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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안토니오 그람시의 '축구와 스코포네'

by wannabe풍류객 2012.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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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공부해야 할 터인데, 그람시의 글을 찾던 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축구 이야기였다. 국내 출간된 번역본(옥중수고 이전) 중에도 포함되어 있으나, 영어 번역본을 보고 나름대로 번역해보았다. 

축구와 스코포네

이탈리아인들은 그다지 열렬한 스포츠인들은 아니다. 그들은 놀이로서 스코포네를 선호한다. 야외에 있는 것보다 까페에 갖혀있기를 좋아한다. 움직이는 것보다 그들은 탁자 주변에서 수그리고 있는 것을 선호한다.

축구 경기를 관찰하자. 이것은 개인주의적 사회의 모형이다. 이것은 이니셔티브를 요구하지만, 이니셔티브는 법의 작동 범위 안에 머무른다. 개인들은 위계적으로 분화되는데, 그들의 과거 경력보다는 특정한 역량에 근거하여 분화된다. 움직임, 경쟁, 갈등이 있으나 그들은 불문 규칙에 의해 규율된다. 공정한 경기라는 규칙은 심판의 존재로 인해 계속 환기된다. 야외 경기장, 자유롭게 순환하는 공기, 건강한 폐, 강한 근육은 언제나 행동을 자극한다. 

  

스코포네 게임. 가까움, 연기, 인조 조명. 외침, 테이블 그리고 종종 상대방 ... 혹은 동료의 얼굴을 때리는 주먹. 뒤틀린 두뇌 활동(!) 상호 불신. 비밀 외교. 표시된 카드. 다리와 발가락이 포함된 은밀한 전략. 규칙? 존경받아야할 규칙이 어디에 있나? 장소에 따라 다르다. 다양한 다른 전통들이 있다. 이것은 꾸준한 항의와 작은 싸움의 원천이다. 

스코포네 게임은 종종 바닥에 있는 시체나 부서진 두개골로 끝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도 축구 경기가 그런 식으로 끝났다는 것을 읽은 적이 없을 것이다.

이런 낮은 수준의 인간 활동들에서조차 우리는 다른 국가들의 경제-정치적 구조의 반영을 볼 수 있다. 스포츠는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개인주의가 그 삶의 모든 방식을 변모시킨 사회들에서 인기있는 활동이다. 그래서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자유는 정신의 자유와 상대에 대한 용인을 수반한다.

스코포네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뒤쳐진 국가들의 스포츠의 특징적 형태다. 이런 국가들의 시민적 삶의 특정적 형태는 감시 스파이, 평복 경찰, 익명 편지, 무능 예찬 그리고 행상이다(또 이에 상응하는 보상과 정치가들에 대한 편의). 

스포츠를 하는 국가들은 '공정한 경기'의 개념을 정치에서도 운영한다.

스코포네는 노동자들이 자유 토론 중 감히 그들에게 이론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종류의 신사를 생산한다. 

1918년 8월 27일 

위에 포함된 사진은 위키피디아의 스코포네 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사진 속에는 월드컵 트로피가 있고 인물 중 한 명은 이탈리아 축구의 전설 중 하나인 디노 조프다. 조프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있었던 198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팀이 서독을 꺾고 우승할 때 주장이었다. 사진은 이탈리아 선수단이 대회가 끝난 후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돌아가던 중에 찍힌 것으로 보인다. 

찾아보니 조프 이외에도 사진 속 인물들은 상당한 거물이다. 조프와 한 편이었던 사람은 당시 대통령인 산드로 페르티니였고, 나머지 두 사람 중 한 명은 대표팀 감독인 베아르조트이고 나머지 한 명은 82년 대회 당시 노장이었고 결승전 막판에 교체로 투입된 카우지오였다. 이들 간의 스코포네 게임에서 주먹다짐이 오가거나 누군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상상하긴 어렵긴 하다.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사진의 광경이 그람시의 축구와 스코포네에 대한 대조적인 설명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구도 이탈리아인들이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이탈리아는 1934년 2회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갈수록 세계화되어가던 축구판에서 초반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그람시의 글에서 불과 16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1982년 월드컵 우승은 이탈리아의 세번째 위업이었다. 그람시가 보기엔 숨막히는 공간에서 오밀조밀 모여 주먹다짐을 하던 이탈리아인들이 어떻게 개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 분업의 축구계에서 성공을 한 것일까? 이제 스코포네의 광경은 1910년대의 거친 모습이 아니라 문명화되었을까? 더 알아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카드 게임이 그렇게 폭력적이었다는 건 의외의 일이지만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종종 돈이 걸린 도박이 되기 때문에 어떤 폭력적 광경이 예상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물론 그래서 많은 도박판에는 게임 참여자들의 폭력을 억누를 어깨들이 옆에서 지켜서고 있지만. 결국 현대 사회에서 카드 게임과 축구 경기는 그다지 다른 모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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