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4월 15일, 영국 축구 사상 최악의 인명 피해를 기록한 힐스보로 참사가 발생했다. 1988-89 시즌 FA컵 준결승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의 경기는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인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시작된지 6분 만에 리버풀 팬들의 압사로 중단되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96명이 사망한 이 비극적인 사건은 경찰의 은폐 의혹과 타블로이드 신문 더 썬의 거짓 보도로 얼룩졌고, 힐스보로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은 정의를 찾자는 운동을 지금까지 벌이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서들이 공개되며 조만간 희생자 가족들이 제기한 의혹들이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에는 이 힐스보로 참사에 관하여 국내에서 돌아다니는 한 일화가 거짓에 근거했음을 밝히고자 한다. 국내의 리버풀 팬이나 아스날 팬은 익히 한 번은 읽어봤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아스날과 리버풀. 두 미련한 바보에 대하여..."다. 구글에서 검색하니 맨 위에 두 개의 블로그
가 뜨는데 읽어보면 모두 한국의 대표적인 아스날 팬 사이트인 '하이버리'의 Gunners boy라는 분이 처음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하이버리에 가입되지 않아서 원문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퍼간 분들의 글이 동일함을 보면 원문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스날과 리버풀이 왜 사이가 좋은가라는 처음 듣는 사람에겐 다소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질문을 던진 그 글은 힐스보로 참사 때가 그 기원이라고 주장한다. 1989년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사실이 적혀있으나 아무리 확인해도 알 수 없는, 내가 보기엔 창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 있다.
마침 그 다음 경기가 하이버리 어웨이.
그런데 아스날 보드진이 FA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경기를 취소연기 해버린다.
리버풀은 시합할 분위기가 아닐 것이며 언제든 시간나면 재시합 하자고, 그로 인해 벌금을 물어도 좋으니 언제라도 연락하라는 아스날의 입장이었다.
힐스브로 사건 다음날 신속하게 바로 이루어진 아스날 보드의 조치에 리버풀 보드진이 감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FA도 차마 아스날을 징계하지는 못했다.
하이버리 어웨이?
리버풀은 이미 그 시즌 아스날 어웨이 경기를 88년 12월 4일에 소화했다. 힐스보로 참사 이후 아스날 경기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리버풀 홈 경기였다. 그 경기는 연기되어 5월 26일에 치러졌다. 두 클럽은 그 시즌 우승을 다투고 있었는데 힐스보로 참사에도 불구하고 연승을 달리던 리버풀이 홈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스날에 0-2로 패하며 우승을 놓친 것은 유명한 일이다.
혹시 필자는 안필드 어웨이를 잘못 쓴 것일까? 아스날 팬이니 하이버리 어웨이는 이상하기도 하다. 그런데 아스날 보드진이 경기를 취소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스날 측이 경기를 취소했다면 하이버리에서 열릴 경기일 경우가 더 이치에 맞는다. 위의 글에서 이후의 멘트들은 리버풀과 아스날의 바보스러움을 부각시키는 좋은 수식어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훈훈한 사건이 왜 영어로는 검색이 되지 않는 것일까?
http://en.wikipedia.org/wiki/Hillsborough_disaster http://en.wikipedia.org/wiki/Liverpool_0%E2%80%932_Arsenal_(26_May_1989) http://www.guardian.co.uk/football/2009/mar/29/arsenal-liverpool-1989-football
모두 힐스보로 참사 직후의 리버풀 대 아스날 경기는 그저 "연기되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물론 아스날 보드진이 경기를 취소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잘 몰라서 안 적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번째 링크의 가디언 기사는 1989년을 살았던 제이슨 코울리라는 분이 당시의 일을 상세히 회고한 것이다. 그는 "힐스보로와 시즌의 연기(suspension of the season)" 때문에 경기가 5월말에 열렸다고 표현했다.
더 알아보기 위해 1989년 당시의 신문 기사들을 검색해보았다. 기사 검색은 대학 도서관의 데이터베이스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러므로 마찬가지의 경로를 통하지 않으면 원문을 못 볼 가능성이 많음을 미리 경고한다. 여기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정리해보기로 하자.
4월 18일, FA는 리버풀이 FA컵에 불참하더라도 대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참사로 인해 FA컵을 중단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으나 결국 강행하기로 한 것이다. 리버풀은 5월 7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노팅엄 포리스트와 경기를 다시 가졌고 승리해서 결승에 오른다. 그리고 에버튼을 꺾고 FA컵에서 우승했다.
4월 19일, 리그는 돌아가신 분들 때문에 토요일의 모든 경기를 연기하려고 했으나, 경기를 하는 것이 그분들을 추모하는 데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모든 경기 전에 1분 간의 묵념이 있을 예정이다. 리버풀과 아스날의 경기는 연기되었지만, 에버튼은 경기를 갖기로 했다.
당시 리그 차원에서 리버풀-아스날 경기를 포함한 모든 주말 경기를 연기할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경기를 하기로 했고, 이 기사에서는 리버풀-아스날 경기가 연기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마찬가지로 4월 19일, 리버풀의 단장 피터 로빈슨은 힐스보로 이후 리버풀의 첫 경기는 5월 3일 에버튼과의 경기가 될 것 같다고 발표한다.
실제로 그렇게 일정이 진행된다.
