이 계속해서 드러났지만 경기 날짜를 잡은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진척이 더딘 멤버는 질책을 받아야 했고, 부상은 전혀 변명거리가 되지 못했다. 

관중 및 시청자와의 약속은 소중하다. 약속이 깨지면 그들은 화가 나고, 그들의 지지가 없다면 무한도전과 그 멤버들의 존재 가치는 없다. 하지만 멤버들 자신이 시청자를 위해 부상을 당하거나 죽을 필요는 없다. 경기에서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당연히 병원에 간다. 관중들이 부상당한 선수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리고 당연히 선수의 상태를 걱정한다. 경기 직전까지 부족함이 많았던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한 명의 이탈은 연쇄적 패닉 상태로 이어졌을지 모른다. 게다가 그것이 가장 잘 하던 정준하, 정형돈이라면. 그 부담감 때문에 그 두 연예인은 프로 선수보다 독하게 경기에 임했다.

정형돈이 토하고 정신을 못 차리면서 경기에 나서는 준비를 하던 방송 말미에 연예인에 대한 싸이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방송은 자막으로 연예인의 각오를 긴 시간 보여줬다. 시청자를 위해서는 무엇이건 하겠다는 그 자세. 일견 대견하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싶고 오히려 소름이 끼친다. 연예인 자신들이 종종 방송에서 말하듯이 주말 예능이 너무 심각할 필요는 없다. 몸이 성치않은 사람이 경기 중에 큰 부상을 당하지는 않을까 가슴 졸이게 만드는 것까지 예능의 역할인가? 물론 큰 부상이 없었기에 방송이 나왔고 다음 주에도 나올 것이라는 추측은 할 수 있다. 차라리 정준하의 병원행과 정형돈의 토하기가 연출된 것이길 바랄 지경이다. 

언젠가부터 무한도전은 마니아들의 종교가 되었다. 시청자는 줄었을지 몰라도 마니아들의 단결력은 강해진 것 같다. 무한도전은 종종 '천재', '신' 김태호 PD가 만드는 '레전드'로 격상된다. 다른 예능들은 대개 무한도전의 카피이고, 창의력은 무한도전에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무한도전이 새로운 시도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하는 것은 사실 같다. 나 자신이 한동안 거의 빼먹지 않고 방송을 보는 것도 그런 부분이 작용하고 있고, 길이 남을 명장면 몇 가지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 레슬링 같은 도전은 더 이상 편하게 볼 수 없다. 

무한도전은 '무한'의 덫에 걸렸다. 어느 분야나 새로움이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지만 새로움이 더 큰 자극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이제 멤버의 반이 40세 언저리의 연령에 이르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들의 가치가 커지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늙어가는 육체가 부상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까메오에서 정식 멤버가 된 길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무리수'라는 캐릭터를 부여해버린 무한도전이지만 이번 프로 레슬링 프로젝트는 시도와 과정이 무리수로 점철되었다. 

덫에 걸린 것은 제작자와 멤버들만이 아니다. 한동안 이어진 무한도전의 승승장구는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높였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도전이 대개 그럴듯한 성공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멤버들이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자처하고 있지만 관성적으로 그들의 무한도전이 성공하길 기대한다. 어려움이 있다고 해도 멤버들이 웃으며 극복해내었으리라 믿는다. 프로 레슬링 연습이 잘 안 되더라도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선을 보일 때는 어느 정도의 자신이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병원에서 돌아와 무대에 선 정준하의 아픔을 경기장의 관중들이 알 도리는 없다. 관중들은 1년 간의 무모한 도전의 과정이 어땠건 그 결과인 쇼가 당연히 재미있고 신날 것을 기대했다. 1시간 10분이 넘는 무한도전의 화면은 연예인의 숙명과 아픔을 토로하는 장 같았다. 우리는 그저 구경하고 웃어주기만 하면 되는 사람들이고,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건 해야 하는 광대, 딴따라, 연예인이라는 도식을 전복하기 위한? 사실 무도 멤버들은 대한민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고소득자들이다. 그 고소득이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고 치더라도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시청자와 팬들은 그들에게 더 많은 재미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프로그램의 인기, 출연자들의 출연료, 색다른 재미, 시청자의 기대치 무엇 하나 무한히 늘어날 수 없다. 이런 요소들의 긴장, 스트레스가 지속되고 강화된다면 무한도전은 무너질 것이다. 누구나 알 듯이 김태호는 신이 아니다. 그리고 신이 되어서도 안 된다. 무리수를 쓰더라도 재미있어야지 재미없거나 눈쌀이 찌푸려져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무한도전의 프로 레슬링 프로젝트는 안티 예능이다. 예능은 줄곧 즐거운 장면만 보여줘야 한다. 재미를 만드는 사전 단계를 전부 보여줄 필요는 없다. 너희들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 우리 멤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고 고함을 지를 필요도 없다. 그건 오히려 상도가 아니다. 직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은 도리이고 칭찬할 일이지만 고객은 결국 결과를 소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마련이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모르지만 참 대단하고 재밌구나 정도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해야지 절뚝거리고 뇌진탕에 걸리고 토하는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건 제작자의 감정 과잉이고 시청자들에게 부담이 된다. 무한도전이 그런 것까지 감싸주는 마니아들만을 위한 방송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긴장을 조금 늦추고 편하게 가길 권한다. 주말 예능인데.  



## 자고 일어나 몇 가지 생각을 추가로 적어본다.

프로젝트의 규모가 왜 이렇게 커졌는지, 부상에도 불구하고 촬영이 진행된 것은 누구의 의지인지에 대한 김태호 PD의 해명을 읽어보았다. 

- MBC 파업, 정준하의 부상이 경기일을 몇 달을 늦췄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5월에 훨씬 덜 준비가 된 상태로, 아마도 장충보다는 상당히 작은 소규모 경기장에서 적은 관중을 모아놓고 촬영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렇게 진행되었다면 아마 코믹한 내용이 훨씬 주를 이루는 한 주치 방송이 나갔을 것이다. 

- 무한도전의 각종 도전은 잘 알려지지 않은, 혹은 더 알려져야 마땅한 것들을 소개하는 의도가 담긴 것이 많았다. 그러나 들이는 노력에 비해 의도했던 사회적 파급력이 나타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타난다고 해도 매우 단기적이다. 프로그램 자체의 책임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가 방송 하나 때문에 바뀌는 시대는 지났다.

- 부상에도 불구하고 무리해서 촬영을 감행한 멤버들의 고난의 행군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듯 불굴의 의지가 빛난 아름다운 광경이다. 그러나 장충 체육관에 4천 관중이 모이지 않았다면 자신들의 몸을 조금은 보호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너무 커져버린 무대가 준비가 덜 된 멤버들의 온갖 사정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해버렸다. 김태호는 만류했다고 하지만 멤버들이 몸을 거동할 수 없는 지경이 아닌 이상 촬영은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 예능이 아니라 다큐다. 어제 방송을 포함해 무한도전은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이걸 칭찬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제작진은 프로그램이 예능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도의 앞서가는 모습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 시간대의 방송에서는 가벼움을 바라는 시청자가 훨씬 많다. 돌이켜보면 무도는 거의 언제나 여러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목표 달성을 위한 부담감을 육체를 학대하는 방식으로 해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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