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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FA의 발표가 있었으나 수아레스의 에브라에 대한 인종차별 혐의가 인정된 것인가?

by wannabe풍류객 2011.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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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놀랍게도 FA 즉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갑자기 한 달 가량 끌어온 에브라에 대한 수아레스의 인종차별 혐의 사건에 대한 공식 발표를 내놨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대형 축구 커뮤니티들에서는 한바탕 수아레스를 성토하는 글들이 난무한 가운데 소수 리버풀 팬들이 수아레스를 변호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이번 발표로 이 사건은 일단락이 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우선 FA 성명을 뜯어보자. 

FA charge Luis Suarez

Liverpool player charged following incident in Liverpool–Manchester United match.

The FA has today charged Liverpool’s Luis Suarez following an incident that occurred during the Liverpool versus Manchester United fixture at Anfield on 15 October 2011.

It is alleged that Suarez used abusive and/or insulting words and/or behaviour towards Manchester United’s Patrice Evra contrary to FA rules.  

It is further alleged that this included a reference to the ethnic origin and/or colour and/or race of Patrice Evra.

The FA will issue no further comment at this time.


내가 자주 가는 리버풀 커뮤니티 TP를 보면 이미 다른 커뮤니티나 SNS에서의 반응을 보고 온 분들의 댓글들이 있는데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성명의 성질은 무엇인가. 제목을 보면 FA가 루이스 수아레스를 charge한다고 되어 있다. 이하 두 문장은 같은 내용으로 계속 FA가 수아레스를 charge하고 있다. charge가 무엇인가. 이는 경찰이 어떤 사람이 범죄 혐의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행위를 뜻할 수도 있다. 한국어로 기소나 고소로 번역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charge하는 주체는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라 축구협회다. 즉 형사소송법 등을 기준으로 가릴 문제가 아니라 축구협회라는 단체가 자체의 규칙에 위반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을 징계할 수 있다, 징계해야겠다는 발표인 것이다. 

이어지는 두 문장을 보자. 여기서 주목할 표현들은 alleged와 너무나 자주 사용된 and/or. 수아레스의 인종차별 혐의에 대한 완벽한 근거가 갖춰졌다고 보기엔 자신없어보이는 단어들이다. 물론 최종 판결이 안 나왔으니 수아레스에겐 혐의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유보적인 allege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and/or들은 무엇인가. 수아레스가 에브라에게 무례하고 모욕적인 말을 했을지는 몰라도 행동까지 했다? 별 차이도 없는 ethnic, colour, race를 모두 언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이 대목은 며칠 전 드러난 것처럼 우루과이에서는 인종차별이 아닌 말(negrito 같은)이 잉글랜드에서는 인종차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판단의 애매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FA가 긴 시간을 들여 조사한 이후 애매한 말들로 가득한 성명을 내놓은 것은 왜일까.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기에 일단 발표를 하고 리버풀과 수아레스의 반응과 대응을 보며 징계 수위를 정하겠다는 것인가? FA로서는 이미 경찰 조사까지 병행되고 있는 테리의 사건도 처리해야하는 가운데 시간의 압박으로 성급한 발표를 한 것은 아닐까.  

영국 언론들은 대체로 수아레스에게 불리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FA에서 수아레스의 혐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수아레스로서는 FA가 납득할만한 자신의 결백에 대한 강력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징계를 피할 수 없다. 기존의 유사 사례를 참고하면 수아레스는 최소 여섯 경기 출장정지와 벌금 처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수아레스가 수차례 혐의를 부인한 이상 가중 처벌도 예상된다. 

그동안 리버풀에서는 수아레스의 주장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왔고, 이번 FA의 발표 이후에도 수아레스를 옹호했다. 대표팀에 차출되었다 돌아오는 도중인 수아레스는 개인적인 청문회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요청을 비롯해 수아레스가 FA의 이번 발표에 대해 응답을 하면 이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릴 FA의 조사위원회(tribunal)가 개최된다. 이 절차는 3주 가량 걸린다고 한다. 만약 이 절차를 거치고도 수아레스의 죄가 인정되면 리버풀에서는 불가피하게 수아레스를 클럽 차원에서도 징계를 내려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버풀 공격의 핵심인 수아레스가 한 달 이상 경기에서 빠질 가능성이 더욱 뼈아픈 일이다. 

뉴스들이 지적하듯이 조사가 진행중인 동안 관계자들이 입을 닫을 것을 FA가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버풀의 감독 달글리쉬와 수아레스가 모두 입을 연 것이 FA를 화나게 했을 것이다. 이는 이번 발표 그리고 이어질 최종 판정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아직 FA의 징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리버풀로서는 매우 좋지 않은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수아레스의 수수께끼 같았던 말을 되새기며 마치려고 한다. 

"FA는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제가 그에게 인종주의적인 어떤 말도 했다는 증거가 없어요. 하나는 스페인어로, 하나는 영어로 이루어진 두 가지의 논의가 있었어요. 저는 그를 모욕하지 않았어요. 그것은 단지 제 생각을 나타내는 방식 중 하나였어요. 저는 그를 그의 팀동료들이 맨체스터에서 그를 부르는 어떤 말로 불렀어요. 그리고 심지어 그들도 그의 반응에 놀랐죠"


수아레스는 우선 스페인어를 쓰는 자신(아직 그는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과 영어를 사용한 에브라의 대화에 대한 언급, 그리고 그로 인한 오해의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론 negrito가 되었건 무엇이건 그 말은 심지어 자기 자신을 부르는 말이므로 인종차별적일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맨유의 동료들이 에브라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다고 한다. 맨유의 어떤 선수들이 스페인어로 검은 피부색을 뜻하지만 친근한 어투의 말로 에브라를 부를까. 데 헤아, 치차리토, 발렌시아 등이 가능한 후보들인데 문제가 생겼던 그 경기에서는 데 헤아와 치차리토가 뛰었다. 

아무리 피부색과 관련된 N워드가 우루과이에서 인종차별적인 것이 아니라 친근한 표현이라고 해도, 리버풀과 맨유의 경기에서 상대방 선수에게 적대적 감정이 없었을까. 아마 이러한 추측이 수아레스의 말이 친근함이 아닌 악의 가득한 말로 비춰질 수 있는 배경일 것이다. 그리고 두 선수가 경기 중에 몇 차례 충돌했기 때문에 수아레스가 에브라를 향해 호의에서 우러나온 의미로 N워드를 썼다고 보기는 힘들 수도 있다. 이 맥락이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잘 못하고 잉글랜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수아레스가 정말 에브라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악의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단어의 맥락을 알았다면 뻔히 징계가 예상되는데 에브라의 주장대로 열 번 이상 할 정도로 수아레스가 멍청할까. 이 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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