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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 철도로 돌아본 근대의 풍경

by wannabe풍류객 2008.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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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이토록 관심을 기울이게 될 줄은 올해 초에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기가 자의1/4타의3/4로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모던'이 판을 치던 식민지 시기에 대한 글과 영화가 쏟아져나와 나름 연구하기엔 편한 측면이 있긴 하다.

이 책은 몇년 전에 철도에 대한 글을 보기 위해 찾아두었지만 여태 읽지는 못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당시엔 철도에 대한 책이 거의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책 뒤편의 긴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서 저자의 독서량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자는 철도가 가져온 변화를 참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잘 서술해줬다.

한동안 소위 한국의 근대 시기는 암흑기로 묘사되었다. 청, 일, 러, 영의 탐욕의 대상이었던 한반도. 결국 전통적으로 대체로 경멸의 대상이었던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헌병경찰이 판치는 무단통치의 시기. 강제징용, 온갖 수탈이 자행된 시기가 아름다울리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힘든 시기라고 해도 살아가야 했다. 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 때문에 죽어버릴 수도 있지만 살아야 했고, 99%의 절망과 단지 1%의 희망이 있다고 해도 살아갔다. 

라듸오 데이즈, 원스 어폰 어 타임 같이 요즘 이 시기를 다룬 영화들은 참으로 가볍다. 얼마 전 개봉한 모던 보이도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 놈놈놈도 상당히 경쾌하게 식민지 시기를 다뤘다. 이런 영화들이 심각하지 않다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모든 사람들이 사라진 지 오래된 국가를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일 수는 없다. 상당수는 자본주의의 단맛에 빠져들어 개인적 욕망 충족에 충실했다.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식민지 시기의 중요한 단면이다. 

운동회에 대한 글을 최근 써서 발표했고, 앞으로는 식민지 시기의 축구에 대해 쓸 것이다. 구한말, 식민지 시기에 관심이 별로 없을 때는 당시 스포츠에 대한 글을 보며 참 태평한 삶이 지속되었구나 싶었다. 아니 식민지 시기가 의외로 살만했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철도로 시작된 한국의 근대화가 얼마나 끔찍한 방식으로 기존의 삶을 뒤엎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어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특히나 우연히 혹은 의도적으로 철도와 전차는 실질적이면서 상징적으로 수많은 인명을 앗아갔다. 전차 선로를 목침삼아 자다가 목이 달아난 예가 많았다는 부분이 가장 가슴 아팠다. 

철도가 가져온 신속한 삶에 안주하기만 했다. 더 빨라지기를 더 편리해지기를. 기계문명의 발달에 환호하기만 했다. 그런데 얼마전 PD 수첩에서 오체투지하는 신부와 스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 느림 속에서, 땅에 온 몸을 던지는 충실함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지도 모른다. 빠른 산업화는 빠른 자연 파괴로 이어져 기후 변화는 이미 재앙의 수준이다. 철도로 상징되는 질주하는 삶의 종말을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야 할 것인가. 모두가 왜 사는지에 대해 진정으로 다시 고민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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