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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 축구

리버풀의 두 노인: 달글리쉬와 호지슨

by wannabe풍류객 2010.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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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인데 59세의 달글리쉬를 노인이라 불러도 되는지 망설여지지만 생각보다 그가 늙은 것은 분명하다. 리버풀의 마지막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케니 달글리쉬는 이제 60을 바라보고 있고(한국 나이 계산법으로는 60 이상이다), 그가 떠난 후 20년의 세월동안 리버풀은 한 번도 리그 타이틀을 되찾을 수 없었다.

The European Cup trophy is raised in triumph by three of the scotsmen that helped Liverpool to European glory,  (from left to right) Graeme Souness, Kenny Dalglish, and Alan Hansen. Liverpool won the trophy with a 1-0 victory over Real Madrid in the European Cup final in Paris.   (Photo by Keystone/Getty Images)

리버풀로서는 회한의 세월이었지만, 달글리쉬도 그동안 쌓인 것이 있는지 새롭게 자서전을 냈다. My Liverpool home: then and now라는 제목이다. 이미 예전에 블랙번 감독을 하던 시절 자신의 첫 자서전을 낸 적이 있다고 한다. 자서전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추억속에서만 리버풀의 좋은 시절을 불러올 수 있는 케니의 모습은 노인의 습관에 다름 아니다.

케니 달글리쉬가 리버풀 최고의 영웅임은 분명하지만 블랙번 이후로 그가 리버풀과 직접 관련을 맺은 것은 작년부터 리버풀 아카데미의 대사가 된 것이 유일하다. 그러므로 그가 14년만에 새롭게 내놓은, 리버풀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새로울지 의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가디언에서는 약간 비꼬는 투로 변한 것이 거의 없는 케니의 자서전을 평했다. 

헤이젤과 힐스보로 모두를 감내해야 했던 케니 달글리쉬의 고충은 모두가 이해한다. 그런데 케니는 감독을 관둔 이후 몇 달의 충전 기간을 가지면서 리버풀이 만약 다시 돌아오라고 했다면 망설임없이 돌아왔을 것이라는 말을 몇 차례 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수네스를 감독으로 선택했고, 이후 에반스, 울리에, 라파 베니테스, 호지슨을 차례로 임명했다. 

리버풀에서 감독이 물러날 때마다 케니 달글리쉬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특히 올 여름 로이 호지슨이 임명되기 전 케니 달글리쉬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해 자신이 리버풀 감독이 되고 싶다 아니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자서전에서 밝혔듯이 리버풀 이사회에서는 간단히 그 제안을 거부했다. 

재미있게도 케니는 라파가 리버풀에서 해임된 것은 갈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라파는 갈 때가 되어 떠났지만 자신은 돌아올 때가 되었기 때문에 감독 자리에 지원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돌아오려면 훨씬 이전에 돌아왔어야 했다. 그리고 한 번 떠난 이후 돌아올 기회는 생각만큼 자주 생기지 않는다. 리버풀이 감독을 해임할 때 케니 자신이 소속팀이 없어야 임명 과정이 수월하다. 하지만 케니는 리버풀을 떠나고 상당 기간 다른 팀들에서 감독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셀틱에서 마지막으로 클럽 팀 감독의 시기를 보낸 이후 그는 기나긴 공백기를 보냈다. 아마 여름에 케니 자신의 열망과 주변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리버풀 이사회에서 그를 임명하지 않은 것은 그가 현직에서 너무 오래 떠나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령의 케니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Liverpool/Chelsea Premiership 02.05.10 Photo: Tim Parker Fotosports International Kenny Dalglish ex-player Liverpool 2009/10 Photo via Newscom

세월의 무상함은 어제 리버풀 공식 웹사이트의 짤막한 기사에서도 드러나는데, 케니는 지난 1년 간 리버풀 아카데미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다. 16~18세의 아카데미 소속의 어린 소년들이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경기할 때 케니가 몇 번 같이 뛰었는데, 마음은 소년시절로 돌아갔지만 몸의 기능이 따라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가 아무리 리버풀 서포터들의 영원한 '킹'이라도 자연의 섭리상 환갑이 멀지 않은 나이의 신체 기능이 경기장의 '킹'의 그것일 수 없다. 케니는 축구계를 풍미한 리버풀의 상징이지만 더 이상 선수나 감독으로서 그라운드의 케니는 볼 수 없다. 그는 앞으로도 그저 상징으로만 남을 것이다.

