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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케니 달글리쉬의 어두운 과거: 뉴캐슬 감독 시절

by wannabe풍류객 2012.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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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최고의 레전드를 꼽을 경우 흔히 현재 감독인 케니 달글리쉬가 거론된다. 최근 스티븐 제라드가 해트트릭을 한 이후 그가 케니를 뛰어넘을 선수로 여겨야 하지 않냐는 의견이 생기며 리버풀 최고의 레전드 논쟁이 잠시 생긴 적이 있지만 단지 선수로서만이 아니라 리버풀 감독으로서의 탁월한 성적을 감안하면 제라드는 아직 케니를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케니 달글리쉬지만 그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누군들 없으랴! 그러나 케니 달글리쉬 같이 저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에게 무시하지 못할 실패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겐 의외였다. 리버풀 뉴스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아서겠지만 케니가 작년 1월에 리버풀 감독으로 돌아왔을 때 이후로 그의 과거에 대한 나쁜 평가를 그리 보진 못했다. 


케니는 힐스보로 참사의 압박을 느끼며 리버풀을 떠난 이후 2부 리그였던 블랙번을 구단주의 과감한 지출에 힘입어 1부 리그로 이끌고 심지어 프리미어 리그 우승까지 일궈냈다. 리버풀 시절에 선수 겸 감독으로서 활약할 때는 원래 잉글랜드 최고의 팀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우승을 쉽게 했던 것 아니냐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클럽에서도 우승을 함으로써(당시 다른 두 개 이상의 클럽에서 리그 우승을 한 경우는 케니가 역대 네번째였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과시했다. 물론 블랙번에서의 우승도 구단주의 돈이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평가절하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축구 인생이 성공 일변도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뉴캐슬에서 그의 축구 감독으로서의 경험은 결정적인 오점이었다. 이후 그가 셀틱에서 임시 감독으로 잠깐 있었을 뿐 13년 이상 다시는 감독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그 자신도 직업으로서 감독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거나 혹은 흥미를 잃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경과는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케니 달글리쉬는 블랙번에서 역사적인 리그 우승을 이끌어 낸 후 감독에서 사임한다. 이후 블랙번 경영진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어서 어린 시절에 응원했던 스코틀랜드의 레인저스의 회장의 회사에서 경영을 맡기도 했다. 그런 이후 뉴캐슬 감독에 부임하게 된 것인데, 레인저스 회장과의 친밀함은 나중에 그가 셀틱의 단장으로 옮겼을 때 분란의 원인이 된다. 


케니가 부임하기 전 뉴캐슬은 잘 나가는 팀이었다. 단순히 성적이 좋은 것뿐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축구팬들 모두가 자신이 서포터하는 팀에 이어 두번째로 좋아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매력적인 축구를 했다. 이는 케니의 전임 뉴캐슬 감독인 케빈 키건의 덕이었다. 선수로서 둘은 70년대에 리버풀 최고의 스타 자리를 물려받은 사이이기도 한데(키건의 대체자가 달글리쉬) 뉴캐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리버풀 선수로서는 케니가 키건의 과거를 완전히 압도한데 비해 뉴캐슬 감독으로서 케니는 영원히 키건의 그늘에 가려져야했다. 재미있게도 전임 리버풀 감독 호지슨은 케니의 그림자 때문에 실패한 바 있다.


Kevin Keegan 's Fergie Rant


케빈 키건의 뉴캐슬은 '엔터테이너'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천재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공격진을 바탕으로 다득점 경기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키건의 뉴캐슬은 우승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키건은 더 많은 스타 선수 영입을 원했던 것 같고, 뉴캐슬 경영진은 이미 알란 시어러를 영입하며 출혈이 컸기 때문에 거부했다. 키건은 사임했다. 그래서 뉴캐슬은 후임을 찾았고 보비 롭슨과 협상이 잘 되지 않자 케니 달글리쉬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뉴캐슬의 상태를 알아야한다. 이 때 신문기사들을 보면 뉴캐슬의 주가에 대한 언급이 많다. 예를 들어 케니 달글리쉬가 부임하자 뉴캐슬 주식 가격이 올랐다거나, 또 역설적이게도 나중에 그가 뉴캐슬을 떠나자 또 주식이 올랐다는 식의 언급들이다. 추가적인 조사를 하지 않았지만 뉴캐슬이 주식 시장에 상장된 것은 90년대 프리미어 리그의 초창기의 일로 보인다. 


