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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The last duel (2021)

by wannabe풍류객 2021.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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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의 듄과 리들리 스콧의 더 라스트 듀얼이 같은 날 개봉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극장에 가고 싶어졌고, 상대적으로 일찍 극장에서 내려갈 듯한 라스트 듀얼을 먼저 보기로 했다.

맷 데이먼,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한다는 건 알았지만 예고편에서 까만 옷을 입고 말을 탄 조디 코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최근에 프리 가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했고, 영국 tv를 통해서는 헬프라는 작품에 주연을 맞는 등 그녀의 주가가 한껏 올라간 상황이다.

영화에 대한 기타 지식은 없는 상태로 감독과 배우들을 믿고 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14세기 후반 프랑스의 영주, 지주, 기사들의 이야기였고, 초반에는 익숙치 않은 프랑스 인명, 지명에 익숙해지느라 고생했다. 다행히 제작진도 그 점을 신경썼는지 인명은 별로 나오지 않는다. 아담 드라이버, 맷 데이먼, 조디 코머에 더해 벤 애플렉과 조디 코머의 아버지 캐릭터 정도가 이름이 자주 나온다. 당시 프랑스 왕도 출연하는데 샤를 6세로 되어있다. 더 작은 출연 분량으로 아담 드라이버 캐릭터의 심복이 있고 그는 이름도 불리는데, AMC의 더 테러에 출연했던 게 기억난다.

영화의 구조는 두 주연 남배우들이 말에 타서 창을 들고 서로에게 돌진하는 광경과 무슨 일인지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조디 코머 캐릭터를 보여주다가 그 시점까지의 이야기를 세 명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지금 보니 주간 경향의 관련 기사에서 대략의 줄거리를 잘 설명해주니 세세히 쓸 필요는 없겠다. 세 명의 시선이지만 세 개의 진실이 있는 건 아니라는 기사의 평가에 대체로 동의하게 되고, 그 점에서는 많은 이 영화에 대한 리뷰들이 언급하는 라쇼몽과 결정적 차이를 보인다. 영어로 된 리뷰들을 여러 건 검색했는대 대개가 라쇼몽과 미투로 이 영화를 규정했다.

세 명의 시선으로 달라지는 점을 기억나는대로 적어봐야겠다. 카루즈는 르 그리의 목숨을 자기가 구한 건만 생각하고 르 그리가 자신에게 빚을 졌다고 여기며 살지만, 르 그리는 전투 초반에 카루즈를 살렸다. 그런데 그걸 카루즈는 모르고 있었다. 카루즈는 르 그리가 친구지만 자기 것을 모두 뺏았는 나쁜 놈이라 여기지만, 르 그리는 카루즈에 적대적인 영주 피에르에게 카루즈 변호를 많이 했다. 카루즈는 문맹인이라 르 그리의 문학적 재능, 회계 능력 등을 거의 평가하지 않지만 그 점들은 르 그리가 피에르에게 인정받는 결정적 계기들이다. 물론 르 그리는 피에르의 방탕한 생활을 같이 즐겼고, 지주들로부터 가혹한 수단을 써서 세금을 걷는 잔혹한 면도 보인다. 카루즈 아버지의 성castle을 르 그리가 받게 된 후의 장면에서 카루즈는 자기가 분노를 제대로 전달했다고 기억하지만, 르 그리와 피에르에게는 카루즈가 웃긴 꼴만 보이고 돌아갔다. 강간이 있었던 걸 처음 알게 된 날의 풍경도 카루즈와 마르그리트 사이에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내에게 곧바로 관계를 요구했던 건 아내의 시점에서만 드러난다. 비극적 사건의 단초는 카루즈가 화해의 제스처로 아내보고 르 그리에게 키스하라고 요청한 일이다. 이미 처음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겨보이긴 했으나 그 접촉이 르 그리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것처럼 연출되었다. 이후 그는 무식하고 무정한 카루즈 대신 마르그리트가 책을 읽고 잘 생긴 자신에게 넘어올 거라고 확신한 사람이 되었다. 자신을 향한 마르그리트의 시선을 과대해석했다. 그리고 마르그리트는 실제로 친구에게 르 그리가 잘 생겼다는 말을 몇 번 했다. 그럼에도 그 성폭력 장면은 어떻게 보아도 일방적인 사건이었다. 거의 모든 정황이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대신 르 그리는 마르그리트가 신발을 일부러 벗고 계단을 올라간 걸로 생각하고, 관계시 마르그리트의 고통을 훨씬 덜 느낀 걸로 생각하는 것처럼 연출되었다. 그러나 마르그리트 시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음이 드러난다.

영화 리뷰들을 보면 보통에서 좋음의 중간 어딘가로 평가가 모아진다. 사실 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의 영화라기보다 맷 데이먼의 영화였다. 맷 데이먼이 원작이 된 논픽션을 원고로 쓰다가 친구인 벤 애플렉과 공동 집필로 전환했고, 마르그리트 시점을 위해 여성 작가를 추가로 영입해서 세 명이 각본을 쓴 것이다. 맷 데이먼은 마션을 함께 한 인연으로 리들리 스콧을 찾아가서 영화가 만들어졌다. 맷 데이먼은 좋은 대학을 다닌 자신의 실제와는 상반되는 싸움만 잘하는 무식쟁이를 연기하며 벤 애플렉 캐릭터에게 수모를 연이어 겪는 걸 자청하긴 했지만 명예를 위한 결투에서는 승리하여 파리 시민들로부터 영웅으로 칭송받는 캐릭터를 차지했다. 당시 시대 분위기로는 강간 사건은 그냥 묻히는 게 일반적인데 그걸 왕 앞의 결투까지 끌고 간 점에서 카루즈나 마르그리트 모두 극히 예외적인 인물들이었다.

