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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부인이란, 결혼이란

by wannabe풍류객 2010.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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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형제가 모은 이야기는 아주 많다. 전에 읽어본 것도 있지만 그림이 가득한 동화의 이야기와 원작은 적지 않은 차이가 있었고, 처음 보는 이야기도 많다. 몇 개를 무작위로 읽어봤는데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개구리 왕자. 이 이야기는 꽤 유명한데 가만 생각하면 어린 소녀가 갑자기 결혼하게 될 때의 꺼림찍함에 대한 은유같다. 궁중의 안락한 생활만 하고, 공이나 갖고 놀면 되던 공주가 어느 날 결혼을 해서 생판 모르는 남자와 살을 맞대야 한다면 그 느낌은 개구리를 만질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식의. 결혼 제도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종의 유지를 위한 생식은 불가피하니 결혼 생활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점을 발견해야만 할 것이다. 남편이 어떤 인간이건 간에 잠시라도 왕자로 보일 날이 있다면 결혼할 맛이 나겠지.

영리한 한스. 처음 본 것 같은데 노래 가사나 시와 비슷하고, 거의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며 몇 개 단어만 바뀐다. 한스가 어머니께 인사를 하고 외출을 하는데, 항상 가는 곳은 그레텔집. 그레텔이 나한테 뭐 줄 꺼 있냐고 하면 한스는 없다고 하고, 그레텔에게서 매일 이것저것 받아온다. 그러나 제목과 달리 한스는 완전히 바보라서 그레텔의 선물을 어떻게 가지고 와야하는지 전혀 모른다. 바늘을 건초더미에 넣는다던지(needle in a haystack은 여기서 나온 속담 같다), 베이컨을 밧줄로 묶어 땅에 질질 끌고 온다던지.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염소를 끌고 올 때의 방법대로 그레텔을 묶어서 데려온다. 그러나 종국에 더욱 엽기적 방법으로 그레텔을 대우해서 결국 이야기는 한스가 신부감을 놓쳐버렸다는 결론이다. 아마 둘은 연인이었을텐데 남자가 항상 여자에게 받기만 하는 설정, 여자를 자기 집에 끌고 오는 설정, 여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설정, 어머지는 그래도 뭔가를 안다는 설정. 실제로는 어리석으면서 '영리한' 척 하는 남자들을 전체적으로 욕하는 부인들의 심정이 투영된 이야기같다. 

어부와 부인. 허름한 오두막에 사는 어부와 부인. 어부는 고기만 잡고 그 생활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데, 부인은 항상 불만이 가득하다. 우연히 어부는 가자미를 잡는데 실은 가자미가 왕자였고 어부의 소원을 들어준다. 사실 가자미에게 소원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것은 항상 부인이다. 어부는 마땅치 않으면서 부인말을 거스르기는 싫어 어쩔 수 없이 가자미에게 부탁을 하는데 소원은각 이뤄진다. 오두막은 벗어나자던 욕망이 왕, 황제, 교황을 거쳐 종국엔 신이 되겠다는 것까지 미친다. 그러나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었고 마지막엔 원래의 오두막으로 돌아가버린다.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거의 여자들이 하는 것을 받아적은 것이라는데 이 이야기는 여자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어 특이하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의 헛된 욕망을 적절히 제어하지 못한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왕자와 공주. 희한한 이야기인데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혼하기로 한 한 왕자와 근처 나라의 막내 공주의 결혼이 위험에 처했다가 회복되는 이야기다. 막내 공주는 땅 속의 노움(gnome)을 불러내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고, 공주의 어머니 왕비도 특이한 예지력과 마법 능력이 있다. 왕자는 공주의 아버지 왕이 부여한 불가능한 임무에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는데 공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여차저차 둘은 결혼하기로 했는데 왕자는 자신의 왕국에 가서 순식간에 그 약속을 잊어버린다. 조강지처를 잊고 다른 여자와 아무렇지 않게 결혼하려는 남자에 대한 비판일텐데, 여자가 엄청난 능력을 가졌음에도 그렇게 무능한 남자에게라도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남녀불평등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읽어봐야할 이야기는 많이 있고 앞으로 어떤 충격이 기다리고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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