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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The road

by wannabe풍류객 2010.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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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모텐슨이 돌아왔다. 그러나 왕의 귀환은 아니다. 가장 처절한 한 명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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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컨츠리 포 올드 맨'의 원작자인 코맥 맥카시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책을 얼마 전에 샀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 눈에 보여 응모한 시사회에 덜컥 당첨되어 오늘 영화를 보러 가게 되자 책더미 속에서 책 'The road'를 끄집어내 조금 읽어보았다. 이름도 없는 한 명의 아버지와 한 명의 아들의 사투. 회색 눈이 내리는 황량한 풍경. 영화에서 오락적 재미를 건지려는 희망은 일찌감치 접는 게 나을 것 같았다. 

The Road (Mass Market Paperback) - 8점
코맥 매카시 지음/Vintage

시사회가 끝난 후 영화를 보고 나가는 사람들의 말 속에서도 영화가 주는 당혹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말도 많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아무 희망이 없는 상황. 사람들간의 믿음은 전혀 기대할 수 없고, 오직 가족이나 계약을 맺은 강도 패거리 속에서 위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언제나 일차적으로 인간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자연에서 더 이상 기대할 수도 없었다. 죽는 것 이외 달리 방법이 없다. 누구나 권총에 자살을 도울 수 있는 총알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과연 신이 있냐고 물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희망으로 끝난다. 과연 그 희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전히 인간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먹을 것은 턱없이 모자란다. 그래도 믿고 따뜻한 남쪽으로 가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건 어찌 보면 너무 잔인하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 속의 그런 극한 상황이 아니라도 인간들은 모두 근거없는 희망을 믿고 살아 간다. 종교에 의지하건, 자만에 가득찬 합리적 가정에 의존하건.

극한의 환경이 닥친 원인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지만 그 불확실함은 오히려 일상 속의 안일함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착한 일인가, 말그대로 식량이 인육밖에 없다면 안 먹고 배길 수 있는가. 우리는 인생살이라는 길에서 언제 어떠한 극단적 상황에 빠져들지 알 수 없다. 그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눈먼 자들의 도시'와 유사한 이 인간 실험 영화는 절대적 윤리를 제공한다기 보다 상황에 따라 최선의 도덕을 모색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떤 상태로 보건 가히 유쾌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소소한 일상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를 되새겨볼 기회를 줄 것이다. 이름 없는 아버지 man과 그 아들 boy는 누구라도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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