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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주장 박지성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

by wannabe풍류객 2012.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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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사건들이 모두에게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다. 박지성이 새벽에 아약스와의 유로파 리그 맨유 홈 경기에서 주장으로 풀타임을 소화했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으나 맨유 팬이 아닌 나로서는 그리 흥분될 일은 아니었다. 맨유의 패배나 퍼거슨의 해명이 중심적인 내용이었던 잉글랜드 현지의 뉴스들을 먼저 확인한 이후 국내 포털에 소개된 뉴스나 대형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을 보며 현상이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한국인'으로서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수 년 전에 맨유에 간 것만도 신기한 일이었는데, 이제 그 팀, 세계 최고의 축구 팀 중에 하나인 맨유의 주장이 되었다니! http://news.daylife.com/photo/07Rh3OcaRTbtN?__site=daylife 그러나 이 사건은 박지성의 팬들에게 대단한 일이겠으나 잉글랜드 현지의 뉴스에서는 그다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우선 생각할 점은 박지성이 계속 맨유의 주장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다. 맨유의 원래 주장은 비디치, 부주장은 에브라다. 두 선수 모두 지난 아약스 경기에 나오지 못 했기 때문에 누군가 다른 선수가 주장이 되어야했고, 지난 번 맨유의 아약스 원정에서는 퍼디난드가 맡았다. 어제 UEFA에서 제공한 선수 명단에서 필 존스를 맨유의 주장으로 소개할 정도로 박지성이 주장이 되었던 것은 갑작스러운 결정의 결과로 보인다. 뒤집어 보면 다음 번에 유사한 상황이 올 경우 필 존스가 주장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박지성이 앞으로도 주장으로 경기에 나올 가능성은 많지 않다. 

국내 언론의 박지성 찬양은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클릭수를 늘리기 위한 선정적 제목을 차치하고 국내 기사 내용을 읽어봐도 상황의 본질은 금방 드러난다. 다음 메인에 소개된 골닷컴의 기사의 내용처럼 박지성이 주장이 된 것은 긱스, 스콜스 다음으로 맨유에서 오래 뛴 선수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박지성 자신이 팀내 입지가 늘어나서가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 주장을 시켜준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한 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식으로건 맨유에서 그동안 보여준 그의 활약을 같은 한국인으로서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박지성이 아약스 경기에서 주장이었던 것이 맨유에서 그의 위치가 특별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유념해야 할 것이다.

Ji-Sung Park
Ji-Sung Park by Magnus D 저작자 표시

자 그러면 현지 언론의 반응들을 발췌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과연 박지성이 주장으로 나온 것을 주제로 한 기사가 있기는 한 것인가? 찾아보니 하나 있다. 뉴스 에이전시 AFP에서 짤막하게 하나 나왔다. 긱스가 출전하면 맨유에서 900번째 경기가 된다는 내용을 포함해 세 줄 짜리다.
http://sports.yahoo.com/soccer/news?slug=afp-fbl_eur_c3_eng_ned_kor_manutd_ajax_20120223 

어떤 곳이 의미있을까 생각하다 우선 맨유 오피셜 사이트의 반응을 봤다. 경기 후 선수들의 활약을 평가한 뉴스를 보면 박지성이 '대역(stand in)' 주장이라고 표현되어 있다. 이번 일이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임을 알 수 있다.
http://www.manutd.com/en/News-And-Features/Football-News/2012/Feb/Player-ratings-manchester-united-v-ajax-europa-league.aspx?pageNo=2  

다음으로 유로파 리그를 주최하는 UEFA의 경기 리포트를 보자. 박지성은 한 번 언급되는데 맨유의 첫 골에 기여한 그 대목을 설명하면서 그가 주장 완장을 찬 내용이 포함된다.
http://www.uefa.com/uefaeuropaleague/season=2012/matches/round=2000273/match=2007437/postmatch/report/

BBC의 유로파 리그 경기 중계글에서는 경기 전 UEFA의 홈페이지 때문에 필 존스가 주장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박지성이라고 정정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박지성이 센터 서클에서 악수하는 장면을 '주장이 하는 것처럼' 하고 있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박지성은 골에 기여한 대목에서 언급된 이후 중계글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7144490 

경기 후에 나온 BBC의 리포트에는 박지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아래 또 다른 생중계 코멘터리에는 박지성이 아약스 선수에게 태클 당하는 장면에서 한 번 나온다. 
http://www.bbc.co.uk/sport/0/football/17071413 

