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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헤어질 결심 (2022)

by wannabe풍류객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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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오래간만의 신작이다. 박해일, 탕웨이 주연의 이 영화를 너무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문득 박찬욱의 작품이라는 게 새삼 떠올라 충동적으로 보고 왔다. 예전 버릇이 나와 영화 보다 깜빡 졸고 말았다. 영화가 1부, 2부로 나뉜 걸 모르고 1부가 끝나고 13개월 후라는 설명이 나오며 끝나는 줄 알다가 다시 이야기가 이어져 긴장의 끈이 풀린 듯 하다. 그래서 영화의 몇 대목은 전혀 알지 못 하고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통해 그런 게 있었구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리뷰가 더욱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는 박찬욱 영화 치고는 순한 맛이다, 잔혹한 장면이 없다는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엔 짤막한 후기글 몇 개와 이동진의 리뷰 영상(생각만큼 깊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여러 지점을 간명하게 설명해 도움이 많이 됐다)과 박해일, 박찬욱이 참여한 GV 영상을 읽고 보았다(GV영상에서도 깊숙한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지만 붕괴 씬을 설명하다 박찬욱 감독이 나의 해방일지의 추앙을 언급한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박해일이 뭐 하는 역할인지 몰랐는데 시작은 고경표와 사격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결국 총은 나중에 실전에서 사용된다. 박해일의 캐릭터 해준은 불면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졸음 운전을 하고, 자주 안약을 눈에 넣어줘야 한다. 해준의 시력과 판단력은 불완전하다는 걸 전제하고 시작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눈은 영화에서 매우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죽은 이들의 뜬 눈이 살인자를 본다는 대사가 있었던 듯 하고, 시장에서 굳이 물고기 눈을 만지는 장면도 있다. 물고기, 즉 생선은 생존의 장인 바다에서 인간에게 사로잡혀 죽은 채 또 다른 인간을 응시한다. 응시는 능동적인 단어이기 때문에 생선이 응시할 수 없지만 영화는 마치 그런 것처럼 촬영되었고, 이는 인간 시신들의 눈에 대해서도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사인에 대한 진실은 어딘가 있다는 듯이. 조금 더 나가자면 이정현 배우의 정안 캐릭터가 굳이 생선 눈을 만진 건 그녀의 직장이 원전이고, 이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후쿠시마산 생선의 유통을 돌려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크게 강조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원전 완전 안전"이라는 글과 말이 영화에 반복되었고, 이웃 나라의 원전 사고를 본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원전이 완전 안전할리가 없기에 영화는 원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걸로 보였다. 원전 완전 안전을 정안이 믿는다면 그녀는 기꺼이 후쿠시마산 생선을 먹을 것이고, 복수를 당할 수 있다. 

 

영화가 처음에 다소 복잡하게 느껴진 건 탕웨이 캐릭터인 손서래 외에 몇 년 간 해준을 괴롭힌 미결 살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에 연루된 두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이 자꾸 언급되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영화 1부의 초점은 산이고, 기도수라는 캐릭터의 추락사였다. 혼자 떨어졌냐 누가 밀었냐의 문제인데 망자의 젊은 중국인 아내가 수상하면서도 알리바이가 있었다. 나중에 밝혀지듯 그 알리바이는 불완전한 화자인 월요일의 할머니의 대답에 근거했기에 무너졌다. 할머니는 서래가 오는 날이면 아무 때나 월요일로 인식했다. 

 

영화는 잠복근무하다 사랑에 빠지는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같은 소재를 다룬, 제목부터 잠복근무인 예전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고, 칸 영화제에서 동반 수상한 '브로커'도 따지고 보면 남녀의 사랑이 아니라 그렇지 감시대상에게 빠져든 감시자를 다루고 있다. 물론 '헤어질 결심'은 전통에서 약간 비튼 지점이 있다. 영화가 1, 2부로 나눠지듯이 사랑했지만 확신하지 못 하고 혹은 사랑을 말하지 못 하다가 깨닫고 후회하는 흐름의 변화가 정교하게 구성되어 있다. 나중에 서래의 말처럼 대강 서로 사랑인 걸 알지만 깊이 사랑하는 시점이 달랐고, 이 사랑이 현실에서 꽃 피우긴 어렵기 때문에 서래가 자신의 생사를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만들며 영원한 사랑으로 바꾸는 모험이 있었다.

 

이 사랑의 큰 장벽은 일차적으로 둘다 결혼한 상태라는 점일 것이다. 해준은 잠복근무를 일삼는 남편이고, 원전에서 일하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아내 정안과 주말 부부 사이다. 서래는 나이 많은 남편 기도수의 죽음 이후 얼마 안 있어 투자 전문가인 또 다른 남편을 얻었다. 그러므로 둘의 사랑은 법적 불륜 상태이기에 진전되기 어려웠다. 결국 둘 다 법적 파트너를 상실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큰 장벽이 있다. 서래가 살인자, 그것도 여러 명을 죽인 살인자라는 점이다. 물론 각각의 살인에 대한 합리화는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에 드러난 혹은 서래의 설명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서래가 잔혹한 살인마 혹은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 점은 직업윤리가 투철한 해준을 크게 괴롭혔을 것이다. 그는 사랑 때문에 범죄자 서래를 놓아주고 증거인 휴대폰을 바다 멀리 던져버리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붕괴'되었다고 진단했다.

 

붕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방식은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공교롭게 화제작 '나의 해방일지'의 "나를 추앙해요"와 겹쳐진다. 두 단어의 뉘앙스는 꽤 다르지만 일상 언어에서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단어들이긴 하다. 다만 붕괴는 요즘엔 멘탈 붕괴, 줄여서 멘붕이라는 식으로는 많이 사용되어 왔다. 붕괴는 영화의 대미를 시각적으로 장식했다. 1부가 산, 2부가 바다의 이야기인데, 2부가 끝나며 서래는 미리 정해둔 해변의 한 지점을 열심히 파내고 구덩이를 만들어 들어간다. 파낸 모래는 하나의 작은 산을 이루고, 화면에는 작은 산과 넓은 바다가 한 번에 잡힌다. 그리고 만조가 됨에 따라 파도가 점점 해변을 잠식하며 작은 산은 금세 무너져 '붕괴'된다. 모래산의 붕괴는 서래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해준은 직업윤리의 붕괴에 이어 더 큰 심적 붕괴를 겪을 것 같다. 아마 해준은 서래의 바람처럼 집의 한 쪽 벽면을 서래의 사진으로 가득 채우고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박정민, 김신영, 박용우의 등장은 모두 반가웠고, 누구보다 '나의 아저씨'의 세상 착한 직장인 역할을 한 서현우 배우가 폭력배로 나와 반전 매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중국인 배우를 섭외한 줄 알았다. 한 번 보고 남들의 정리에 도움 받으니 영화가 생각만큼 모호하진 않았다. 아마도 다시 보게 된다면 두 주연배우의 눈에 드러난 감정에 가장 집중해야할 듯 하다.

 


안개는 핵심적인 소재인데 이미 이동진 리뷰영상에서 강조되어서인지 아까 적을 때는 통째 빼먹었다. 안개는 다른 작품들에도 종종 사용되어왔다. 최근 애플 tv의 디 에식스 서펀트에도 영국 에식스 근처의 강과 바다의 안개가 20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과학, 미신, 종교 어느 것도 확고하지 않은 인식의 혼란을 상징했다. 한국 문학에서는 대표적으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제목부터 안개를 언급하고 있고, 늪 같은 지방 도시를 안개를 통해 그려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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