케니의 친구이자 네 살 연상인 로이 호지슨은 고령에 리버풀 감독이 되었다. 인터 밀란을 제외하면 유럽 탑 클럽을 맡아본 적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이들이 그의 임명에 의문을 표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결과는 좋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형편없다고 할 수도 없다. 

Roy Hodgson Manager Liverpool 2010/11 Birmingham City V Liverpool (0-0) 12/09/10 The Premier League Photo Robin Parker Fotosports International Photo via Newscom

호지슨은 리그 열 경기가 지나기 전에는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지 말라, 유로파 리그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주전을 대거 빼고 후보 선수를 기용해서 선수들을 평가해보겠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월드컵 때문에 감독 임명이 늦었고, 월드컵에 참여한 주전 선수들이 8월이 되어야 돌아온 상황에서 호지슨이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다. 

그러나 맨유가 챔피언스 리그에서 주전을 대거 뺐다가 홈에서 레인저스에 비긴 결과 때문에 많은 이들은 호지슨이 오늘 밤 경기에 주전들을 많이 제외시키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다. 그러나 호지슨은 바로 그 퍼거슨을 언급하며 똑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호지슨은 스테아우아 정도의 팀은 비주전 선수들이 경기 경험을 쌓고, 자신은 그들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기는 것 같다. 스테아우아 선수들은 기분이 상할 것 같은데, 리버풀의 비주전 선수들이 얼마만큼 손발을 잘 맞출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다니엘 아거는 스테아우아가 전형적인 동유럽 팀이라며 경기 결과에 대한 자신감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사실 호지슨의 결정은 주말의 맨유 경기를 염두에 둔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리그 성적인데 숙적 맨유에 패한다면 팀의 사기가 얼마나 더 추락할지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토레스와 약간의 부상을 당한 제라드를 비롯한 몇 명의 주전이 유로파 리그 경기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 맨유를 꺾는 즐거움을 밝힌 토레스가 비디치를 또 괴롭힐지 모르겠다.

올 여름 리버풀 감독 레이스는 케니와 로이가 주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밝혀진 바로 케니는 리버풀 이사회에서 곧바로 거부당했고, 실제 레이스는 로이가 최우선 순위인 가운데 데샹, 페예그리니 정도가 다른 후보였다. 현재 케니는 작년부터 맡았던 리버풀 아카데미 대사직을 유지하고 있고, 로이는 리버풀의 감독이 되어 클럽의 채무와 구단 매각이라는 거대하고 적대적인 외부 환경의 압박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리그 상위 클럽에서 통할 수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리버풀 팬으로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지만 맨유의 퍼거슨의 사례가 있기에 나이 많은 로이가 리버풀 감독으로 실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는 유럽 전역을 돌며 수많은 팀의 감독직을 수행한 경험이 있고, 풀럼을 이끌고 유로파 리그 결승에 간 사람이다. 케니가 리버풀 유망주들에게 희망을 주고, 로이가 호지슨의 리버풀을 만들어 새로운 시대를 성공으로 이끌어가길 바란다. 아이콘인 케니와 풍부한 경험의 로이가 힘을 합한다면 충분한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슬픈 고백을 하자면 지금 아무도 리버풀이 이번 시즌에 우승을 다툴 것이라고 믿지 않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리그 4위 이상의 순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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