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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스보로3

참사의 날: 리버풀 또 다시 패배 힐스보로 독립 패널이 힐스보로 참사의 진상을 명확히 공개한 이후 안필드에서 처음 열리는 경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여전히 수아레스와 에브라의 인종차별 발언, 악수 거부 사건의 앙금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잉글랜드의 전국적인 힐스보로 희생자 추모 분위기는 잊고 싶은 선수들간의 문제를 해결할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그리고 안톤과 존의 또 다른 인종차별 발언 사례와 달리 두 선수는 드디어 악수를 나눴다. 그러나 무고한 죽음을 당한 96명을 위해 맨유의 보비 찰튼까지 꽃을 들고 등장한 이 날, 보고서 발간 이후 줄기차게 악의적인 챈트(chant. '떼창'이라고 옮겨지기도 하지만 나는 적당한 번역이라고 보지 않는다)를 없애자고 캠페인이 벌어지고 리버풀 레전드 중 하나인 올드리지가 고인들을 모.. 2012. 9. 24.
조작된 감동: 힐스보로 참사 이후 아스날의 배려? 1989년 4월 15일, 영국 축구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 힐스보로 참사가 발생했다. 1988-89 시즌 FA컵 준결승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의 경기는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인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시작된지 6분 만에 리버풀 팬들의 압사로 중단되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96명이 사망한 이 비극적인 사건은 경찰의 은폐 의혹과 타블로이드 신문 더 썬의 거짓 보도로 얼룩졌고, 힐스보로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은 정의를 찾자는 운동을 지금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되며 조만간 희생자 가족들이 제기한 의혹들이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에는 이 힐스보로 참사에 관하여 국내에서 돌아다니는 한 일화가 거짓에 근거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국내의 리버풀 팬이나 아스날 팬은.. 2011. 4. 17.
베니테스의 기부, 달글리쉬 라파가 리버풀을 떠난 지 어언 일주일. 인터 밀란과 모종의 조율이 있은 후 리버풀을 떠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타이밍이었고, 실제 그는 인터 밀란 감독으로 공식 임명되었다. 리버풀 구단주 이하 그의 위에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떠나는 건 순리였고, 너무 빨리 다른 곳에서 살림을 차린 걸 나무랄 수도 없다. 모든 가능한 악담에도 불구하고 라파엘 베니테스가 리버풀 웨이를 지키려고 노력을 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진저리나는 도시라며 리버풀을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오늘 아침 라파의 따뜻한 선행이 공개되었다. 바로 리버풀 축구 클럽과 지역 사회를 헤어나올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힐스보로 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단체에 96,000 파운드의 거액을 기부한 것이다. 현재 환.. 2010.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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