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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 문학 읽기

김원일 - 전갈

by wannabe풍류객 2010.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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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갈 - 10점
김원일 지음/실천문학사

10년도 더 전 문학학회에서 김원일의 소설(아마 노을이었을 꺼다)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회 세미나들처럼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김원일이라는 작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 작은 기억의 편린 때문에 작년 언젠가 김원일의 비교적 최근작인 전갈을 인터넷 서점에서 충동 구매했다. 책은 한동안 방 어딘가에 고이 모셔졌고, 최근 한가해진 나는 하필 그 책을 집어들었다. 

이야기는 현재의 서울, 밀양은 물론 과거의 시공간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강치무, 강천동, 강재필로 이어지는 삼대의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세 남자는 키와 덩치가 아주 좋았지만, 그 우람한 신체적 조건은 오히려 그들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건강한 신체는 독립 투사의 길로 이끌기도 했으나 결국 731부대 보초병, 짐꾼, 조폭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실어증, 정신병, 산송장.

한국의 근대화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우리가 편안히 뒤돌아보며 특정의 고정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무장독립투쟁을 하던 사람이 극한의 경험 후 일본군이 되기도 하고, 친일파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의 친일 행적은 그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지나치게 과장되어 강조되기도 한다. 착한 가장, 대한민국 산업화의 일꾼은 공장 기계에 손을 잃어버린 이후 좌절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으로 쉽게 변했다. 이러한 과거의 아픔을 물려받은 현대의 청장년층이 미치거나 손쉬운 돈벌이에 홀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관록이 있는 베테랑 작가가 아니면 쓰기 힘든 종류의 소설이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강 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주인공은 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마약, 폭력, 정신병으로 얼룩진 강재필이 할아버지의 행적을 찾겠다고 만주 지역을 돌아다니고, 밀양에서 책을 쓰는 과정은 비현실적이다. 작가가 질병에 시달리는 현재 세대가 정신을 좀 차리고 과거를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을 했던 것이라면 납득할 수 있겠다. 

'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를 전면적으로 부각시킨 점도 요즘 소설에서 보기 힘든 부분이다. 어릴 적에 '마루타'가 일종의 엽기적이고 혐오스러운 영화여서 보기 싫어했던 기억이 있는데 최근엔 별로 언급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예전 기억엔 조선 사람만 피해를 당한 줄 알았는데 중국인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죄의식도 없이 인체를 실험하고, 폐기한 후 종전 이후 일본 의학 발달에 공헌했다니 치가 떨릴 일이고 잊지 말아야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근래 출간된 소설에서 읽게 되니 생경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재필의 애인인 안나가 너무 유식한 대사를 많이 날리는 것도 소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비현실적 대사 같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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