'엔터테이너' 뉴캐슬의 시초는 어느 돈많은 인생 늘그막의 부자가 뉴캐슬 경영에 개입하며 마구 돈을 풀면서 시작되었다. 케빈 키건은 그 돈으로 매력적은 팀을 꾸렸고 팬들은 키건을 '메시아'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관대한 구단주의 지원이 무한할 수는 없었다. 키건은 조금만 더 지원해주면 완벽한 팀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한데 클럽 경영진은 클럽의 주식시장 상장을 앞두고 이미 늘어날대로 늘어난 부채 상황을 감안해 키건의 요구를 거절한다. 키건은 즉각 사임하고 싶었지만 뉴캐슬이 상장될 때까지 반 년을 더 기다려야했다. 주식시장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뉴캐슬의 운영은 케니의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키건이 떠나자 뉴캐슬은 팀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인물을 원했다. 그래서 리버풀, 블랙번에서 감독으로서 역량이 검증된 케니를 데려왔다. 97년 1월에 부임한 케니는 반 년 동안 뉴캐슬을 리그 2위로 이끌었다. 이미 키건이 떠날 당시에도 뉴캐슬은 우승에 도전할 전력의 팀이었다. 케니는 97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상당히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팀 공격의 핵심인 다비드 지놀라, 레스 퍼디난드, 피터 비어즐리 등을 모두 떠나보내며 팬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뉴캐슬이 시어러를 사오면서 진 빚을 갚기 위해 팀의 스타 선수들을 팔아야만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원인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케니는 자신이 영입한 선수들을 위해 거의 비슷한 정도의 돈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케니는 한물 간 스타와 덜 알려진 유망주 스타들을 무수히 영입한다. 리버풀 시절을 함께 한 존 반스와 이안 러쉬에 마찬가지의 노장인 스튜어트 피어스가 뉴캐슬 선수가 되었다. 자신의 아들인 폴 달글리쉬를 영입하기도 했다. 나중에 다른 팀에서 스타였지만 뉴캐슬에서는 실패한 욘 달 토마손도 이 때 영입되었다. 개리 스피드와 셰이 기븐, 솔라노 정도(그나마 이 선수들도 케니가 떠난 이후 활약)를 제외하면 대체로 케니가 데려온 선수들은 실패였다. 그것도 아주 비싼 실패였다. 


97-98 시즌 뉴캐슬은 강등 당할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케니 달글리쉬는 해고되지 않았다. 경기 결과 아스날에 2-0으로 패하긴 했지만 FA컵 결승에 오른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뉴캐슬에서 케니의 재임 기간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케니는 98-99 시즌이 시작되고 고작 두 경기만 맡은 후 뉴캐슬을 떠난다(두 경기 모두 무승부). 사임이냐 해고냐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뉴캐슬 경영진 중 오직 한 명하고 친했던 케니는 다른 이사회 멤버들과 불화를 겪고 있었고 실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말다툼의 과정에서 이사회는 케니의 사임 의사를 인지했다고 하는 반면 케니는 신문을 보고서야 자신의 해임을 알았다면서 팀에 8백만 파운드의 위약금 소송을 제기해 30만 파운드의 협상안을 받아들인다. 


지금 리버풀에서 케니가 그렇듯 뉴캐슬에서 케니는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는 팀의 형편없는 경기력과 선수들의 부진을 끝까지 변호했다. 그는 오직 한 번 자신의 책임을 인정했을 뿐이다. 블랙번 감독 시절까지 성공밖에 모르던 스타의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뉴캐슬 팬들은 키건을 사랑했기에 키건 당시보다 경기력도 안 좋고 더 폐쇄적인 자세의 케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케니가 뉴캐슬 팬들을 감싸안지 못하기도 했다. 키건은 평소 클럽의 훈련장을 모두가 와서 볼 수 있도록 개방했고, 고작 팀 훈련임에도 팬들이 운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케니는 아무도 훈련장을 볼 수 없게 만들었고, 경비원을 고용해 선수들과 자신의 근처에 팬들이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너는 너, 나는 나. 키건의 엔터테이너가 해체된 이후 케니의 뉴캐슬은 팬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며칠 전 케니가 뉴캐슬 감독일 때 파르마로 이적한 콜롬비아 공격수 아스프리야가 케니를 강하게 비판했다. 키건이 아스프리야를 중용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아스프리야는 지놀라, 시어러, 퍼디난드 등과 함께 엔터테이너의 일원이었다. 지금 많은 리버풀 팬들은 '패스 앤 무브'가 케니의 전술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실체가 무엇인지 의아해하고 있다. 뉴캐슬 때 케니의 전술은 키건의 것과 극명히 대비되는 수비적인 것이었다. 키건의 고위험 축구를 소위 실용주의의 안전함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뉴캐슬 경영진에게 고위험을 안전함으로 바꾸는 것은 현명한 판단으로 보였지만 케니의 축구는 키건과 달리 결과를 내지 못했다. 


