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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리버풀, 유로파 리그 탈락. 남은 것은?

by wannabe풍류객 201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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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승리자다. 리버풀이 또 유로파 리그에서 시원찮은 경기를 보였기 때문이다. 팬사이트에서는 새벽 어중간한 시간에 시작되는 리버풀의 경기를 보지 않았는데 일어나보니 팀이 허술한 경기 끝에 이기지 못할 경우 자신을 승리자로 지칭하는 경우들이 있다. 응원하는 팀이 형편없는 경기를 했는데 자신은 보지 않아 승리자라니 슬픈 일이고 대단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새벽 리버풀의 무승부는 단순히 몇몇 팬들을 승리자로 만든 것뿐 아니라 여러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즉각적인 결과는 유로파 리그 8강 진출 실패다. 대신 종합 스코어 1:0으로 브라가가 8강에 올랐고, 이는 브라가 역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브라가 감독은 자신의 선수들이 안필드에서 자축하던 장면을 나쁘게 보지 말아달라며 몇 번씩 이야기했는데 그 정도로 브라가에게는 유로파 리그 8강의 의미가 컸다. 반면 리버풀은 우울함이 늘어날 뿐이다.

오늘 경기는 리버풀 구단주인 존 헨리가 미국에서 건너와 참관하고 있었지만, 풀 데뷔를 한 캐롤이 투입되었어도 리버풀은 단 한 골도 넣지 못했고 브라가 골키퍼를 괴롭힌 일도 두 번 정도라고 한다. 매번 죄송하다고, 다음엔 잘 하겠다는 인터뷰를 지겹도록 하는 조 콜도, 어제 제라드가 없으니 내가 한 번 뭔가 보여주겠다던 스피어링도, 전성기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만 남기는 경기력을 꾸준히 보이는 막시도 리버풀의 우울을 가중시켰다.

리버풀이 다음 시즌 유럽 대회(물론 챔피언스 리그가 아니라 유로파 리그가 목표다)에 진출하려면 리그 5위로 시즌을 마치는 방법밖에 없다. 칼링컵, FA컵의 진행 결과 리그 6위 이하에 그칠 것 같은 클럽들이 다음 시즌 유로파 리그로 진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5위인 토트넘은 한 경기를 덜 치렀고 리버풀과의 승점 격차가 6점이나 된다. 남은 9경기에서 리버풀이 전승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지 않는다면 형세를 뒤집기는 힘들다.

이번 경기에는 수년간 유럽 대회에서 리버풀의 컴백을 이끌던 제라드도 없었고, 지난 번 리그 경기에서 맨유 수비를 농락하던 수아레스도 없었다. 이들이 빠진 리버풀의 공격은 얼마나 허약한가. 여러 기사는 리버풀이 과거의 명성에 걸맞는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선수 보강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존 헨리는 안필드 관중석에서 리버풀을 인수할 것을 후회하고 있진 않았을까. 

존 헨리가 영국으로 먼 걸음을 했으므로 단순히 리버풀 경기만 보고 미국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공석인 단장 문제가 되었건, 케니와의 재협상이 되었건 짧게라도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준결승까지는 갔던 지난 시즌보다도 못하고 다음 시즌 참여 가능 여부마저 불투명한 유로파 리그 성적에 아무리 잘 해야 5위 정도로 그칠 이번 시즌의 결말이 헨리에게 탐탁치 않을 것이다. 이는 케니의 정식 감독 계약 여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임시 감독 부임 이후 몇 번의 멋진 경기에도 불구하고 리그 하위권에 패하는 현상은 극복하지 못했고 객관적으로 이번 시즌 최후의 성적이 라파의 경질을 부른 지난 시즌 성적보다 낫다고 결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다음 시즌 감독이 케니냐 아니냐의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본다.

이례적으로 리버풀 오피셜에 현지 시각 오늘자(18일) 기사가 벌써 올라왔는데 다름 아닌 레이나의 인터뷰였다. 레이나는 우리는 리버풀이므로 남은 시즌을 최선을 다 해 가능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리버풀을 떠날 가능성을 수시로 암시한 레이나의 인터뷰는 상식적인 말이면서도 "우리 리버풀"이 이름에 걸맞는 성적을 낼 수 없는 팀이라면 가망이 없다는 속뜻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상도 아닌데 규정상 경기에 나오지 못해서 팬들의 아쉬움을 더하게 만든 루이스 수아레스는 누가 오고 가건 상관하지 않겠다고 한다. 수아레스는 사실 토레스와의 호흡을 기대하며 리버풀로 왔다고 솔직히 밝혔지만,[각주:1] 선수들이 오고 가는 건 일상다반사라며 토레스건 레이나건 갈테면 가고 누군가 또 좋은 선수가 들어오겠지라는 반응이다. 현재로서는 캐롤과의 파트너십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

선수건, 감독이건 왔다가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의 리버풀은 누가 들어오고 나갈지 매우 불확실한 상태다. 구단주 헨리는 거듭 배반당하는 작은 기대에 희망을 걸며 온건한 변화를 줄 것인가 아니면 큰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는 전면적 개혁의 과감한 결단을 내릴 것인가. 남은 시즌 큰 희망이 없는 이상 선택은 빠를 수록 좋다. 
  1. 당연히 이 대목은 동일한 내용을 담은 오피셜 뉴스에서 제외되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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