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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최고의 영예를 안은 '기생충', 그리고 가디언의 오보

by wannabe풍류객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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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간으로 오늘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 30분까지 이어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네 개의 상을 안기며 끝낫다. 정확히 네 개를 받은 사람은 봉준호 혼자이며, 이는 수십 년 전 월트 디즈니 이후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가장 수상 가능성이 높았던 구 외국어 영화 부문의 수상을 제외하면 다른 부문의 수상은 일종의 보너스처럼 여길 수 있었다. 애초에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오른 것만으로도 역사적인 일이었다. 그나마 작년부터 계속 이어진 각종 영화제, 시상식에서의 수상들로 인해 마치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을 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각본상에 이어 상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감독상, 작품상까지 수여되었다. 어떤 이는 감독상이 결정되자 작품상은 1917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마치 나눠먹기가 관행이라는 듯 혹은 상을 수여하는 측에서 분배를 한다는 식의 논리였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각 부문의 상이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기 때문에 누구는 감독상 누구는 작품상 식의 인위적 분배는 없을 것이다. 다만 투표이기 때문에 직접 투표를 하는 이들의 결정에 영향을 끼친 흐름이 중요했을 것이다.

 

작년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의 경우도 넷플릭스 측에서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아서 아이리쉬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등이 주요 수상 후보를 점령하고 있었다. 실상 두어 달 이전의 분위기로는 넷플릭스 영화들이 주요 상을 휩쓸 것 같았다. 이 영화들을 저지할 후보로는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그런데 골든 글로브에서 1917이 주요 상을 가져가고, 또한 기생충이 슬금슬금 시상 시즌에 두각을 나타내더니 오늘의 이변까지 이뤄냈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주요한 상을 받는 것은 영화 자체의 퀄러티를 따지자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애초에 외국어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어떻게 그렇게 주요한 부문의 후보로 올라가느냐가 문제였다. 누가 후보가 될 수 있는지 정확한 기준은 찾아보지 않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이 세계의 모든 영화를 후보로 놓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미국 영화 시장에서 상영이 되고 의미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기생충'은 외국 여러 국가에서 굉장한 흥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봉준호는 유명하게도 아카데미 시상식이 '로컬'하다고 평한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로컬'함의 반영인가 아니면 아카데미의 포용성의 확대인가? 일견 후자쪽으로 보이고 대체적인 평도 그럴 수 있다. Academy is so white라는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택지가 없었을지 모른다. 애초에 백인 주연이 아닌 영화들이 후보 선정 과정에서 거의 배제되었기 때문에 백인 위주라는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흥행, 작품성을 모두 갖춘 '기생충'이 좋은 그리고 거의 유일한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생각해보자면 기생충이라는 영화, 한국 사회라는 존재 자체의 복합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봉준호는 괴물에서도 한국 사회에 깊게 개입하여 존재하는 미국을 그린 바 있다. 기생충에서도 부잣집 가족은 국제적인 사업, 영어의 빈번한 사용 등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의 한 극단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 사회 지도급 인사들 자녀의 국적 문제로 대표되는 것처럼 또한 부르주아의 속성이 원래 그러하듯 지배계급의 국제적 성격은 기생충이라는 영화의 한 축을 이룬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에 후보가 될 뻔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도 스티븐 연의 캐릭터가 비슷한 경우였다고도 하겠다. 최근 영화인 블랙머니는 너무 직접적으로 미국식 자본(실상은 검은 머리 한국인)의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이렇게 국제적 자본의 문제는 그 대표적 인물을 하나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은 기생충에서도 잘 그려졌다. 지하에 갖힌 아버지, 반지하에서 더 추락한 아버지를 구할 방법은 당장은 없다. 이런 문제는 너무 보편적이기에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고 있다. 봉준호가 말한 바 자막의 장벽을 건너기만 하면, 이 영화가 그리는 내용은 당장 미국의 대표적인 케이블 채널 HBO가 드라마로 만들자고 달려들 정도로 보편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로컬'한 아카데미도 기생충은 쉽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미국 문화의 큰 축인 흑인을 극도로 배제한 이번 시상식이 외래의 그러나 친숙한 기생충 하나를 품었다고 내년부터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두고 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아까 작품상이 호명된 이후 영국의 대표 언론인 더 가디언의 관련 기사의 오보 내용을 소개해본다.

이미지에서 보이듯 우리시각 오후 2시 21분에 확인했던 것인데, 가디언은 작품상 수상작에 대한 기사에서 수상 소감을 말한 사람이 출연배우인 이정은과 장혜진이라고 소개했다. 재미있게도 로이터에서 제공한 사진의 설명도 동일하게 오류를 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제작자가 아닌 출연 여배우 둘이 작품상에 대한 긴 소감을 말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사실 그 시상식장에 모인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봉준호와 통역사를 제외하면 기생충 팀의 누가 누구인지 거의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오보는 가벼운 해프닝이고, 가디언은 어느 시점엔가 오류를 바로잡은 수정 기사를 올렸다. 동시간대 BBC를 비롯한 몇 개 해외 언론사의 반응도 지켜봤는데 이런 인명 표기 오류는 가디언에서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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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theguard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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