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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나비 케이타의 일본 욱일기 문신 논란에 대해

by wannabe풍류객 2018.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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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이제 토너먼트 모드로 들어가기 직전인 상황에서 일 년 전에 리버풀 입단이 결정된 나비 케이타가 라이프치히에서 리버풀로 이적하였다. 월드컵 소식 때문에 이런 대형 이적에 대해서도 비교적 조용하게 넘어가나 싶었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큰 논란이 발생했다. 케이타의 왼팔에 우리나라에서 '전범기'라고 불리는 욱일기 문양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나름대로 케이타의 사진들을 검색할 때는 문신이 가려지거나 해서 욱일기 모양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네이버의 리버풀 팬 카페에서 케이타에게 문신을 해준 사람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고화질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https://www.instagram.com/p/BiuNjILlszP/?taken-by=rebelkid.de

https://www.facebook.com/rebelkidartworks/


케이타의 문신이 욱일기와 일치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의 이번 문신은 오래된 것이 아니다. 케이타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많지는 않지만 초창기인 2016년 그의 팔은 매우 깨끗해보였다. 실제 문신을 해준 사람이 이미지를 올린 것도 올해 5월 13일 그러니까 지금부터 고작 한 달 반 정도의 일이었다. 리버풀로의 이적을 앞두고 기념삼아 한 일일까? 자세한 이야기를 아직은 알 수 없다. 


한국의 축구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 문신 사건을 계기로 케이타를 이토 히로부미나 일본 천황과 합성한 사진까지 올라왔다. 리버풀 팬 커뮤니티에서의 반응도 매우 부정적이다. 일본의 직접 지배를 받았던 한국의 역사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리버풀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이 사건에 대해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문신을 해준 사람의 페이스북의 이미지들을 쭉 살펴보건대 그가 일본 문화에 대해 적어도 조금의 관심은 있음을 알 수 있다. 앞 발 하나를 든 고양이 모양이나 애니 원피스의 캐릭터 등을 문신으로 새겼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케이타 외에 욱일기를 해줬던 사진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에 대해 동조했다거나 혹은 파시즘을 옹호한다는 증거가 될 만한 문신이나 스케치는 확인하지 못 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나비 케이타가 왜 동아시아에서 아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문양을 했을까? 한국에서 몇몇 사람들이 리버풀에코의 기자와 리버풀 공식 홈페이지에 답변을 요구했다니 공식적인 반응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답변이란 것은 결국 나비 케이타가 한국인의 감정을 거슬리게 할 목적은 없었다, 모르고 한 일이다, 욱일기가 그저 일본의 한 상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정도일 것이다. 우리가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지만 객관적 정황들로 보건대 그가 문양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도 일부러 문신을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나. 


최근 서경덕 교수의 문제제기로 한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전범기'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을 터이다. 기실 '전범기'라는 말은 공식 용어가 아님은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욱일기 문양이 제국 일본 시절 침략의 상징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 문양이 종전 후 곧바로 (군대가 아니라고 주장하긴 하지만) 해상자위대에는 그대로 그리고 자위대 문양에는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내려왔고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별 문제제기가 없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뒤따른다. 만약 욱일기를 나치의 문양과 동격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여지껏 일본이 이 깃발을 그대로 사용하는 동안 왜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한국 그리고 중국의 욱일기에 대한 신경질적 반응 때문에 어떤 일본인은 영어로 '전범기'라는 용어의 사용 패턴에 대해 분석하는 글을 작성하기도 했다. http://murawaki.org/misc/flag.html 그의 분석 결과 한국에서 전범기라는 용어가 인터넷에서 사용된 것은 놀랍게도 2011년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도 한국 축구대표팀의 정치적 논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잊혀졌던 이름이지만 박종우의 '독도는 우리 땅' 세러모니, 혹은 기성용이 철없던 시절 했던 원숭이 흉내가 모두 2011, 2012년의 일인데 이 사건과 맞물려 '전범기', 욱일기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고조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해보면 2000년 이전(1920년부터) 전범기라는 말은 거의 나오지도 않고, 욱일기조차 거의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다. 빅카인즈를 통해 2000~2018을 검색해보아도 앞서 말한 일본인의 분석과 일치하는데, 2010년 이전에 전범기나 욱일기에 대한 기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일본이 독일에 비해 과거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반성하지 않는 것도 맞고, 욱일기가 일본 제국의 군대의 상징이었기에 그 식민지 경험을 한 피지배 민족에게 지금도 상처를 주고 있는 것도 맞다. 혹시 케이타가 문신에 대해 어떤 조치까지 취해준다면 많이 고마울 일이다. 하지만 케이타가 불순한 의도로 그 문신을 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전범기'라는 정체불명의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더 찾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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