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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엉덩이와 조선의 노래의 연결점은?

by wannabe풍류객 2016.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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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동요의 가사를 곱씹어 보게 되었다. 원래 어릴 적 알던 가사는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 빨가면 사과 / 사과는 맛있어 / 맛있으면 바나나 / 바나나는 길어 / 길면 기차 / 기차는 빨라 / 빨르면 비행기 / 비행기는 높아 / 높으면 백두산"이다. 아이를 키우며 동요 영상을 보다 보면 요즘은 똥구멍보다 엉덩이로 순화하여 부르는 편이라는 점이 눈에 띄고, 가끔은 백두산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비유가 추가되는 걸 보기도 한다. 내가 부를 때는 항상 백두산에서 끝났다.


그런데 원래 가사가 원숭이 똥구멍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원숭이에 대한 비하적 표현이라고 하겠다. 또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까지만 생각하면 한국보다는 일본 노래 가사라고 보는 편이 더 어울려보인다. 일본 원숭이가 따로 있을 정도로 원숭이는 일본에서 친숙한 동물이고, 원숭이와 바나나의 연결은 자연스럽다. 사과는 잘 모르긴 해도 일본에서 나름 의미있는 과일일 것 같다. 한국보다 먼저 근대화의 단계를 밟아나간 일본이고, 신칸센이라는 고속열차에 비행기 기술도 한국보다 훨씬 앞선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일본 노래, 놀이 등이 식민지 시기에 한국에 크게 영향을 끼쳐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는 연구를 진행했던 홍양자는 원숭이 똥구멍 노래가 일본 노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책 "빼앗긴 정서, 빼앗긴 문화"의 일부 구절을 보면 말잇기 노래 중 '이로하니 별사탕'이라는 노래에 '빠른 것은 기차'나 '높은 것은 후지산' 등 원숭이 똥구멍과 유사한 구절이 담겼다고 하고, 원숭이 똥구멍 노래는 일본에도 그런 노래가 있다는 것으로도 추측이 가능하게 설명되어 있다.[각주:1]


그러나 이러한 짐작은 맨 마지막 백두산 때문에 완전히 전복된다. 백두산은 한국 민족주의의 중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지구상에 백두산보다 높은 산은 너무 많은데 하필 높은 산 중 백두산을 꼭집어 말함으로써 이 노래는 민족주의적 의미를 갖게 된다. 원숭이는 한국 문화에서 그다지 중요한 동물은 아닌 것 같다. 사과를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먹었는지 잘 모르겠다. 기후적으로 잘 맞지는 않았을 텐데. 바나나는 말할 것도 없이 근현대에 거의 대부분 수입하여 먹게 된 새로운 음식이다. 바나나는 일제 시대에도 일반인이 먹을 수는 있었다지만 바나나를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려면 해방 후 그것도 한참 산업화가 이루어진 이후여야 하지 않을까. 나도 어린 시절 바나나 구경을 해보긴 했지만 별로 먹어보진 못할 정도로 귀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이 노래가 도대체 언제 누가 만든 노래인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일차적으로 얻을 수 있는 단편적 검색 결과는 놀라운 진술을 한다. 이 노래가 1931년에 만들어진 조선의 노래(이은상 작사, 현제명 작곡) 앞에 불린 노래라는 것이다. 학술논문을 찾아보고, 오래된 노래를 채집한 기록을 봐도 원숭이 똥구멍과 조선의 노래를 이어부른 관행은 분명히 있었다. 그리하여 이 조선의 노래, 해방 후에는 대한의 노래로 명칭이 바뀐 이 노래의 연원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되었다.


실제로 이 노래는 동아일보에서 1931년에 조선의 노래라는 제목을 정해놓고 현상공모한 창가 부문의 신청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처음엔 익명생의 1등작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마땅한 수상작이 없어 이은상이 여러 작품에서 문구를 골라 자기가 새로 편집해서 만든 가사라고 한다. 현제명의 곡은 나중에 지어진다.


조선의 노래 가사는 오늘 인터넷에서 발견한 것과 동아일보 아카이브의 것이 조금 다르다. 어느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적어 놓는다.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 사는 우리 칠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조선이로세

삼천리 아름다운 이 내 강산에
억만년 이어 나갈 배달의 자손
길러온 힘과 재주 모두 합하니
우리들의 앞길은 탄탄하도다

보아라 이 강산에 날이 새나니
삼천만 너도 나도 함께 나가자
광명한 아침해가 솟아오르니
빛나도다 그 이름 조선이로세


1965년 동아일보의 기사에는 이렇게 나온다.


