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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by wannabe풍류객 202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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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키 초기 삼부작의 마지막인 ‘문’까지 봤다. 앞의 두 권에 비해서는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무래도 젊은 이의 아찔한 사랑 이야기를 읽다가 이제는 삶에 희망이 없는 인물 이야기를 읽자니 진도가 안 나갔던 것 같다.

책 해설을 보면 ‘문’이라는 제목은 소세키 자신이 지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생각하면 문이라고 하면 여러 상징적 해석이 가능한 제목이기 때문에 작가는 남이 지어준 제목이지만 큰 부담은 없었을 수도 있겠다. 그는 당시 아사히 신문사에 소설을 계속 써야했던 모양이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산시로, 학생은 아닌데 직장인도 아닌 다이스케에 이어 이제는 전형적인 직장인이자 쪼들린 살림의 소스케가 주인공이다. 그에게는 오요네라는 아내가 있다. 그 둘은 어떤 사연이 있어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고립 속에 살고 있는데 그 사연은 후반부에 드러난다.

소설에 직접적으로 과정이 설명이 안 나오지만 소스케는 야스이라는 절친의 동거녀 오요네와 결혼했다. 야스이는 처음에 그녀를 누이라고 소개했다. 야스이가 굳이 집을 구하고, 오요네는 손님이 와도 숨어지냈던 건 이 둘의 관계부터가 당시 금지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소설 시점에서 거의 백 년이 지나 내가 학부 시절에 결혼한 동기 녀석의 경우에도 신부가 이대에 다녀 그쪽 대학에서 좀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소스케는 금지된 관계의 여성을 다시 쟁취함으로써, ‘그 후’에서 생략된 파국적 인간 관계의 단절을 경험했다.

원래 소스케는 부유한 집안에서 별 걱정 없이 살던 느긋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결혼 이후 그런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어졌고, 그는 도쿄에서 그에게 집을 임대한 사카이씨의 삶을 보며 자신의 잃어버린 미래를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사카이씨와의 좋은 인연도 사카이의 동생이 하필 야스이와 몽골, 만주에서 같이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으며 먹구름이 끼었다. 소설에서는 소스케와 야스이가 어색하게 재회하는 파국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소스케는 언젠가 그 액운이 닥치리라는 걸 거의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소스케와 오요네 사이엔 아이가 없다. 태어나긴 했지만 세 번 모두 죽었다. 오요네는 그녀의 잘못 때문에 그렇다고 확신한다. 생각해보면, 특히 현재 기준으로는 둘의 결혼에 그다지 흠결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단죄는 자신이 사는 시기와 장소에 따라 좌우되므로 1910년 즈음의 일본에서는 그런 커플이 행복하게 살기는 어려웠다.

소세키는 제목을 어떻게든 작품과 연결하고 싶었는지 후반부가 진행될수록 문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여러 번 언급했다. 소스케가 휴가를 내고 산속의 절에 들어갔을 때가 특히 그러하고, 거기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많이 연상시킨다.

소스케의 동생은 고로쿠라는 이름인데, 한자를 확인해야겠으나 일본어 숫자 5, 6의 발음이기도 하다. 산시로의 산시가 3, 4의 일본어 발음인 걸 보면 소세키는 더 이전 작품에서 1, 2가 들어간 캐릭터 이름을 사용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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