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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New in town (미쓰 루시힐)

by wannabe풍류객 2009.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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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 루시힐
감독 조나스 엘머 (2009 / 미국)
출연 르네 젤위거, 해리 코닉 주니어, 시옵한 폴론, J.K. 시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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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가 있지만 르네 젤위거의 명성을 가장 드높인 것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다. 브리짓 존스는 날씬하지도 그렇다고 미모가 출중하지도 않지만 사랑스럽다. 한국에서 이 영화 '미쓰 루시힐'의 마케팅은 주연인 르네 젤위거의 전작 브리짓 존스의 이미지에 많이 기대고 있는 것 같았다. 제목도 'New in town'에서 '미쓰 루시힐'로 바꿨다. 그런데 이는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개명이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르네 젤위거는 사랑스럽다. 버르장머리 없는 직장 상사에서 공장 노동자들과 소통하고 지역 사회의 일원이 되는 인간적인 동료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하지만 영화의 세팅 자체는 브리짓 존스류의 영화와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루시힐이 처음 등장할 때, 그리고 영화 종반 마이애미로 돌아가서 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조깅이다. 그녀는 뚱뚱하지 않으며, 뚱뚱해져서는 안 되는 캐릭터다(결론 이후의 이어질 새로운 삶에선 조금 더 살이 붙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의 의상도 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깔끔한 비즈니스 복장에 높은 하이 힐. 루시힐과 하이 힐은 묘하게 발음이 어울리는데 이 모든 것, 그녀의 생김새, 옷 입는 것, 삶의 방식 모두는 완전히 브리짓 존스와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럼 이런 다른 설정 속에서 루시힐이라는 캐릭터가 상징하는 건 무엇인가. 영화 중반에 아주 적나라하게 나온다. 루시힐의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다. 하지만 일을 아주 잘 해서 넥타이를 입은 관리자들도 종종 그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다. 루시힐은 그런 아버지가 공장의 보스인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니었고, 아버지는 어릴 때 루시힐의 머리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라는 말을 주입시켰다. 그렇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 속의 계급 문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루시힐은 쁘띠 부르주아의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영화 상의 재미있는 부분은 루시힐의 가족이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버지는 어릴 적의 이야기로만 등장하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는지 몰라도 언급조차 없다. 형제자매도 없다. 미국 사회가 원래 그런지 모르지만 루시힐은 극단적으로 외로운 존재이고 그래서 더욱 홀로 서야만 하는 캐릭터다. 마이애미의 외롭고, 살벌한 생활에 길들여진 그녀가 엄동설한의 미네소타에서 구조조정을 위한 도끼를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차가운 그녀의 마음이 그 추운 동네의 마음씨 좋은 사람들로 인해 서서히 녹아내리는 그 아이러니.


사실 town이라고 하면 농촌과는 다른 개념이다. 실제 영화에서는 공장 지대로 나오기도 하고. 하지만 town은 city와도 다르다. New in town은 City girl이 그나마 정이 있는 town에 새로 오면서 겪는 인간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계급적 정체성을 새로운 상황을 통해 타협하는 영화다. 마지막에 그녀가 내놓는 해결책이야말로 마이애미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녀는 여전히 공장의 보스가 되길 원하고, 심지어 지역 노동조합의 장으로 있는 테드(해리 코닉 주니어)와 결혼할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지역 사회의 일인자로 군림할 확실한 가능성을 거머쥐었다. 미국만큼이나 한국의 돈 잘 버는 신세대 여성들은 섹스 앤 더 시티처럼 미국 대도시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삶을 기대하지만, 알짜배기 권력은 지역 사회에서 누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나마 루시힐이 지역 사회를 착취하는 공장장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 다행스럽긴 하다.

근래 세계적인 불황으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쌩쌩 부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가벼이 볼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약간 미화하여 희망을 주는 척하는 영화인데, 그 중심은 결코 루시힐이 아니다. 금융자본주의로 인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Town의 삶, 그 자체야 말로 영화가 보여주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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