가디언의 경기 리포트에도 박지성은 한 번 언급되는데 역시 골 장면이다. '이 밤을 위한 주장' 정도로 묘사된다.
http://www.guardian.co.uk/football/2012/feb/23/manchester-united-ajax-europa-league 

텔레그라프는 박지성을 몇 번씩 언급하고 있다. 우선 경기 중계글은 동양계 이름의 조내선 류가 맡았다. 그는 전에 박주영을 폄하하여 한국인들의 원성을 산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는 주장 박지성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경기장에 나서기전 터널에 있는 박지성을 보며 그다지 주장의 기운을 내뿜는 것 같지는 않다,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페넌트를 손에 신중하게 쥐고 있다는 등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하프 타임에는 맨유보다 아약스가 더 나아 보인다는 설명을 하면서 박지성이 클레벌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같고, 클레벌리도 박지성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competitions/europa-league/9101673/Manchester-United-v-Ajax-live.html 

텔레그라프의 경기 리포트에는 후반전 초반 상황을 묘사하며 박지성이 미드필드에서 홀로 맨유의 어린 수비진(퍼거슨도 실수라고 인정했던)을 보호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을 묘사했다. 
http://www.telegraph.co.uk/sport/football/competitions/europa-league/9101694/Manchester-United-1-Ajax-2-agg-3-2-match-report.html 

인디펜던트의 리포트도 같은 맥락의 설명을 내놓았다. 박지성은 홀로 아약스의 파도를 막아내야했고, 그래서 퍼거슨이 스콜스를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http://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european/ferguson-blame-me-for-xrated-display-7440132.html 

ESPN 싸커넷의 리포트는 박지성에게 가장 가혹한 평을 내리고 있다. 비록 박지성이 맨유의 골에 기여했지만 그게 경기 내내 박지성이 상대편의 공을 뺏은 유일한 경우인 것 같다는 것이다. 박지성을 홀딩으로 세운 것은 감독의 실수고, 보아스가 챔스에서 유사한 종류의 실수를 해서 고생했던 점을 환기시킨다. 박지성이 홀딩을 보며 아약스가 미드필드를 장악했고, 맨유가 클레벌리를 빼고 스콜스와 존스로 중앙을 재편한 이후에야 대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리포트 말미에 그동안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드로 나와서는 거의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평가도 내리고 있다.
http://soccernet.espn.go.com/columns/story/_/id/1026234/richard-jolly:-man-united%27s-tom-cleverley-fails-to-shine-v-ajax?cc=4716 

이 외에도 다른 언론들에서 박지성은 조금씩 언급된다. 그러나 골 장면 이외에 그가 주장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었다거나 잘했다는 칭찬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거의 언급이 되지 않는다. 비록 맨유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고 해도 홈 경기에서 패하며 아약스를 OT에서 처음 승리를 따낸 네덜란드 클럽팀으로 만든 것이 좋은 일은 아닌 게 당연하다.

이번 경기에서 박지성이 특별히 못 했다고 말하는 건 심한 것 같고 여러 곳에서 지적되듯이  그가 뛴 포지션이 문제였다. 박지성이 아무리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다고 해도 홀딩 미드필더로서는 유능하지 않을 수 있다. 비록 박지성이 교체되지는 않았지만 초반에 부여된 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측면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런 경기를 두고 그가 단지 맨유의 주장 완장을 차고 끝까지 뛰었다는 점만으로 찬양해야할까? 

박지성이 주장이라 경기가 끝나고도 잠을 이룰 수 없다거나, 혹은 사전에 접한 잘못된 정보 때문에 그냥 자버려서 이제와 땅을 치며 후회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많이 있다. 박지성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 팬들조차도 그렇게 전망을 하며 경기 시청을 포기했던 차에 그가 갑자기 주장이 되어 풀타임을 뛰었다는 건 그만큼 돌발 상황이라는 거다. 앞으로도 맨유 주장 박지성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볼 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맨유에서 그보다 주장 순위에서 높은 주전 선수 여럿이 동시에 장기 부상 혹은 장기 출장 정지를 받는 상황을 의미할 수 있다. 맨유 팀 전력에 손상이 될 더 심한 일이 벌어져도 주장 박지성이 좋다는 사람은 맨유 팬은 아닐지 모른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손꼽히는 고참이 되어 그것 때문에 맨유의 주장감으로 고려되고 실제로 팀을 이끈 것은 박지성의 성실함과 능력의 객관적 증거이고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박지성이 비디치, 에브라를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다. 이번 일을 즐거운 해프닝으로 받아들이고 박지성이 맨유에서의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좋은 모습을 더 보여주길 기대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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