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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DP 리뷰

by wannabe풍류객 2021.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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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드라마인 DP(이후로 디피로 적겠다)를 보았다. 한국 남성은 왠만하면 군대에 가야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ptsd가 온다는 호소를 하고 있다. 나는 경우가 좀 다르다. 군 생활 동안 헌병들을 자주 보고 전화 통화를 종종하며 지냈다. 군 법무부, 즉 군 검찰에서 일했기에 군대의 경찰인 헌병과 업무 연락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헌병들의 일상은 전혀 알 수 없었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이미 나의 군생활이 순탄치 않았기에 남의 사정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법무부에 있어서 선임들이 나를 쉽사리 건드리진 못했다. 알게 모르게 사령부 병사간에 폭력이 있었지만 나는 적어도 육체적 폭력에서는 꽤 벗어나 지냈다.

디피는 군탈 병사를 체포하는 헌병들이다. 그러나 나는 법무부에서 일하면서도 디피라는 걸 몰랐다. 피의자 혹은 피고인인 군인을 데려오는 건 그들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디피가 이미 잡아온 군인만 내가 상대했던 것이라 하겠다. 직전에 병사가 아니라 군인이라고 한 건 군에서 죄를 짓는 게 병사만이 아니라 부사관, 장교들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같은 부대에 있던 준위가 피의자로 왔을 때의 어색한 분위기가 문득 떠오른다.

드라마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군내의 폭력과 그로 인해 피해자 병사(조 일병)가 폭주하여 불행한 최후를 맞는 줄거리라 하겠다. 원래 주인공은 정해인 캐릭터인 안 이병이지만 그는 내레이터 같은 역할이다. 헌병대의 업무 방식을 잘 모르겠으나 디피가 군탈 병사를 직접 체포하는 주체이므로 그 경과를 자신의 해석을 통해 ‘서술’하는 건 자연스럽다. 디피 병사들이 직접 문서를 작성하는지는 모르겠다. 법무부의 가장 중요한 문서인 피의자 신문조서는 군 법무관만 작성할 수 있었다.

그 자신이 가정폭력이 극심한 가정에서 자란 안준호 이병은 맞지 않기 위해 복싱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자신의 폭력의 경험을 군대 내의 폭력과 중첩시켜 사고를 했던 걸로 보인다. 군 밖의 일이었지만 황장수는 전역 후 편의점에서 점주로부터 언어 폭력을 당하게 되어, 어찌 보면 지위에 따른 폭력이 가정, 군대, 직장 등 한국 사회에 만연했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드라마는 거의 매 회 피가 낭자한 폭력 장면들이 등장한다. 드라마의 취지가 극의 배경인 2014년뿐 아니라 2021년 현재에도 군 내부의 폭력 문제가 근절되지 않았다는(조 일병 수통에 1954년이라고 적혔다며 군대가 변하겠냐는 비관적 전망이 드러난다. 다만 1954년이면 한국전쟁은 끝난 후다) 점에서 폭력을 적나라하게 전시한 걸로 보인다. 물론 호러물에 가까운 신체훼손이 나오진 않지만 온갖 종류의 폭력이 이 드라마의 서술 방식임은 분명하다. 단지 신체적, 물리적 차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캐릭터가 욕을 내뱉는다. 나의 병역 시절엔 욕을 많이 들어보진 못 했으나, 극중 상황들로 보면 욕이 많이 나올만하다 수긍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폭력의 과잉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폭력 씬들은 6편짜리 드라마의 분량을 크게 채워준다. 주인공은 복싱 경력, 조 일병은 유도 경력이 있고, 어떤 탈영자는 복싱인지 뭔지 모를 격투기를 잘 하여 진작에 싸움질을 오래 하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 더구나 굳이 조석봉 일병의 손에 권총이 들어가게 만들어 그의 권총 자살을 이끈다. 탈영병이 자신이 부대에서 가져가지 않은 총기로 자살을 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조석봉에게 총을 쥐어주고, 그러면서도 가해자인 황장수를 죽이는 건 평화로운 최후를 선사한다는 박중사의 말 때문에 총을 쏘지도 못 하게 만들었다. 조석봉은 황장수의 반성과 사죄 그리고 자신이 당한만큼의 복수를 원했던 모양이지만 헌병들이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자 자살을 선택했다.

6편 종료 후의 쿠키 영상에서처럼 드라마의 메시지는 병사들간의 말도 안 되는 가혹한 폭력을 하다가는 군 복무 중은 물론 제대를 하더라도 유령같이 어두운 과거가 덮칠 수 있다는 걸로 보인다. 황장수를 자꾸 따라간 조석봉처럼, 그리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선임들에게 소총을 연발로 갈기는 조석봉의 친구처럼. 싸이코패스에게 자연스러운 반성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식으로건 징벌을 당할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마음속 제어장치를 달려는 시도랄까.

황장수의 전역 환송 장면은 나의 선임병과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작 몇 개월 차이지만 두 명 밖에 행정병이 없는 법무부에서 나는 군 생활의 대부분을 후임으로 살아야했다. 병장 초반에도 아침 일찍 나가 혼자 사무실 청소를 해야했던 것이다. 나의 선임이 나를 때린 적은 없지만 무서운 표정과 함께 심리적 압박감을 종종 줬다. 나로서는 그다지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가끔 사이가 좋기도 했지만 대체로 서먹하게 지냈다. 그는 제대하는 날 웃는 낯으로 나를 안아주며 황장수처럼 좋은 말을 해줬지만 나는 웃으며 화답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작별을 고했고 나는 짧은 선임 생활과 흔한 말년 병장 생활을 하다 전역했다. 돌이켜보면 그도 몇 개월 차이 안 나는 후임을 거느린 짬 안 되는 부처 선임병 생활이 고달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권력이 없는 나로서는 불합리함, 위협 등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우리가 법무부가 아닌 곳에서 만났다면 더 큰 폭력이 없었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일단은 이 정도로 줄이고 두 가지 점에 대해서 더 적고 싶다. 연기자들의 실제 나이가 화제가 되었는데, 이미 군대를 진작에 다녀온 배우들이 20대 초반의 군인을 연기하기도 하고, 가장 높은 헌병대장 역의 배우가 간부를 연기한 배우 중 가장 어렸다.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자기 부대가 아닌 사람들은 ‘아저씨’로 부르는게 군대의 상식이자 관례인데 실제 연령으로 아저씨라 할 배우들이 병사 연기를 했다는 점이 재밌다. 군대는 꿈에서도 가기 싫은데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연기라지만 촬영하다가 ptsd가 오진 않았나 모르겠다. 3회인 그 여자 편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 여자’는 고작 300만원을 들고 튄다는 건가? 그 여자는 왜 계속 돈을 남자친구에게 바치다가 마지막에 배신을 한 것일까? 안준호가 헌병인 걸 일찍 눈치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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