영화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며느리를 조롱하는 시어머니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녀의 미투 고백은 실로 놀라웠다. 도대체 지주나 기사 정도 되는 사람의 부인을 누가 강간하는 것인가? 이건 잘못된 질문인지 모른다. 여하간 이 영화의 사건 당일 시어머니가 왜 마르그리트를 홀로 남겨뒀는지 어떻게 그 집에 사람이 그렇게 하나도 없었는지도 이상한 일이다. 르 그리는 그녀가 홀로 남은 걸 어떻게 알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지만 마치 시어머니와 르 그리가 공모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인다. 르 그리는 최소한 카루즈는 집에 없다는 건 알았다.  

마르그리트 시점의 이야기와 에필로그를 보면 그녀는 살림하는 재미로 살았던 인물이다. 흑사병으로 인구가 대폭 감소한 시절 그녀는 실용성을 내세우며 남편의 방침을 어겨가며 집안 살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전투에 참여해 돈을 벌다가 십자군에 참여하고 돌아오지 못한 걸로 나온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은 보통 13세기말에 끝나는 걸로 나와서 영화와는 거의 100년 차이가 나서 어떤 상황인지는 더 확인이 필요하다. 그 자신이 남편의 재산 취급을 당하던 그녀가 남편 사후에 재혼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건 물건 취급을 더 이상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결과처럼 보인다. 그녀의 ‘물건적 정체’는 재판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카루즈는 결투에 의한 심판을 받아서 지게 되면 아내가 벌거벗겨져 화형을 당한다는 걸 알지만 자신의 명예만 고려한채 설명해주지 않았다. 마르그리트가 화형의 처분을 알았다면 재판을 하지 않았을 것처럼 보였다. 나를 매혹시켰던 결투장에서 그녀의 검은 옷은 죽기 직전의 의복이자 상복이었다.

결투는 한 명의 목숨 대 두 명의 목숨을 건 도박이었고, 실제 역사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영화에서는 르 그리가 거의 다 이긴 상황에서 카루즈가 반격에 성공하여 승리하는 걸로 귀결된다. 무식쟁이라도 전투에 나가 언제나 살아돌아온 카루즈가 영주 근처에서 회계를 주로 하던 르 그리에게 그렇게 밀렸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왕의 사촌인 피에르의 최측근이던 르 그리는 죽어서 처참한 꼴로 높은 곳에 거꾸로 매달려 전시되고 만다. 이렇게 결투로 재판을 한 건 이 때가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제목이 더 라스트 듀얼이었다. 결투의 결과가 신의 뜻이라고 여긴 점에서 매우 중세적인 사건이고, 이게 마지막이었다는 점 그리고 결투가 이미 한동안 사라졌던 관행이기에 재판의 합리성이 이미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겁탈의 결과가 임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과학이라는 주장이 일반적 견해였던 것처럼 우리가 아는 자연과학적 합리성은 매우 제한적인 시대였다. 마르그리트가 임신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당시 의학적 진단은 미셸 푸코의 책에서 보던 표현 그대로여서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마르그리트가 임신한 시점이 성폭력의 시기와 겹치는 점은 어떤 점을 말하고 있을까? 영화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두 남자와 관계를 한 게 분명히 나오기에 아이의 아빠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다만 막 걷게 된 아이의 머리 색을 감안하면 아빠는 카루즈로 생각해야할 듯 하다. 하필 그 시점에 남편의 아이가 마침내 잉태되었다면 매우 공교로운 일이다. 그 시점의 남편과의 관계는 합법적 성폭력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설사 아이의 아빠가 르 그리라고 하더라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확인할 수도 없는 일이고 어쨌거나 자신의 자식이고 가문을 이을 후손을 마련한 것이니 별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심각한 내용을 다룬 이 영화에도 웃음 포인트가 있는데 대개 벤 애플렉과 맷 데이먼 사이에서 드러난다. 둘의 캐릭터는 상하관계가 분명하고, 피에르가 보기에 카루즈는 자기가 싫어하는 일만 일삼는 놈이고, 카루즈가 보기에 피에르는 왕과 친척이라는 이유로 전투에 나가지도 않고 지주들로부터 세금만 많이 뜯어가는 가혹하고 저질의 영주다. 그래서 서로 싫어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는 표정들이 실제 이 두 배우의 관계를 생각하면 웃음을 준다. 피에르는 빈번하게 밤마다 취하고 여러 여성과 관계를 갖는데 아내와는 줄줄이 아이를 만들어 영화에 나오는 것만 여덟 명의 아이가 있었다. 그와 아내의 다산성은 카루즈와 마르그리트의 무자식 팔자와도 대조를 이룬다.

영화의 전투 신을 보면 영국(잉글랜드)과 프랑스가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이는 그 유명한 백년 전쟁이다. 잘 몰랐지만 당시 스코틀랜드는 프랑스와 연합 상태였다. 카루즈가 자신의 영주인 피에르보다 프랑스왕에게 충성을 과시하는 건 단지 피에르에 대한 개인적 원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큼 왕권이 강화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다만 프랑스 왕인 샤를 6세 캐릭터는 적어도 외모에서는 매우 멍청한 것처럼 보이게 연출되어서 그러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 흑사병 이후의 시대로도 그려지고 있어서 마르그리트가 홀로 남겨진 건 그만큼 집에 하인을 두기엔 인력이 극도로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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