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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사냥의 시간 (2020)

by wannabe풍류객 2020.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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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을 만들었던 윤성현 감독이 오래간만에 신작 영화를 내놓았다. 이제훈, 박정민이 다시 한 번 출연하고, 기생충으로상종가인 최우식도 메인 캐릭터로 연기했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영화에 대한 혹평이 대다수다. 자신들의 시간을 사냥당했다고 한다.

 

확실히 영화는 무언가 이상하다. 가장 이상하기로는 '한'이라고 하는 킬러가 왜 다 잡은 물고기를 놓아주고 다시 사냥을 하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러닝 타임을 늘리려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되돌아보자면 킬러가 봐주지 않고 다른 식으로 용케 호텔에서 벗어났어도 결국 언젠가 다시 잡히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준석은 대결을 선택한다. 희망없는 젊은이에게 도망가지 말고 맞서야한다는 메시지가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의 한국은 근미래로 보이고 가게 간판들의 형태로 보아 현재 한국 사회와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초반에 강력하게 두 번이나 잡히는 광고 문구, 아마도 많은 돈을 냈기에 등장했을, 그러나 이제는 회사 자체에서 폐기한다는 LG 씽큐라는 글자가 역설적으로 영화 배경의 현실성 혹은 과거성(?)을 드러낸다.

 

영화에는 많은 그라피티가 보이고 젊은이들은 힙합 음악을 들으며(그런 음악은 단지 영화 배경일 수도 있다)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치 미국의 슬럼가를 보는 듯 하다. 영화에서 한국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슬쩍슬쩍 지나가며 제시될 뿐이다. 한국은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국가 부도 상황이다. 총기를 이용한 강력범죄가 빈번하고, 은행은 강도를 당하는 게 이상치 않고, 아마도 한국 돈의 가치는 거의 없을 것이며 달러를 확보하는 것이 긴급한 과제다. 총기 부분을 뺀다면 이미 20년도 더 지난 97년의 외환위기 상황과 별 다를 게 없는 상황이다. 최우식의 캐릭터 기훈의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 데모를 하는 노동자 중 하나로 설정되었다.

 

3년 전 보석상을 털다 잡혀 수감생활을 하고 막 출소한 이제훈의 캐릭터 준석은 이런 상황에서 살 길은 대만으로 탈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가족이 없는 것으로 설정된 준석과 장호에게 해외 도피는 큰 고민이 없는 해결책이다. 달러만 있다면. 더구나 그 곳은 하와이처럼 멋진 풍경까지 즐길 수 있다. 기훈은 가족 때문에 당장의 도망은 연기한다. 그러나 결국 살아남는 것은 준석 하나다. 영화 속 한국이라는 지옥에서는 사냥감이 된 이상 살아남을 수 없다. 해외로 도피해도 언젠가 찾아올 자객을 끝없이 걱정하는 것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준석은 반격을 시도한다.

 

경찰은 카지노를 운영하는 조폭과 분명히 연관을 갖고 있었고, 경찰의 일원인 '한'은 킬러 놀이를 한다. 경찰이 살인자라는 강력한 비유라고 하겠다. 경찰이 물대포로 사람을 죽이던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을 환기시키는 것일까? 아니면 경찰이 경찰답지 않은 행동을 함으로써 사실상 아무나 죽이기도 하는 사건들을 말하고 싶을까? '한'이 조폭과 끈이 있음에도 단독 플레이를 한 것은 그가 경찰이기도 함을 강조하는 설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킬러'는 매우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그는 경찰이기에 감시 카메라들에 자유롭게 접근해서 사냥감들의 동선을 쉽게 추적할 수 있었다. 즉 경찰이 부패하면 얼마나 쉽게 국민들의 사생활이 유린되는지 강조된 것이다. 최근 박사방 사태에서 주민센터 공무원들의 안이한 업무 전가로 많은 개인정보가 유출되고 범죄에 이용된 것을 확인한 바 있다. 도박장이 강도를 당하는 순간 조폭들이 자신있게 보복을 장담했던 것도 개인의 정보망을 움켜쥔 경찰 조직과 조폭이 결탁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폭이나 경찰 어느 쪽에건 도전을 하는 시민은 쉽사리 보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한'이 그렇게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것도 그가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경찰-조폭' 복합체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사라져도 다른 '한'이 나타날 것이다.

 

준석 일당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불법 도박장을 털었기 때문에 다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들을 확인할 수 없도록 cctv 영상이 담긴 하드디스크까지 가져간 것 때문에, 즉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오히려 죽음을 맞이했다. 조폭에게 금고 속의 돈은 푼돈에 불과했지만, 하드디스크 속의 온갖 거래내역과 VIP 정보가 유출되는 것은 재앙이었다. VIP는 그토록 지옥과 같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낭비할 달러가 많은 소위 사회지도층, 기업가들일 것이다. 악의 근원은 매우 높고 깊은 곳에 있다는 말이겠다.

 

커뮤니티에서 읽어본,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은 어떤 글은 영화 속의 풍경이 MB가 이룩했을 것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MB때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파수꾼의 후속작을 구상하던 감독이 영화 속 풍경과 같은 미래를 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공감하게 된다. 가장 깡패가 득세했던 시기는 1공화국 때이고, IMF 구제금융은 97년 이후 몇 년이고, 경찰이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던 것도 이전 정권의 일이니 감독은 한국 현대 사회에서 있었던 지옥 같은 상황들을 하나로 엮어낸 것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군대가 강력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총기 범죄가 그렇게 만연해질리는 없기에 영화의 현실성이 떨어지긴 하지만 지옥이 언제나 있었고 그리 어렵지 않게 올 수도 있다는 경고, 혹은 도망만 치면 지옥을 더 악화시킬 뿐이니 각성하라는 권고의 목소리로도 들린다.

 

파수꾼의 감독이 엉성한 총놀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코로나19라는 비상한 상황이 영화의 극장 개봉을 막고 넷플릭스로 직행하게 만들어, 극장 상영이면 영화를 안 봤을 관객들이 보게 만든 측면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근미래의 가상극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 역사에 대한 비유적 표현을 했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그나마 납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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