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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⑧ : 로이 킨 자서전의 파문

by wannabe풍류객 2012.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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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4 - 로이 킨 복수극 해부 ⑦ : 홀란드의 반격과 화해 그리고 반복되는 수술과 재활



이번에는 로이 킨의 문제적 자서전, 특히 홀란드와의 사건에 대한 부분과 그 파장에 대해 다루겠다. 로이 킨의 자서전은 2002년 8월 11일 일요일 신문들을 통해 일부가 먼저 공개되었다. 축구 선수들이 자신들의 자서전이 출간되기 전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조금씩 신문사에 제공해서 관심을 끄는 건 요즘에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킨처럼 자극적인 내용을 공개한 걸 본적은 없다. 킨 자서전의 파문 때문에 이후로 그런 일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

신문 데이터베이스에서 썬데이 타임스와 아이리쉬 이그재미너 두 곳이 다루었고,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두 언론의 기사가 공히 로이 킨이 맨유를 떠나려고 했던 이유를 제목으로 선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홀란드 태클 사건이 중심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사건에 대한 자서전의 기술이 가장 큰 논란거리가 된다.

매우 핵심적인 대목이라 기사의 해당 부분을 번역해야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전에 쓴 글에 포함된 내용이라 생략하기로 한다. 대신 전에 쓸 때 간과했지만 다시 강조해야할 대목이 있다. 로이 킨은 1997년 자신이 리즈 시절의 홀란드에게 태클을 하려다가 자신의 십자인대 부상을 당했던 것이 본인의 술 문제 때문이었다고 인식했다.

자서전에는 이렇게 언급된다. "우리는 토요일에 리즈 원정 경기를 했다. 그리고 나는 전혀 경기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기존의 글들에서 상당히 과장되게 묘사되긴 했으나 킨과 홀란드는 경기 내내 충돌했다. 썬데이 타임스에는 "경기 도중 킨은 리즈의 알피-잉게 홀란드와 여러 차례 다퉜다(tangle)"고 묘사되었고, 아이리쉬 이그재미너에는 "킨과 홀란드는 경기 내내 계속해서 싸웠다(battle)"고 설명된다. 그리고 로이 킨은 경기 종료 5분 전에 자신이 경고를 받으리라는 것을 알면서 홀란드에게 태클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또한 새삼 깨닫게 된 것은 3년 후 로이 킨이 그 악랄한 태클을 맨시티로 이적한 홀란드에게 했을 때가 바로 경기 종료 5분 전이었다는 대목이다. 명확히 표현된 건 아니지만 로이 킨은 자신이 부상당했던 그 순간, 경기 종료 5분 전까지도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획적 보복이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일요일 신문들의 자서전 내용이 공개된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이 로이 킨의 자서전 내용 특히 알피 홀란드와의 일화에 대한 서술 방식을 비판했다. FA는 징계 가능성을, 홀란드는 소송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아직 자서전 자체가 출간되진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대응은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알피 홀란드의 반응을 보자. 홀란드는 조국인 노르웨이 언론 VG, 그리고 데일리 메일에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VG 인터뷰 내용은 매우 냉소적이고, 영국 언론들로부터 선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무릎에 킨 축구화의 스터드가 아직도 박혀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저는 그 태클 이후 고작 몇 경기만 뛰었죠. [킨의 책임에 대해]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있을 거에요. 제가 고소할 거냐고요? 그건 당신들 말이죠. 나름대고 결론을 내려보세요."

짧은 문장들만으론 애매하지만 영국 언론들은 VG 인터뷰에서 홀란드가 고소 가능성을 제가한 것으로 보았다.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홀란드는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진술했다.

"제가 원하는 전부는 다시 축구를 하는 거에요.

"오늘 로이 킨에 대해 엄청나게 전화가 걸려왔지만 저에게 정말 중요한 건 정상 상태를 회복하는 거에요.

"장기간 부상당했던 누구라도 그게 끔찍하다고 말할 거에요.

"이제 뛸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때마다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아요. 아직 최근 스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아픕니다. 최근 이런 스캔을 너무 많이 했어요[주: 홀란드는 로이 킨에게 태클 당한 이후 6번의 스캔, 3번의 수술을 받았다].