백두산 뻗어나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예사는 우리 이천만
복되도다 그 이름 조선이로세

삼천리 아름다운 이 내 강산에
억만년 살아갈 조선의 자손
길러온 재조와 힘을 모두세
우리의 앞 길은 탄탄하도다

보아라 이 강산에 밤이 새나니
이천만 너도나도 함께 나가세
광명한 아침 날이 솟아오르면
기쁨에 북바쳐 노래하리라


1931년 1월 21 동아일보 4면에는 "당선창가, 조선의 놀애 (그 1)"이라는 제하에 이 가사가 눈에 잘 띄게 실려있다. 실제로는 한자가 많고 띄어쓰기가 지금과 다르고 맞춤법도 지금과 다른데 65년 동아일보 기사는 조금 현대화된 맞춤법으로 바꿨지만 가사 자체는 그대로 게제했던 걸 확인할 수 있다. 즉 맨 위에 인용한 어느 사이트이 조선의 노래 가사는 원본과 상당히 많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인구로 칠천 만과 삼천 만을 섞어 쓴 걸 보면 시기적으로도 일제 시대의 가사는 아니고 해방 후에 불리던 어떤 변형된 버전을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일제 시대에는 민족신문이었던 동아일보는 이 가사에 곡을 붙이자 많은 조선 민족이 불러서 국가 없는 민족의 노래라고 부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주장한다. 처음 보는 곡이고 생전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학술논문을 보건대 적어도 90년대까지 원숭이 똥구멍 노래에 이어 조선의 노래 가사를 이어 불렀으니 허튼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원숭이 똥구멍 노래가 1931년부터 불렸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신문, 논문, 역사데이터베이스 어디를 뒤져봐도 이 노래의 기원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는 없었다. 언젠가부터 이 노래는 존재했고, 높으면 백두산 이후 조선[대한]의 노래를 이어서 불렀다는 기록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조선의 노래가 백두산으로 시작하니 기왕에 유명한 노래였던 조선의 노래 앞에 아마도 나중에 만들어졌을 원숭이 똥구멍 노래를 갖다 붙여서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오늘 내가 얻을 수 있는 자료들을 통해 추측하자면 1945년까지의 일제 식민 지배 동안 민족의 노래로서 조선의 노래, 그리고 아이들 창가로서 말잇기 노래가 공존하다가 언젠가 결합되어 불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원숭이 똥구멍 노래가 이로하니 별사탕의 한국어 개사 버전이라고 한다면 일본을 비하하는 의도도 숨어있을 것 같다. 요즘도 한국에서 일본 사람을 원숭이에 빗대며 놀리는 정서가 남아 있다. 하필 원숭이의 '똥구멍'을 지적했고, '맛있으면 바나나'라고 하여 수많은 맛있는 것 중 바나나를 지목한 것은 원숭이가 좋아하는 대표적 음식이기 때문 아닐까? 일본어 노래에는 '별사탕은 달다'고 되어있었다.


바나나는 길고 빠른 기차, 빠르고 높은 비행기를 거쳐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귀결된다. 망한 일본 제국을 놀리며 민족주의의 상징적 공간인 백두산을 민족의 지리적 상상력 안에서 가장 높은 대상으로 지명하며 자부심을 높이는 형식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문제적인 것은 백두산은 분단 이후 북한과 중국의 소유이니 정치적으로 대한민국의 산은 아니다. 물론 헌법의 규정으로는 우리 땅이라고 하겠으나 실질적으로는 아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도대체 원숭이 똥구멍 노래는 언제 만들어졌고 왜 누구나 알고 부르는 노래가 되었는지 오리무중이다. 시기를 꿰어 맞추려고 해도 어딘가 어긋나는 지점들이 자꾸 생긴다. 어르신들에게 이 노래를 언제부터 알았는지 여쭤봐야할까보다.

  1. 그러나 홍양자의 책을 읽고 정리한 어떤 웹페이지를 보면 원숭이 똥구멍 노래는 일본 노래의 한국 개사판이라고 한다. http://no-smok.net/nsmk/%EC%9A%B0%EB%A6%AC%EB%86%80%EC%9D%B4%EC%99%80%EB%85%B8%EB%9E%98%EB%A5%BC%EC%B0%BE%EC%95%84%EC%84%9C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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