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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The man from earth

by wannabe풍류객 2010.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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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아무 기대없이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다. 

맨 프럼 어스
감독 리처드 쉥크만 (2007 / 미국)
출연 데이빗 리 스미스, 존 빌링슬리, 엘렌 크로포드, 토니 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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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0년의 이야기를 하면서 과거 회상씬 하나 나오지 않는다. 무대는 그냥 집 하나. 그나마도 거의 실내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정말 돈 별로 안 들었을 것 같은 영화다. 영화는 주인공이 갑자기 이사를 하며 황당한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납득시키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문제는 방금 말했듯이 멀쩡히 잘 살던 한 남성이 갑자기 이사를 간다며 짐을 싸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의 짐 속에는 요상한 것들이 보이고 지인들은 "이거 어디서 났어?"라는 질문을 던진다. 18세기 그림도 있고, 고대의 유물도 있다. 

납득할 수 없는 많은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주인공은 '어차피 믿지 않겠지만'이라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자신은 14,00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30대 중반의 모습을 유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늙지 않는 것을 알아차리지 않도록 10년마다 이사를 한다고 말한다. 바로 그 때가 왔기 때문에 이사를 한다는 것이다.

지인들은 거의 역사에 밝은 학자들이다. 그의 믿기 어려운 진술은 학문적 지식에 기반한 질문에 도전을 받았고 주인공은 침착하게 하나하나 설명한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의 영화평을 본 결과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대목에서 영화가 큰 허점을 드러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은 영화에서 진실을 기대했다는 말인가? 정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믿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영화의 설득력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14,000년을 살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람일까? 오히려 불사의 존재인 그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듯 예수라고 생각되는 그 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별로 대단할 게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초인적 능력이라고는 단지 늙지 않고 죽지 않는 것 뿐이다. 살아온 생애만큼 심한 중병을 앓은 적도 많고, 기억력이 완벽하지도 않다.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하버드에서 강의를 한 적도 있지만 지적 능력이 탁월해서는 아니다. 단지 그는 경험한 것이 많았을 뿐이다. 

동굴에서 살던 크로마뇽인, 샤먼 그리고 현대 사회의 교수가 알고 보면 같은 사람이다.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진화의 관점에서 보아도 인간이 다른 종으로 진화하지 않는 이상 수천 년 전의 인간이나 지금의 인간이나 특별히 차이가 날 리가 없다. 내가 보기에 영화는 이러한 평범함의 진리를 전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예수라고 불린 사람도 동굴에서 살던 원시인이다. 

영화는 주인공이 석가모니를 따라다니며 많은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 예수로 추앙을 받았다는 부분에서 많은 논란을 야기한다. 영화 속의 기독교인은 강하게 반발한다. 영화를 본 많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단순히 기독교를 비하하기 위한 게 아니다. 불교를 상대적으로 우호적으로 그린 것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신자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치부하는 게 당연한지 모르겠으나 진리란 굳이 경서를 뒤지지 않더라도 평범한 곳에 있다는 걸 누구나 느끼지 않나? 

언제나 제목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는 법인데 '지구에서 온 남자[혹은 사람]'라는 이름도 마찬가지다. 예수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자신은 지구에서 태어나 만 년 이상을 살아왔다고 주장하고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와의 연관성은 극구 부인한다. 그는 외계인도 신도 아닌 지구인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고, 결혼도 하고, 직업도 갖고, 앓기도 하면서 지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갔다. 그는 과거의 수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개인으로서의 한계도 갖고 있다. 신이 아니기에 세상을 일거에 바꾸지도 못 한다.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그가 할 수 있는 영역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뿐이었다. 

주인공은 사람임에도 아직까지는 불사의 존재이기에 죽어야만하는 자신 주변의 인간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총에 맞아도 네가 죽지 않을테냐!라는 강한 도전에 한 번 직면하지만 위기를 모면한다. 주인공이 총에 맞았다면 영화가 끝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정말 죽는지 아닌지는 흥미로운 부분이긴 하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죽어야만 하는 운명. 아무리 오래 산다고 해도 주변의 모든 것은 소멸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경험하는 아픔, 허무함. 선택할 수 있다면 어디를 고를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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