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정재 출연작이라는 이유로 봤는데 의외로 이병헌에 공유까지 짧게 출연한다.
드라마를 보며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걸 해 본 적도 들어본 저도 없다는 사실이다. 나이는 이 게임을 충분히 알았어야 할 만큼 먹었지만 내가 살던 시골 동네, ‘국민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이 놀이를 하지 않았다. 남들은 했는데 나는 몰랐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해본 사람이 많다는 걸 요즘 알게 되니 당황스럽다.
오징어 가이센이라는 말을 하는 모양이고 이는 개전의 일본식 발음이라 이 게임의 일본 기원을 점칠 수 있다. 드라마는 다른 작품들로부터 여러 요소를 가져왔다는 의심을 많이 사는 중이고 그 중에는 일본 작품이 많다. 나만 해도 드라마로 본 라이어 게임이 즉각 떠올랐고, 가장 많이 언급된 건 카이지였는데 이건 못 봤다. 정말 목숨을 두고 건 게임이라는 점에서 배틀 로얄도 생각나고, 빨간 복장과 가면 때문에 종이의 집이 생각날 수도 있다. 빨간 옷이 강렬하기로는 핸드메이즈 테일도 있었다. 부자들이 하도 심심하여 갈 곳 없는 인간들 혹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인간들을 감금이나 납치하여 서바이벌 게임을 벌이게 하는 작품은 서구 영화에서 오래 전부터 나온 듯 하다. 어떤 참가자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 그런 게임의 주도자를 찾는 것도 이미 본 설정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도 새로운 화제작에 대해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 나온다. 어떤 이들은 재미있게 봤다 하고, 어떤 이들은 베껴온 게 많아 재미없다 한다. 두 입장은 다 취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어중간한 위치의 느낌을 받았다. 재미가 있으면서도 불편함이나 기시감 때문에 아주 높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이 드라마가 여러 해외 작품들의 요소들을 차용했다고 하면(감독은 이미 십몇 년 전에 써놓은 각본이라 자기가 먼저라고 하지만 중요한 설정과 장치 몇 가지는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할 수 없다고 본다) 드라마의 한국적 요소(이걸 굳이 따져야하느냐가 논쟁적일 수 있지만)를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서바이벌 게임의 종목들에서 찾을 수 있다. 살인이 난무하는 드라마의 진면목을 확 일깨워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뽑기, 구슬치기, 오징어 게임은 확실히 예전에 많이 하던 놀이들이다. 이 놀이들의 기원을 따지면 또 해외로 거슬러가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놀이를 할 때의 언어, 구성원은 대체로 못 살던 시절의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번 할아버지가 구슬치기를 하며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어린 시절 마을을 떠올리는 것이야말로 이 게임들의 한국적 요소를 대표한다.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이라고 말하는 방식, 어제야 알았지만 쌍용 자동차 사건 등도 한국적이라 하겠다.
오징어 게임은 역시 얼마 전에 나온 넷플릭스의 dp와 몇 가지 점을 공유한다. 거친 언어와 폭력이다. 언어의 차원에서는 dp쪽에 욕설이 더 많았던 듯 하지만 인생의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 드라마의 캐릭터들의 언어도 듣기에 불편한 편이다. 폭력의 정도로 치면 이 드라마는 도가 지나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간 4백 몇 십 명을 모아놓고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다 죽이고, 일부 의식이 남은 곧 죽을 참여자는 장기 매매의 수단으로 삼으며 해체 장면까지 보여준다. 참여자들이 죽을 때 대개는 깔끔하게 보여주지만 몇 번은 뇌가 터지는 식으로 잔혹한 장면을 보여준다. 어떤 영화는 전쟁 영화임에도 피조차 잘 보여주지 않는데 굳이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전시했어야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잔인한 게임을 즐기는 부자들이 있음을 보여주고 비판하기 위함이겠지만 결국 넷플릭스로 이런 작품을 보는 시청자들까지 그런 걸 즐기는 인간으로 만들고 만다. 스포츠가 폭력의 대체물 성격이 있고, 유럽 귀족들은 동물 사냥으로 여흥을 즐겼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는 죽음을 순화시켜 전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의 큰 세팅에 대해 생각해본다. 결국 1번 할아버지가 예전에 금융으로 큰 돈을 벌었고, 다른 심심한 부자들과 함께 이런 서바이벌 게임을 시작했다는 거고, 죽을 날을 얼마 남기지 않게 되자 이정재가 참여했을 시기에 직접 게임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이 게임은 한국의 무인도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글로벌 부자들은 누가 우승할지에 판돈을 건다. 우습게도 이 부자들은 큰 돈을 걸었음에도 정작 돈을 따는지 잃는지는 관심도 없다. 옆에 미남자가 오자 미련없이 자리를 떠서 다른 데로 간다. 참여자들의 몸값만 인당 1억이라 한 번 우승자를 가리는 동안에만 수 백 억원이 들어가고, 기타 여러 비용이들어가는데 이 정도의 돈을 물쓰듯 할 부자가 그렇게 많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이 게임은 1998년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나오니 총액을 따지면 좀 말이 안 된다(몸값에 인플레를 적용했을 수도 있겠다). 98년은 한국에서 IMF위기의 절정기인데 그 때 한국의 한 켠에서 돈을 이렇게 낭비할 여력이 있었다는 건 거의 설정오류처럼 느껴지지만, 그 위기에서도 돈이 넘쳐나고 심심해서 못 견딜 부자가 있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고 바로 그 때가 대량 정리해고의 시작점이니 적어도 게임 참여 대상은 넘쳐났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97, 98년은 한국에서 양극화가 심해지는 분기점이었다. 한국의 생존경쟁은 그 때부터 격심해져서 오징어 게임 참여자들의 행태는 현실의 메타포로 읽을 수는 있다.
드라마의 특이 캐릭터로 파키스탄 출신 외국인 노동자와 탈북민 여성이 있다. 한국 사회의 일원이지만 주변인이자 투명인간처럼 존재하는 이들은 오징어 게임에서 큰 비중으로 등장하여 의미있는 설정이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서울대 경영학과 수석 출신 때문에 죽는데 한국 사회 엘리트가 양심보다 돈을 추구함을 상징하는 듯 하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도 거액의 빚을 질 따름이고 진짜 돈은 극소수의 글로벌 금융 자본가들이 움직인다. 아마도 그런 사실 자체를 과장되고 극단적인 형식으로나마 표현한 것이 이 드라마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이런 거대한 현실의 배경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부자들이 설계한 세상에서 바보처럼 이전투구를 벌인다. 그러면 단순히 부르주아라고 칭하긴 거대한 금융 자본가들을 처단하는 혁명을 일으켜야 할까? 그러나 이 글로벌한 차원의 부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지가 예전 인민 혹은 민중이 왕궁이나 귀족의 성을 찾는 것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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