Ronnie Moran (left), manager Kenny Dalglish and assistant manager Roy Evans enjoy the club's 18th championship title
Ronnie Moran (left), manager Kenny Dalglish and assistant manager Roy Evans enjoy the club's 18th championship title by wekkuzipp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뉴캐슬 시절의 케니는 지금의 케니를 이해하는데 많은 단초를 제시한다. 먼저 영국 출신 선수들을 중용하는 측면을 보자. 케니가 처음 리버풀 감독이 되었던 80년대말은 아직 외국인 선수가 잉글랜드 축구에 많지 않던 시절로 당연히 영국 선수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블랙번 감독이었을 때는 시어러, 서튼과 같은 영국 선수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뉴캐슬 때는 외국인 선수가 갈수록 늘어나는 조류에 맞게 수많은 외국인 유망주를 영입한다. 그렇지만 케니는 여전히 영국 선수들과 친했다고 하고, 외국인 선수들은 인터뷰를 통해 무조건 보호함으로써 기를 살려주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케니의 외국인 선수 영입은 거의 철저한 실패였다. 작년부터 캐롤, 헨더슨, 다우닝, 아덤, 벨라미 등 영국 선수 위주의 영입을 시도한 케니가 과연 앞으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더라도 잘 다루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게 만드는 대목이다. 


또 케니는 돈이 성적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인다. 실제 뉴캐슬 시절에 그런 취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블랙번, 뉴캐슬에서 리그 최고 수준의 지출을 통해 팀을 꾸리려고 했다. 블랙번 때는 성공했지만 뉴캐슬 때는 실패했다. 리버풀에선 현재까지 실패했다. 유망주는 언젠가 더 성장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그런 유망주의 집단이 갑자기 동반 성장을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케니의 뉴캐슬의 유망주 여럿이 다른 클럽으로 이적해서 꽃을 피운 것을 보면 현재 리버풀의 잉글랜드 유망주들을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보호하고 끝까지 길러내야할 클럽 차원의 용기 혹은 선수 관리가 절실하다. 


케니 달글리쉬의 철저한 친구 관리는 축구계에 그의 아군 집단을 만들어냈다. 주지하듯이 영국 TV, 신문들에는 케니와 선수 생활을 함께 하거나 감독이었던 그의 팀의 일원이었던 스타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BBC의 해설 위원인 알란 시어러, 알란 한슨, 마크 로렌슨 등이 있고, 존 반스와 테리 맥더못은 케니가 감독 생활할 때 계속 데리고 다니며 일자리를 마련해줬던 인물들이다. 현재 리버풀 감독 케니에 대한 많은 의혹과 비판이 급상승하는 이 시점에도 이 아군 집단은 케니가 리버풀의 적임자라며 변호해주고 있다. 


리버풀 최고의 레전드인 케니 달글리쉬를 이렇게 '까발리는' 일이 즐거울 리는 없다. 하지만 뉴캐슬 이후 감독 생활을 사실상 접었던 케니가 리버풀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그리고 지난 시즌 후반기엔 그럭저럭 성공적이었을 때 케니를 믿어야한다고 외쳤던 많은 목소리에 대해 경고의 말을 할 필요도 있다. 케니의 리버풀은 케니의 뉴캐슬만큼 어두운 미래가 될 수도 있다. 케니가 유일하게 한 시즌 전체를 맡았던 97-98 시즌 뉴캐슬은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기 탈락하고, 리그를 13위로 마쳤으며 FA컵 준우승에 머물렀다. 현재 리버풀의 그림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번 여름 리버풀이 선수단에 대해 큰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리버풀 축구 디렉터인 코몰리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뉴캐슬 이사회는 98년 여름 케니가 이적 시장에서 마음대로 선수를 영입하게 놔두고는 리그 두 경기만에 해고하는 이해 못할 판단을 내린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 뉴캐슬은 이후 다시는 97-98 시즌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아마 리버풀 구단주들은 이번 여름에 아니 이미 지난 1월 이적 시장부터 케니의 뉴캐슬 시절의 실패가 리버풀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자금을 주지 않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너무 비관적인 해석일까? 어쨌거나 뉴캐슬에서와 달리 리버풀에서 케니는 변하지 않는 왕이다. 왕에 대한 홀대는 아무리 구단주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 시즌 리버풀 성적이 극적으로 반전되지 않는다면 케니의 두번째 리버풀 감독 생활은 2년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오늘 밤 있을 리버풀의 뉴캐슬 원정은 작년 1월에 35m 파운드에 이적한 앤디 캐롤의 고향팀 방문에 주로 초점이 맞춰지지만 사실 정말 오래간만의 케니의 뉴캐슬 복귀이기도 하다. 만약 리버풀이 오늘도 진다면 98년의 뉴캐슬의 상황이 더 진하게 겹쳐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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