4월 25일, FA는 리버풀이 FA컵을 계속 진행할지에 대한 결정을 주말까지 연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리그와 컵 대회는 다르지만 리버풀이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검색해서 살펴본 1989년 당시의 어떤 기사에서도 아스날 측에서 리버풀과의 경기를 취소했다는 언급은 찾을 수 없었다. 혹시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스토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위 기사들이 그 사실을 누락했다고까지 주장한다면 반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원래 없었던 일이기에 적혀있지 않은 것뿐이라는 쪽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만약 합당한 근거를 가진 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내 주장을 철회할 용의가 있다.
내가 보기에 당시 리버풀은 4월 15일의 참사 직후 경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다. 슬픔에 잠기고 충격에 빠진 리버풀 선수와 팬들을 위해 경기를 연기하는 건 아스날 뿐 아니라 FA나 리그 차원에서도 충분히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스날과 원래 경기하기로 했던 4월 23일엔 리그의 결정에 따라 어떤 경기도 열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리그 측에서 축구에 대한 열정 때문에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는 방법은 축구를 정상적으로 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기에 경기들이 진행된 것이다.
리버풀이 속한 머시사이드 지역에서는 리버풀과 트란미어(4부 리그)의 경기가 진행되지 않았고, 에버튼만 경기를 했다. 리버풀이나 힐스보로 참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트란미어가 경기를 연기했지만 FA 등에서 제재를 고려했다는 등의 언급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큰 재앙 앞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스날 측에서 오버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리버풀을 배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위의 리버풀 단장의 말을 보자. 4월 19일이면 예정된 아스날과의 경기일 전이다. 그 때 이미 리버풀은 4월의 남은 경기를 모두 안 하기로 결정했다. 아스날 이외에 다른 팀과의 경기도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리버풀의 뜻에 따라 일정이 변경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물론 안필드에서 있었던 그 시즌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스날 선수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아름다은 일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없었던 일을 포함시켜 감동을 조작해내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Gunners boy라는 분이 고의적으로 그렇게 썼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토록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에 거짓이 포함되었다면 배반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틀렸길 바라지만 아닌 것 같아 두렵다.
* Gunners boy님의 원본 글(리버풀 팬사이트 tp에 올라왔던)을 확인했다. 인터넷에 많이 볼 수 있는 글과 달리 사진은 첨부되지 않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글이었다. 나중에 Gunners boy님의 글을 수정해서 우리가 많이 보는 글을 만든 분이 이야기에서 감동 코드를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최소 30대 중반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Gunners boy님은 감동을 주려고 했다기보다는 어린 니들이 이런 얘기 알아?라는 어투가 더 강했다). Gunners boy님은 그 에피소드를 '현지의 양팀 올드 팬'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결국 검증할 수 없는 출처였다.
* 데이터베이스를 추가로 검색하였다. 1989년 4월 18일부터 23일까지의 기사들에서 리버풀이 아스날과의 예정된 경기를 연기했다거나, 리버풀과 아스날이 경기 연기에 합의했다는 언급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스날이 경기 일정 변경에 주도적이었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http://proquest.umi.com/pqdweb?index=30&did=470492111&SrchMode=1&sid=3&Fmt=3&VInst=PROD&VType=PQD&RQT=309&VName=PQD&TS=1303043632&clientId=15501 http://proquest.umi.com/pqdweb?index=37&did=162142251&SrchMode=1&sid=3&Fmt=3&VInst=PROD&VType=PQD&RQT=309&VName=PQD&TS=1303043632&clientId=15501
http://proquest.umi.com/pqdweb?index=22&did=184107501&SrchMode=1&sid=4&Fmt=3&VInst=PROD&VType=PQD&RQT=309&VName=PQD&TS=1303043782&clientId=15501 http://proquest.umi.com/pqdweb?index=56&did=73873054&SrchMode=1&sid=4&Fmt=3&VInst=PROD&VType=PQD&RQT=309&VName=PQD&TS=1303043816&clientId=15501 http://proquest.umi.com/pqdweb?index=57&did=470502811&SrchMode=1&sid=4&Fmt=3&VInst=PROD&VType=PQD&RQT=309&VName=PQD&TS=1303043816&clientId=15501http://proquest.umi.com/pqdweb?
다만 TP의 LionKing님 덕분에 아스날 팬들이 gunners boy님의 주장과 유사하게 쓴 글들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글들 간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아스날 팬들의 일방적인 기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리버풀 팬사이트에서는 아스날의 주장을 인정하는 글이 발견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라이언킹님의 글:
http://premiermania.net/bbs/view.php?id=imsi&no=20681
* 4월 23일 내용 추가
이번에도 TP의 LionKing님의 노고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아스날 측의 경기 일방적인 취소 일화는 사실 리버풀이 아니라 4월 18일 윔블던과의 경기에 대한 것이었다. 아스날은 리버풀이 아니라 윔블던과 경기 연기를 합의한 후 FA에 통보했는데, FA 측에서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결국 윔블던과의 일화가 리버풀과 있었던 일로 혼동되어 빚어진 촌극인데 아스날 팬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일이다.
http://premiermania.net/bbs/view.php?id=imsi&no=20725
- http://paperman.tistory.com/3 http://ozzy7878.blog.me/100085897881 [본문으로]
* 2021. 8. 15에 '철의 동맹'에 대한 새로운 글을 작성하였다. https://vieri.tistory.com/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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