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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역사추적

by wannabe풍류객 200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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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KBS 역사추적의 핵심은 당나라에서 장군(*황궁 도성을 방어하는 좌위위대장군)을 지낸 예식진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백제 유민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백제가 멸망한 것이 의자왕의 실정 때문이 아니라 백제(웅진성)의 병력을 쥐고 있던 예식의 배반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예식진과 예식이 동일 인물이고, 의자왕과 삼천 궁녀는 문인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란다.

나라를 멸망하게 한 폭군의 전형처럼 그려진 의자왕을 구제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방송이었지만, KBS 제작진에서 너무 흥분했나 보다. 방송을 만들고 방영한 공은 있지만 누가 이런 소리를 먼저 했는지 정도는 제대로 설명해줬으면 좋으련만. 예식[진]과 관련된 국내 보도는 연합뉴스에서 가장 먼저 시작되었다. 

망국 백제 고위관리 묘지석 1천300여년 만에 찾았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652660

<망국 유민의 비극..백제 고관 예식진 묘지석>

"백제 유민 예식진은 의자왕 넘긴 장본인"

그리고 방송에 (당연히) 등장했지만, 국내의 김영관 박사, 중국의 배근흥(바이근싱 *흥미롭게도 KBS는 이 분이 말할 때 처음엔 배근흥, 나중엔 바이근싱으로 표기했다) 교수 등이 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백제 멸망에서 예식의 역할을 규명한 사람들이다. 바이근싱 교수의 글을 보면 중국 학술지에서 처음 등장한 예식진묘지석을 중국에 있는 연합뉴스 기자가 보고 2007년 5월말 기사를 쓰고, 김영관 박사가 같은 해 8월 중국에 가서 조사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

김영관 박사가 작년 신라사학보 10호에 낸 '백제유민 예식진 묘지 소개'라는 글은 볼 수가 없는데, 2008년 바이근싱 교수의 글은 구할 수 있었다. 국가기록원의 이창주씨가 번역하였고, 백제연구에 수록된 '백제와 당 관계에 관련한 두 문제: 웅진 도독 왕문도의 사망과 예식진묘지명에 대하여'라는 글이다. 안타깝게도 한글로 된 그 이상의 연구 논문은 없는 것 같다.

여하간 바이 교수의 글을 보니 예식과 예식진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생각만큼 강하게 주장하는 논조는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드러난 사료가 너무 적기 때문이란다. 삼국사기에는 예식[진]에 대한 언급이 왜 없는지 등이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예식진이 백제 유민으로는 부여융(의자왕 아들), 흑치상지와 더불어 당에서 정3품의 벼슬을 받은 극소수의 인물이라는 점, 하지만 기존 사료로는 황제를 지킬 정도의 신임을 줄만한 공적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 등은 예식과 예식진이 같은 인물이고 의자왕을 협박하여 당에 항복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한다. 

누가 통치자로 있어도 국가가 정말 멸망할 상황에 이르렀다면 매국에 대해서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적국의 공격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평가는 후대에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예식[진]이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항복하도록 의자왕을 협박했는지, 무모한 항거로 무의미한 희생을 더하는 것이 싫어 왕에게 항복을 권유했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백제 충신이라면 당에서 주는 고위관직을 덥석 받지는 않았으리라.

바이 교수의 글에는 백제 멸망 후 홀로 당으로 건너가 고위직에 올랐으나 마찬가지로 가족 없이 외로이 죽어간 예식[진]의 인생에 대한 추정이 나온다. 백제에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살아있었겠냐는 것이다. 웅진에서 백제군을 총지휘하던 장군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KBS 역사추적 게시판에는 예식을 두고 '원조 매국노'라고 표현한 글이 많이 눈에 띈다. 1300년전 국가를 지키는 총책임자에서 적국의 고위 장군이 된 인물을 간단히 매국노로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은 중국이고 백제는 한국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있는 한. 하지만 역사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민족주의의 에너지는 강력하지만 과거사를 윤색하기도 한다. 너무 긴 이야기는 능력도 부족하고 공부를 더 해야 하니 이만 줄이련다.

그간 역사추적은 '추적'이라는 말처럼 일반인의 상식을 뒤집는 소재를 많이 다루고 있다. 1, 2 문무왕릉비의 비밀 / 3 수라간의 비밀 왕의 요리사는 남자였나 / 4 신라해적 왜 대마도를 침공하였나 / 5 1300년 만에 밝혀진 의자왕 항복의 비밀. 하지만 당연히 학계에서는 연구가 되고 있는 내용들이다. 이번 토요일에는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 같은데, 보아하니 기존에 방영되고 책으로도 나온 최인호의 '왕도의 비밀'류가 아닐까 걱정이 되는데 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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