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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홍대입구, 명동 유람기

by wannabe풍류객 2008.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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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돈부리'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몇 주 전에 홍대에 엄청나게 맛있다는 돈부리 집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잊어버리고는 라면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결국 지난 토요일 또 한 번 유명한 거리에서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홍대라고는 두어 번 가봤지만 어디가 어딘지 기억도 안 난다. 홍대의 밤거리엔 '퓨전'이 난무한다. 그리고 대부분 주점. 조용히 저녁밥을 먹기엔 부적절해 보였다. 

돌고. 또 돌고. 홍대 앞까지 가고 말았다. 홍대역은 그냥 홍대역인줄 알았는데 정확하게는 '홍대입구역'이다. 서울대입구역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꽤 걸었다는 얘기다. 결국 추운 날씨에 너무 걸어다 싶어서 인근의 음식점에 가기로 했다.

문득 눈에 들어온 글씨. '시리아'. 시리아 음식점이 한국에? 밖에 사진과 함께 소개한 메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순전히 호기심에 실크로드라는 그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주방과 카운터에는 아랍계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시리아 사람인지는 알 수 없으나. 메뉴판을 들춰보니 메뉴의 반 정도는 치킨 요리. 치킨 필레와 실크로드 누들을 주문했던 것 같다. 많지는 않은 양. 닭부터 칼로 썰어 먹고 다 불어터진 누들을 먹으니 나름 배가 부르다. 그런데 시리아라는 이름에서 기대한 기발하고 색다른 맛은 아니었다. 유일한 독특함은 기름이 그득한 튀긴 식빵. 입안 가득한 기름기를 즐기며 과자먹듯 식빵을 먹었다.

약간 실망하여 실크로드를 나오니 또 다시 고민의 시간. 차 마실 곳을 물색하다 한 사주 카페에 들어갔다. 사주를 보진 않았고, 뒷 자리에서 다른 사람들이 담배를 피웠고, 출입문이 잠깐 열려 춥기도 했지만 조용한 편이었다. 민숭맨숭한 밀러 한 병으로 보낸 시간. 사주를, 남의 운명을 봐주기 위해 '선생님'들이 화려한 한복 비스무리한 복장을 갖추는 모습, 일을 마치며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카페의 한 켠은 사주보는 사람만 앉는데 밤 늦도록 사주를 보려고 기다리는 행렬이 끊어지지 않는다. 만원에 내 운명을 알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

어제는 명동에 갔다. 홍대처럼 잘 모르는 곳.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다고만 알고 있는 곳. 

경기 불황의 여파일까 사람은 적당히 많았고, 밤이 깊어갈수록 상당수의 일본인과 소수의 중국인 쇼핑객이 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명동에서 간 식당은 '가쓰라'. 입구로 들어가서 짧은 복도를 걸으니 20명도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방이 나타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하에는 같은 이름의 가게가 더 있었던 모양이다. 2호점식으로. 

고로케 정식, 히레까스 정식을 먹었다. 몇년 만에 먹는지도 잊어버린 고로케는 고소했고, 히레까스는 맛있지만 평범한 편이었다. 발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밥을 다 먹고도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일어섰다. 

다음 행선지는 들꽃이 있는 찻집. 내 기억엔 들꽃이 있는 풍경이었는데 풍경이 아니라 찻집이 맞나 보다. 기억력이란. 

오디주스와 치즈케익을 먹었다. 숟가락과 빨대를 합쳐놓은 기묘한 쇳덩어리를 이용하여 주스를 마시며 케익을 먹었다. 좀 달다. 

유명한 거리라도 알고보면 별 게 없는지도 모른다. 숨겨진 근사한 가게들도 많을 터이지만. 거리를 유명하게 만든 분위기, 지리적 요건. 이런 것들도 영원할리 없다. 어떤 곳에서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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