"저는 지난 주말에 킨이 뭐라고 말했는지를 소화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시끄러운 말을 할 때는 아닙니다. 그게 제 무릎을 낫게 하는데 도움이 되진 않을 거 아녜요.

"[VG에서 보도된 것처럼 소송할 것인가에 대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 코멘트"였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자서전 출간으로 로이 킨이 홀란드를 다치게 할 의도가 충분했다는 건 명확해졌다. 그러나 홀란드의 십자인대 부상에 킨의 태클이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선 뉴스마다 해석이 엇갈린다. 이미 지적되었듯이 홀란드는 킨에게 태클을 당한 이후에 사건을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했고, 킨의 자서전이 나오기 전까지 무릎 부상에 대한 킨의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로이 킨이 자서전에서 다른 선수를 다치게 하려고 했다고 대담하게 밝히며 FA의 징계의 대상이 되는 것과 홀란드 혹은 맨시티가 로이 킨에게 손해배상을 요청하는 건 질적으로 다른 문제였다.

홀란드의 부상에 로이 킨의 태클이 큰 영향을 끼쳤는가의 여부는 손해배상 소송의 핵심 사안이다.
몇 개 언론(데일리 미러, 이브닝 스탠다드, 8. 13)은 단정적으로 로이 킨의 태클로 알피 홀란드의 무릎에 부상이 생겼다고 썼다. 그러나 태클을 당한 오른쪽 다리가 아닌 왼쪽 무릎이 수술의 대상이었던 점이 치명적인 반박의 증거였고, 사건을 세밀하게 다룬 언론들은 그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위의 데일리 메일에서는 킨의 공격을 당한 다리가 아닌, standing leg으로 표현된 왼쪽 다리에도 태클의 충격이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의심'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또 중요한 언급으로 그 경기 이전까지 홀란드는 자신이 건강하다고 여겼다는 부분이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하면 비록 홀란드가 왼쪽 무릎을 수술받을 예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십자인대 파열과 같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생각해도 십자인대를 다친 선수가 킨에게 태클을 당했던 그 경기에 선발로 나와서 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이전에 쓴 글에서도 보았던 것처럼 어떻게 수술을 받는 단계에서조차 처음엔 '가벼운 수술'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었냐는 점이다. 비록 홀란드는 킨의 태클 이후 한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지만 억지로 뛰다가 교체되었고, 강등을 당한 그 시즌의 중요한 최종 경기들에 나오지 못했다. 정확히 따지면 그 시즌에 홀란드는 맨유 경기 이후 노르웨이 대표팀 경기와 리그 웨스트 햄 경기에 나왔다. 그렇다면 약간의 문제가 있었던 왼쪽 무릎이 킨의 태클의 여파로 악화되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홀란드가 무리하게 경기를 하다가 부상을 악화시킨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가디언의 경우 홀란드가 시즌 종료 후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으나(이 부분에 대해선 더 타임스도 지적했다), 킨의 공격으로 수술이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합병증이 있어 홀란드의 재활이 오래 걸렸다고 한다. 이는 나의 추측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위의 데일리 메일 기사는 로이 킨이 왜 그런 태클을 했는가에 대한 다른 설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자선전 내용 상으로는 예전 사건에 대한 복수였지만, 단순히 킨의 폭발적인 성질 때문이거나 당시 맨유가 바이언 뮌헨에 패해서 챔스에서 탈락한 것에 대한 분풀이 대상으로 홀란드가 지목되었던 게 아니냐는 거다.

이렇게 로이 킨의 자서전은 태클 사건 직후만큼이나 뜨거운 논쟁을 낳게 되었다. 홀란드의 소송 여부와 별도로 최고 수준의 봉급을 받았던 로이 킨의 도덕성 문제가 제기됨은 물론 더 나아가 경기장 안이 아니었다면 심각한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행위가 축구장 안이라는 이유로 경미하게 처리되어도 되느냐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있었다. 이는 최근 프리미어 리그에서 수아레스-에브라, 테리-퍼디난드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 가십거리로 이미 알려진 내용이긴 하나 로이 킨이 아마추어 권투 선수 출신이었던 점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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