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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다윈 이후(Ever since Darwin) by 스티븐 제이 굴드

by wannabe풍류객 2009.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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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알기 쉽게 쓴 에세이 모음인데 분량 때문인지 의외로 오랜 시간 읽었다. 굴드는 리차드 도킨스 책을 통해서 접하기 시작했고, 도킨스의 생각만으로 진화생물학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나는 굴드에 대한 비판적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굴드는 그렇게 쉽게 비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게 분명하다. 엄청난 분량의 에세이 시리즈 저작의 첫번째라는 이 책만 봐도.

70년대에 나온 책이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도 수없는 연구로 과거의 이론, 설명이 빠르게 파기되는 과학계에서 그렇다면 대단한 일이다.(한편 굴드는 과거의 이론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다, 즉 새로운 이론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보적'이지는 않다는 중요한 지적도 한다. 지금 과학계에서 인정받는 이론과 다르다고해서 과거의 이론을 웃어넘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이론들은 나름의 합리적 방식으로 도출된 것이 많았고, 미래에 새로운 증거가 나온다면 맞는 이론으로 바뀔지 모른다) 과학계에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통념이 사회 일반에선 전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다윈을 잘 모르고 있으며, 다윈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다위니즘'을 이용하여 다윈을 비판하기도 한다.

책을 번역한 이는 진화'론'이라는 꼬리표가 학문 분과의 하나로 완전히 자리잡은 '진화 생물학'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 여전히 '창조론'과 경쟁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하는 듯 하다. 비록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러 생물학 책을 봐도 '진화'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는 진보라는 말과 교묘히 의미가 겹치면서 진화는 더 나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관념을 우리가 갖고 있음으로 생기는 폐해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와 연관된 문제이다. '가치'라는 건 인간적인 개념이자 관념인 터라 인간이 없는 생물계는 가치중립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무심하게. 그래서 인간의 눈엔 잔인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진화는 기본적으로 절대 무언가 더 나은, 고등한 생명체로 나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런 식으로 이해되어왔지만.

인간의 기준에서 고등한 생명체로의 진화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바로 인간의 멸종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신이 선택한 일이라고 기꺼이 받아들여야할까. 인간보다 더 고등한 종에 대한 생각은 지금까진 외계생명체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종류 같은데... 여하간 진화, 진보에 대한 믿음은 사실 인간에게 위협이 된다는 생각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인간이 단세포 생물, 원숭이에서 진화했다는 생각 이상으로 두려운 일 아닐까?

책 내용은 거의 없는 리뷰가 되었지만 이제는 고인이 된 굴드씨의 안목과 학식에 박수를 보낸다. 끝난 게임은 아닌 것 같지만 유전자 중심(굴드도 유전자를 기준으로 한 생각을 인정은 하지만)의 도킨스와의 논쟁에서 굴드의 주장을 더 경청해볼 필요성을 느낀다. 유전자가 모든 걸 주도한다는 생각은 도발적이지만 터무니없어보이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회과학에 적용해보려면 유전자가 모인 개체로 다시 돌아오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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